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오래 바라보는 연습

by 오동근

요즘 ‘본다’는 말의 의미를 자주 되새기게 됩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장면을 바라보며 살아가지만 정작 무엇을 ‘보려고’ 마음먹는 순간은 얼마나 될까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손이 향하는 휴대폰 화면, 무의식적으로 넘겨보는 뉴스와 영상들 속에서 하루가 시작되고 끝납니다. 분명 많은 것을 보았지만 하루가 지나고 나면 마음에 남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왜 이렇게 하루가 허무하게 느껴졌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보고만 있었지 보려고 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며칠 전 “보이는 것만 보지 말고 보려고 해야 한다.” 문장을 처음 들었을 때는 너무 당연한 말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그 문장을 계속 곱씹을수록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졌습니다. 저는 과연 무엇을 보려고 살아왔을까 아니면 그저 눈앞에 나타나는 것들에 반응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질문은 자연스럽게 제 삶의 선택들과 태도를 되돌아보게 만들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오랫동안 ‘보이는 것’ 위주로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결과가 보이면 움직였고, 확실하지 않으면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남들이 인정하는 길이 보이면 그 길을 따라갔고 불확실한 방향은 피했습니다. 덕분에 큰 실패는 없었지만 마음속에는 늘 설명하기 어려운 공허함이 남아 있었습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 잘할 수 있는 것, 가야 할 방향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보이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보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찾는 일에는 용기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 무렵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의 독서는 ‘읽어야 하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책은 가만히 놓여 있으면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습니다. 직접 펼치고, 문장을 따라가고, 그 문장 사이에 머물러야 비로소 말을 걸어옵니다. 그 느린 과정 속에서 저는 처음으로 ‘보려고 하는 태도’를 연습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다는 감각 바로 답을 찾지 않아도 된다는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특별해지기 위해 애씁니다.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려 하고 새로운 관점을 억지로 만들어내려 합니다. 그러나 제가 경험한 바로는 진짜 나만의 시선은 애써 만들 때가 아니라 오래 바라볼 때 생겨났습니다. 계속 보다 보면 어느 순간 유난히 마음이 머무는 지점이 나타납니다. 어떤 문장은 오래 남고, 어떤 장면은 반복해서 떠오릅니다. 저는 그 지점이 바로 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 그리고 나아가야 할 방향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보려고 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것만 따라가면 훨씬 편안합니다. 결과가 빠르고 피드백이 즉각적이며 실패해도 스스로를 덜 의심하게 됩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면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당장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수도 있, 남들보다 뒤처진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 불안과 고독을 견디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조금씩 깨닫고 있습니다. 그 시간을 견뎌낸 뒤에야 비로소 아주 희미하게라도 ‘이게 나의 길일지도 모르겠다’는 감각이 찾아온다는 것을 말입니다.


요즘 저는 의식적으로 속도를 늦추고 있습니다. 빨리 이해하려 하지 않고, 서둘러 결론을 내리려 하지 않습니다. 대신 조금 더 오래 바라보고 조금 더 깊이 생각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책이든, 사람과의 대화든, 제 마음이든 마찬가지입니다. 보이는 것만 보며 살아오던 삶에서 보려고 애쓰는 삶으로 천천히 방향을 바꾸고 있는 중입니다. 아직도 확신은 없고 여전히 흔들리기도 하지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는 ‘안 보이는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안 보인다는 것은 아직 찾는 중이라는 의미일 수도 있으니까요.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저는 완전히 알지 못합니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무엇을 이루게 될지 말입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저는 더 이상 보이는 대로만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보려고 애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책을 펼치고, 질문을 붙잡고, 마음이 반응하는 순간을 놓치지 않는 사람으로 말입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쌓이다 보면 언젠가는 저만 볼 수 있는 길이 조금은 또렷해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오늘도 저는 그 길을 찾기 위해 조금 더 오래 바라보는 연습을 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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