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찾아옵니다.
“내가 스스로 만든 것의 마지막이 언제였지?”
저는 얼마 전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조금 뜨끔한 적이 있습니다. 업무나 글을 쓸 때 무의식적으로 AI에게 먼저 물어보는 버릇이 생겼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마치 머릿속이 텅 빈 상태에서 AI를 두드리면 뭐라도 나오겠지 하는 기대감이 자연스럽게 몸에 밴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을 볼 때면 늘 어딘가 모르게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정교하고 깔끔한데… 이상하게 ‘내 것’ 같지 않은. 글을 쓰는 과정의 설렘이나 아이디어를 떠올리던 순간의 두근거림이 사라진 기분이 들었죠.
초등학교 시절, 비 오는 날 우산 없이 뛰어가다가 길가에 떨어진 꽃잎을 주워 모아 작은 꽃비를 만들어 친구들에게 뿌렸던 기억. 그때 저에게는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같은 계산이 없었어요. 그냥 순간이 재밌고, 그걸 만드는 과정 자체가 즐거웠던 겁니다. 결과를 위해서가 아니라 과정 자체가 놀이였던 시절. 그게 바로 창의력의 본질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AI에게 대체되지 않으려면 창의력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창의력을 꺼내기도 전에 AI에게 먼저 손을 뻗죠. 아이디어를 떠올리기 전부터, 글을 쓰기 전부터, 심지어 제목을 정하기 전부터 AI에게 묻습니다.
“이렇게 하면 창의력을 더 빨리 잃게 되는 건 아닐까?”
저는 실제로 그 두려움을 겪었고 그래서 스스로에게 규칙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무조건 먼저 내가 생각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AI에게 도움을 받는다.
왜냐하면 창의력은 ‘탄생 과정’을 필요로 하는 능력이지, ‘정답’을 받아 적는 능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부분이 바로 여기예요. 창의력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생각하는 과정 자체를 반복할 때 강화되는 근육’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 근육을 쓰기도 전에 AI에게 의존해 버리면 자연스럽게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철학자 니체가 말한 ‘낙타, 사자, 어린아이’의 단계 중 마지막 단계가 어린아이인 이유는 단순합니다. 어린아이는 겁이 없고, 틀려도 상관없고, 기존의 틀에 갇히지 않기 때문이죠.
사실 우리는 너무 빨리 결론을 내리려 합니다. 아이들은 꽃잎을 줍는 순간을 즐기지만 어른이 된 우리는 꽃잎을 줍는 순간보다 “모아서 어디에 쓸까?”를 먼저 고민합니다. 그러다 보니 지금 눈앞에서 일어나는 창의의 순간을 놓치게 되는 거죠.
저 역시 일을 하면서 결과만 바라보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하려고 합니다. 때때로 철이 없고, 조금은 과감하고, 말도 안 되는 상상도 그냥 흘러가게 두는 것. 그 과정에서 떠오르는 작은 감정이나 생각이 창의력의 재료가 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많은 분들이 AI에게 먼저 묻는 것을 너무 자연스러운 습관으로 여기곤 합니다. 맞춤법 고쳐 달라고 하거나 어투를 다듬어 달라는 것은 당연히 도움이 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AI에게 맡겨버리는 건 마치 내 손을 쓰기도 전에 기계 팔을 먼저 쓰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창의력은 거창한 재능이 아니라 내가 먼저 생각할 시간을 확보하는 태도에서 시작됩니다.
오늘 하루만큼은 어린아이처럼 살아보면 어떨까요?
결과를 계산하지 않고, 내 생각이 완성되지 않아도 괜찮고, 순간 떠오르는 작은 상상을 있는 그대로 적어보는 하루. 그 철없음 속에서 오래 묵혀둔 창의력이 도로 깨어날 수 있습니다.
AI는 도구일 뿐입니다.
그 도구를 어떻게 쓰는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고 내가 먼저 한 걸음 내딛는 순간 창의력은 다시 꽃잎처럼 흩날리며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