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에서 생산자로 탈바꿈하라

by 오동근

하와이를 처음 갔을 때 영화나 사진에서 보던 풍경이 눈앞에 있다는 사실이 믿기 어려웠습니다.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푸른 바다와 하얀 모래사장, 해 질 녘 붉게 물드는 하늘, 그리고 느릿하게 흐르는 음악과 사람들의 여유로운 미소가 인상적이었고 하와이가 세상에서 가장 멋진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와이에 오래 살아본 지인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행으로 올 때는 좋지만 여기서 사는 건 전혀 다르며 생활비와 집값, 일자리 경쟁이 모두 치열해 쉽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여행자의 눈으로 보는 하와이와 주민의 눈으로 보는 하와이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행자는 소비만 하지만 거기서 사는 사람은 살아남기 위해 생산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은 비단 하와이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인생 전체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이야기였습니다.


여행은 철저히 소비 중심입니다. 시간과 돈, 에너지를 써서 새로운 경험을 얻습니다. 좋은 호텔에 묵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멋진 풍경을 보고 추억을 남기는 일은 그 자체로 가치 있고 행복한 일이지만 매일이 여행처럼 소비만 하는 삶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통장은 점점 비어 가고 몸은 지치며 마음도 허해집니다. 실제 삶에서는 생산이 필수입니다. 물질적인 생산뿐 아니라 생각, 기술, 감정, 관계를 만들어내는 것까지 모두 포함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생산이라고 하면 거창한 발명이나 사업만 떠올리지만 사실 생산은 훨씬 더 폭넓습니다. 아침에 가족을 위해 차린 따뜻한 밥상, 동료를 웃게 하는 유머, 내 경험을 정리해 나누는 글 한 편도 모두 생산입니다. 문제는 우리는 소비에는 익숙하면서 생산에는 서툴다는 점입니다.


어떻게 하면 스스로 생산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여전히 하고 있지만 당장 할 수 있는 일. 이른바 읽은 책 내용을 블로그에 정리해서 올리고 직장에서 경험한 문제 해결 과정을 글로 써서 동료들과 공유해 보니 처음에는 서툴렀지만 반복하다 보니 신기하게도 제 생각이 더 명확해지고 주변에서 “네 글 덕분에 도움 받았다”라는 말을 듣고는 엄청난 보람이 느껴졌습니다. 그때 비로소 생산이 주는 힘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가장 가치 있는 생산물은 생각이라고 느낍니다. 물건이나 서비스도 중요하지만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통찰은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지고 다른 사람에게 오래도록 영향을 줍니다. 생각을 생산하려면 다양한 입력이 필요합니다. 독서와 대화, 관찰, 여행 등 새로운 자극을 꾸준히 받아들이고 그것을 그냥 스쳐 지나가게 두지 않고 메모하고 곱씹으며 연결시키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어떤 형태로든 세상 밖으로 꺼내 표현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 완벽하지 않다는 이유로 이 단계에서 멈추어버리지만 생산은 완벽함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함 속에서 완성된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살아가면서 점점 느끼는 것은 생산 능력이 곧 자유라는 사실입니다. 하와이에서든 서울에서든 어느 시골 마을에서든 내가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생존의 기반이 마련됩니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무언가를 생산할 수 있는 사람은 경제적으로도 관계적으로도 훨씬 단단합니다.


우리는 광고와 미디어 속에서 끊임없이 소비를 부추기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이걸 사야 행복하다 여행 가야 힐링된다는 메시지들이 가득합니다. 물론 소비는 필요하지만 소비만으로는 삶이 채워지지 않습니다. 생산이 더해져야 비로소 균형이 잡힙니다. 생산은 꼭 경제적 이익과 직결될 필요도 없습니다. 오히려 돈과 무관한 생산이 삶의 만족도를 더 크게 높이기도 합니다. 취미로 만든 그림, 자녀와 함께 만든 작은 텃밭, 동네 사람들과의 소모임에서 나눈 이야기들이 쌓여 삶을 단단하게 만듭니다.


만약 지금의 내가 소비 중심인지 생산 중심인지 스스로 물어본다면 어떤 답이 나올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소비에만 치우쳐 있다면 아주 작은 것부터라도 생산을 시작하길 권합니다. 오늘 읽은 책의 한 문장을 기록하거나 나만의 경험을 한 단락 써보는 것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삶을 여행처럼 즐기는 것도 좋지만 여행만으로는 버틸 수 없습니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리고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내가 만든 생각과 무언가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세상에 남는 순간 우리는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생산자가 됩니다. 그러니 오늘부터는 소비만 하는 여행자가 아니라 어디서든 살아갈 수 있는 생산자로서의 첫걸음을 내디뎌야 합니다. 그곳이 하와이든 우리 동네든 혹은 내 마음속이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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