예전에 제가 크게 후회한 경험이 하나 있습니다. 아주 사소한 일에서 시작된 말다툼이었는데 감정이 치솟으니 ‘이건 꼭 내가 이겨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때는 논리보다 감정이 먼저였고 상대방의 말보다 제 자존심을 지키는 데 급급했습니다. 결국 관계는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버렸고 시간이 지나서야 ‘그때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도 이런 경험이 한두 번쯤은 있으실 겁니다. 순간의 분노, 허세 그리고 지켜야 할 선을 넘는 행동. 문제는 그 순간에는 그것이 잘못인지 깨닫기 어렵다는 데 있습니다.
저는 그 후로 단순히 지식을 쌓기 위함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경험과 선택을 간접적으로 배우기 위해서 책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소설 속 주인공은 분노에 휩싸여 한순간에 모든 걸 잃었고 어떤 에세이 속 작가는 끝까지 이성을 붙잡아 더 나은 결말을 만들었습니다. 책 속에서 이런 장면들을 만나면 ‘내가 저 상황이라면 어떻게 할까?’ 하고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 실제로 내 삶에서 중요한 순간을 마주했을 때 큰 힘이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책 읽는다고 사람이 그렇게 쉽게 변하나?’라고 묻습니다. 사실 책 한 권 읽었다고 하루아침에 성격이 바뀌는 건 아니지만 책을 통해 반복적으로 접한 장면과 생각은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작은 씨앗처럼 자리 잡습니다.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그 씨앗이 자라나 행동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예전의 저는 화가 나면 말부터 내뱉는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한 번만 더 생각하고 말하자’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이건 책에서 배운 수많은 타인의 실패와 성공 덕분입니다.
우리는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곧 참는 것, 즉 소극적인 태도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감정을 조절하고 논리로 판단하는 것은 훨씬 더 능동적이고 강한 태도입니다. 특히 중요한 결단의 순간 예를 들어 비즈니스 협상이나 가족 간의 갈등 또는 사회적 발언의 기회처럼 파급력이 큰 상황에서는 감정보다 논리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한 허세를 지키기 위해 불필요하게 선을 넘어버리거나 되돌릴 수 없는 행동을 할 위험이 커집니다.
어느 책에서 “협박은 반드시 실행으로 옮겨질 위험을 동반한다.”라는 문장을 읽었을 때 머릿속에 바로 여러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직장에서 ‘이 일 못 하면 그만두겠다’고 말해버리는 사람, 연인 관계에서 ‘다시는 안 본다’고 선언하는 순간 혹은 정치 지도자가 강경 발언을 쏟아내는 장면. 처음에는 단순히 허세였던 말이지만 한 번 내뱉고 나면 그 말에 스스로 묶이게 되고 결국 실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몰릴 수 있습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그런데 이런 우를 범하지 않으려면 그저 ‘참아야지’ 하는 마음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책은 역사 속 인물의 실수, 소설 속 주인공의 몰락, 에세이 속 작가의 고백은 마치 리허설처럼 우리에게 연습 기회를 줍니다. 저는 특히 역사서를 읽을 때 이런 힘을 크게 느낍니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감정에 휘둘려 내린 결정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삶을 바꿨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떤 참혹한 결말을 만들었는지. 그 기록들을 읽으며 ‘나는 절대 저렇게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물론 저도 완벽하진 않지만 최소한 과거의 저보다는 훨씬 덜 감정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국 책의 힘은 ‘미리 살아보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상황을 책 속에서 수없이 겪어보면서 실제로 닥쳤을 때 더 냉정하게 대처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그리고 이 힘은 단순히 위기 상황뿐만 아니라 일상의 작은 선택에서도 빛을 발합니다. 친구와의 대화에서 불필요한 언쟁을 피하는 것 직장에서 불리한 상황에서도 차분하게 의견을 제시하는 것 가족과의 오해를 감정이 아닌 대화로 풀어내는 것. 이런 순간들이 모여 결국 더 나은 관계와 더 안정된 삶을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책을 펼칩니다. 이 한 권이 당장 제 인생을 뒤바꾸진 않겠지만 언젠가 결단의 순간이 찾아왔을 때 오늘 읽은 이 한 문장이 저를 구해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때 저는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저는 이미 수많은 책 속에서 수많은 인물들과 함께 그 순간을 미리 살아봤으니까요.
결국 인생에서 우리가 피해야 할 가장 큰 위험은 ‘생각 없이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책은 그 생각을 깊게 넓게 만들어 줍니다. 감정에 휘둘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 일, 한 번의 말실수나 행동으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만드는 일. 이런 것들을 미리 막을 수 있는 가장 쉬우면서도 확실한 방법이 바로 독서입니다. 저는 그 힘을 믿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오늘 한 페이지를 넘기면서 그 힘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