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고통이 밖에서 나를 덮쳐서 어쩔 수 없이 힘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일이 많아서, 시간이 없어서, 누군가의 말 때문에, 환경이 나빠서라고 말이죠. 저도 읽어야 할 책이 쌓여 있으면 이걸 언제 다 읽지라는 생각부터 들었고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그 자체로 스트레스를 키웠습니다. 책의 분량이 나를 괴롭히는 게 아니라 반드시 이때까지 끝내야 한다는 내 생각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책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고 고통은 제 머릿속에서만 커지고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관점을 조금씩 바꿔보기로 했습니다. 이번 달에 다 못 읽으면 실패라는 생각 대신 오늘 몇 페이지만 읽어도 충분하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기 시작했죠. 신기하게도 그렇게 마음을 내려놓으니 오히려 책이 더 잘 읽혔습니다. 고통을 밀어내려고 애쓴 게 아니라 내가 붙잡고 있던 기준을 내려놓았을 뿐인데도 말이죠. 이 경험을 통해 저는 고통이라는 게 생각보다 훨씬 유연한 존재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분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루를 마치고 누웠는데 낮에 있었던 일 하나가 계속 떠오르면서 잠을 방해할 때가 많았습니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내가 왜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하지’ 같은 생각들이 밤새 머리를 맴돌았죠. 많은 사람들이 이걸 감정이 강해서 성격이 예민해서라고 오해합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저는 분노를 내려놓지 않고 꼭 쥐고 잠자리에 들었던 것뿐이었습니다. 분노가 저를 붙잡은 게 아니라 제가 분노를 붙잡고 있었던 셈이죠.
그 사실을 인정한 뒤로는 선택지가 생겼습니다. 이 감정을 계속 안고 갈 것인지 아니면 여기서 내려놓을 것인지 말이죠. 물론 쉽지는 않았지만 ‘이 분노를 내일까지 가져가서 나한테 뭐가 좋을까?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니 답은 분명했습니다. 아무런 이득도 없다는 것. 그래서 때로는 먼저 사과를 하기도 했고 때로는 그냥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심지어는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에게 먼저 작은 친절을 건넨 적도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그 순간부터 분노는 힘을 잃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종종 긍정이라는 생각을 현실을 부정하는 태도로 활용합니다. 힘든데 괜찮은 척하는 것, 아픈데 웃어넘기는 것이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제가 경험한 긍정은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고통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되 거기에 내 에너지를 전부 쏟지 않는 선택이었습니다. 고통에 매달리면 매달릴수록 생각은 좁아지고 할 수 있는 일은 줄어듭니다. 반대로 관점을 조금만 바꾸면 같은 상황에서도 감사할 구석 하나쯤은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런 변화는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매일 아침 스스로에게 긍정적인 말을 건네고 하루를 돌아보며 감사한 일을 하나라도 떠올리려는 작은 연습들이 쌓인 결과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한 가지 확신을 갖게 된 것은 고통은 없애야 할 적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크기가 달라지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도 아마 마음 한편에 꼭 쥐고 있는 고통 하나쯤은 있을 겁니다. 일이든, 인간관계든, 미래에 대한 불안이든 말이죠. 혹시 그 고통이 정말 당신을 붙잡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놓을 수 있는데도 익숙해서 계속 붙잡고 있는 건 아닐까요? 오늘 하루만이라도 그 고통을 잠시 내려놓고 대신 희망이나 감사 하나를 붙잡아보면 어떨까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고 느려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건 내가 무엇을 붙잡고 하루를 살아가느냐입니다. 고통을 꽉 쥐고 살 것인지 아니면 긍정과 희망을 선택할 것인지. 저는 후자를 선택했을 때 삶이 훨씬 가벼워졌습니다. 내일 아침 어제의 고통을 그대로 들고일어나지 않아도 됩니다. 오늘은 오늘의 마음으로 가볍게 시작해도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