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 소설 아큐정전은 단순한 시대 풍경 묘사가 아닙니다. 변발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로 가족이 파국을 맞는 장면은 누군가가 만들어낸 규범이 개인의 삶을 얼마나 무겁게 누를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저는 이걸 읽으면서 과거의 규범이 현재의 나에게도 보이지 않는 족쇄를 채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 경우는 직장과 관련된 일이었습니다. 오래된 회사에서 이렇게 해왔다는 이유만으로 바뀌지 않는 업무 프로세스가 있었고 누군가 새로운 방법을 제안하면 묵살되거나 되었습니다. 처음엔 변화를 시도하는 사람이 비난받는 걸 보며 나조차도 그냥 참고 견뎌야 하나라는 생각에 물들었습니다.
하지만 작은 결과 하나로 제 관점을 바뀌었습니다. 저는 팀 회의에서 ‘이런 방식으로 바꿔보면 어떨까요?’라고 제안했고 그 제안은 우연히도 고객 만족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놀랍게도 문제는 방법 자체가 아닌 그 방법을 받아들이는 심리적 장벽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배척할 때 종종 전통을 지켜야 한다거나 우리가 아는 방식이 안전하다는 논리를 씁니다. 전통을 존중하는 것과 전통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은 다릅니다. 전통 중에는 우리가 당연히 지켜야 할 가치가 있고 또 시대 변화에 맞춰 재해석해야 할 관습이 있습니다. 둘을 혼동하면 옛것에 갇힌 채 새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누군가는 ‘항상 의문을 갖는 건 불안만 키운다’고 말하지만 의문을 갖는 태도는 무조건 부정이 아니라 검토입니다. 소설 속 청년처럼 새로운 길을 택한 사람을 가족이 비난한 건 그들이 새로운 가능성을 상상할 기회를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작정 버리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전통을 지키면서도 이건 왜 이렇게 해왔을까?를 묻고 더 나은 방법이 있으면 실험해 보는 용기입니다.
변화 앞에서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결코 약하지 않습니다. 저 역시 변화의 제안자가 되었다가 때로는 변화에 저항하는 쪽에 서기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된 것은 사람들의 반응에는 각자의 상처와 경험이 깔려 있다는 점입니다. 누군가는 안정성 때문에 누군가는 실패 경험 때문에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변화를 설득하려면 논리뿐 아니라 공감이 필요합니다. '당신의 걱정은 이해한다'는 말이 때로는 더 큰 설득력을 가집니다.
아큐정전의 한 장면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이 지금 붙들고 있는 것은 정말 당신의 것인가 아니면 타인과 시대가 물려준 짐인가?” 제 답은 작지만 분명합니다. 좋은 전통은 지키되 고정관념은 의심하자. 의심은 파괴가 아니라 재검토의 시작이, 그 과정에서 우리는 더 넓은 세상과 새로운 기회를 마주하게 됩니다. 변화가 늘 쉽지는 않겠지만 그 과정을 통해 성장하지 못할 이유도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변발을 하지 않았다고 누군가를 비난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각자의 ‘변발’은 무엇인지 그걸 내려놓거나 바꿀 때 어떤 가능성이 열리는지 한 번쯤 질문해 보면 어떨까요? 변화는 타인의 실패를 욕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