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에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집 앞 골목에서 친구들과 해가 질 때까지 축구를 하던 날들, 엄마가 부르기 전에는 절대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며 버티던 얼굴, 그리고 밤늦게까지 만화책에서 눈을 떼지 못했던 그 순간들. 그때는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단지 재미있었기에 계속했을 뿐입니다. 여러분은 언제 마지막으로 누군가가 말리기 전까지 한 가지에 완전히 빠져본 적이 있나요? 혹시 어른이 되어서 그런 건 곤란하다고 스스로 자제하진 않았나요?
어린아이의 가장 큰 장점은 판단이 늦고 호기심이 앞선다는 점입니다. 남들이 뭐라고 할까를 먼저 계산하지 않으니 재미있으면 계속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반복합니다. 저는 독서를 해야 하는 일로만 여기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출퇴근 지하철에서 책을 억지로 집어 들고 몇 쪽 읽다 말고 스마트폰 알림에 휩쓸리곤 했죠. 그러다 어느 주말, 아이를 놀이터에 데려다주고 벤치에 앉아 그냥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오래 지켜봤습니다. 한 아이는 떨어져 나간 장난감에 온 마음을 쏟아 다시 어떻게라도 놀 거리를 만드는 모습을 보였어요. 그 순간 불현듯 난 왜 이렇게 쉽게 흥미를 잃을까라는 자문이 들었고 결과와 평가에 갇혀 있던 스스로를 깨달았습니다. 그 후로 의도적으로 결과를 묻지 않는 시간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책 한 권을 덮을 때까지 인터넷을 보지 않겠다고 정해놓고 단순히 읽고 싶다는 마음이 흐르는 대로 읽기 시작했죠. 그때 느낀 몰입감은 어렸을 때 놀이터에서 느꼈던 것과 놀랍도록 닮아 있었습니다. 어느새 시간은 사라지고 책 속 문장들과 이야기에 완전히 빠져들어 있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저는 두 가지를 배웠습니다. 첫째, 몰입은 의지가 아니라 환경과 허용의 문제라는 것.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건 시간이 아깝다”, “이걸 하면 비효율적이다”라는 프레임을 씌워서 시작조차 못 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어린아이들은 그 프레임이 없습니다. 둘째, 창의성은 ‘계획된 창의’가 아니라 ‘우연히 깊어지는 집중’에서 온다는 것입니다. 저는 직장에서 새로운 보고서를 쓸 때도 처음에는 구조와 형식을 떠올리느라 머리가 꽉 막혔습니다. 그런데 일단 손으로 아무 글이나 끄적이며 이야기를 펼치기 시작하자 생각은 점점 흘러나왔고 그 과정에서 아이디어가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갔습니다. 결국 완성된 보고서는 초반의 긴장감과는 전혀 다른 훨씬 솔직하고 임팩트 있는 결과물이었어요.
어린아이처럼 행동한다는 말을 들으면 종종 미숙함이나 책임감 결여로 해석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어린아이의 태도는 무책임함이 아니라 검열을 멈추고 먼저 해보는 용기입니다. 즉, 결과가 완벽하지 않아도 시작을 허용하는 태도입니다. 아이들은 놀면서 규칙을 만들고 실수를 통해 나름의 방법을 찾아갑니다. 어른은 그 과정을 두렵게 여기지만 사실 그 과정이야말로 학습과 성장의 핵심입니다.
어린아이로 돌아가라는 말은 곧 순수한 호기심과 검열 없는 시작을 허용하라는 의미입니다. 그건 유치함이나 게으름을 권장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의 다른 이름을 다시 꺼내자는 초대입니다. 독서든 운동이든 창작이든 먼저 하고 싶은 마음을 신호로 받아들이고 누가 말릴 때까지 그 마음을 따라가 보세요. 결과는 생각보다 빠르게 따라오고 무엇보다 그 과정 자체가 즐거워질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고백하자면 저도 여전히 때때로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고 멈출 때가 많지만 이제는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아이의 한쪽 팔처럼 붙들린 일상 속에서도 다른 한쪽 팔로는 계속 장난칠 수 있게 스스로에게 허락합니다. 오늘, 단 한 번이라도 누가 말릴 때까지 하고 싶은 것을 해보세요. 설령 그것이 작고 어설픈 시작이라도 그 시작이 여러분의 삶을 조금 더 재미있고 창의적으로 바꿔놓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