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느끼고 있다면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by 오동근

사람들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원래 독서하는 것이 즐거울 거라 생각하지만 제 경험은 조금 다릅니다. 저는 처음에는 책 읽는 시간이 꽤나 고통스러웠습니다. 눈은 쉽게 피로해지고 머릿속은 딴생각으로 가득 찼죠. 특히 바쁜 하루를 보내고 나서 책을 펼칠 때면 ‘이 시간에 그냥 쉬면 안 될까?’라는 유혹이 끊임없이 올라왔습니다.


그럼에도 책을 덮지 않은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힘들게 읽었던 책 한 권이 어느 날 제 생각을 바꿔놓았고 말투를 바꿔놓았고,, 결정 하나를 바꿔놓았던 순간들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과를 이미 한 번이라도 맛본 사람은 다시 그 고통을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운동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에는 몸이 따라주지 않기에 숨은 가쁘고, 근육은 아팠고, 다음 날이면 계단을 내려가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운동을 하지 않은 날이 더 불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몸이 무겁고, 기분이 가라앉고, 스스로에게 실망하게 되더군요. 고통이 사라진 게 아니라 고통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진 것이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좋은 결과가 있을 테니 지금의 고통을 버텨라”라는 문장은 너무 막연하다고 느껴집니다. 당장 눈앞에 성과가 없는데 어떻게 확신을 가지냐는 겁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결과를 당장 증명받는 것이 아니라 결과가 반드시 따라왔던 과거의 경험을 믿는 것입니다. 독서와 운동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속도는 느릴지 몰라도 방향은 늘 맞았습니다.


특히 요즘처럼 AI가 빠르게 발전하는 시대에는 독서의 힘을 과소평가하기 쉽습니다. 검색하면 다 나오고 요약은 몇 초 만에 끝나고 필요한 정보는 얼마든지 얻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책 읽는 시간을 비효율적인 고통으로 여기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지만 제가 느낀 독서는 정보 습득이 아니라, 사고의 깊이를 키우는 훈련이었습니다. 남들과 비슷한 답을 빨리 내는 능력이 아니라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질문을 만드는 힘이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독서의 고통이 조금씩 즐거움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사우나에서 땀이 나기 시작하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는 것처럼 책 속에서 막히고 이해되지 않는 문장을 만날 때조차 ‘아, 지금 내가 성장하고 있구나’라는 신호로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이때부터 독서는 참아내는 행위가 아니라 스스로를 단련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독서와 운동이 힘든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결과가 바로 눈앞에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고통이 헛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사우나 안에서 참고 버틸 수 있는 이유가 밖에 시원한 공기와 냉탕이 있다는 확신 때문이듯 책을 펼치고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이유도 결국 같은 믿음에서 나옵니다.


혹시 요즘 독서가 버겁고, 운동이 귀찮아졌다면,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보면 좋겠습니다.

“나는 아직도 이 고통 뒤에 좋은 결과가 온다는 걸 믿고 있는가?”

그 믿음만 다시 마음에 새겨도 오늘 한 페이지, 오늘 10분은 충분히 견딜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작은 견딤들이 쌓여 어느 날 문득 돌아보면 분명히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때 그 고통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요.

오늘도 책을 펼친 여러분은 이미 잘하고 있습니다. 고통을 견디고 있다는 건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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