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설명이 길수록 잘 전달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자세한 설명을 위해 이유를 나열하고 근거를 채워 넣습니다. 하지만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말들은 대개 짧고 단순했습니다. “침대는 과학이다”처럼 말입니다.
그 문장은 침대를 바꾸지 않았지만 침대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꿔놓았습니다. 단순한 가구가 아니라 몸과 수면과 회복을 연구한 결과물처럼 느껴졌습니다. 은유는 이렇게 설명 없이도 사람의 상상을 움직입니다. 말이 끝난 뒤에도 생각이 이어지고 의미가 확장됩니다.
돌이켜보면 제 삶에도 그런 문장들이 있었습니다. 누군가 무심히 던진 한마디가 오래 남아 제 방향을 바꾸었던 순간들입니다. 그때는 알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말들 역시 모두 은유였습니다. 저를 설득하지 않고 저를 움직이게 했던 말이었습니다.
“침대는 과학이다”라는 문장은 침대를 다른 세계로 데려갑니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단어가 만나면서 새로운 의미가 만들어졌듯이 우리 삶도 비슷합니다. 일은 일이고, 공부는 공부이며, 실패는 실패라고 단정해 버립니다. 그 순간 해석은 끝나고 가능성도 함께 닫혀버립니다. 하지만 은유는 멈추지 않습니다. 실패를 실험이라고 부르면 일은 훈련이 되고 공부는 도구가 됩니다. 현실은 그대로인데 이름이 바뀌자 태도와 감정이 달라집니다.
창의성은 타고나는 것이라고 오해하지만 저는 점점 다르게 느끼고 있습니다. 창의성은 재능이라기보다 태도에 가깝습니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고, 전혀 다른 것과 연결해 보려는 작은 시도. 그 반복이 결국 삶의 깊이를 만듭니다.
제가 은유의 힘을 체감하게 된 계기는 독서를 다시 시작하면서였습니다. 문학 작품을 읽다 보면 인물의 마음을 설명하지 않고 풍경이나 사물로 보여주는 문장들을 자주 만납니다. “마음이 호수 같다”라는 표현 하나로 긴 설명이 필요 없어지는 순간입니다. 처음에는 그저 아름다운 문장이라고만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방식이 제 생각에도 스며들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일을 겪을 때, 저는 바로 결론을 내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대신 이 상황은 무엇과 닮았을지 다른 말로 부르면 어떤 의미가 될지 생각해 봅니다. 그 과정에서 감정은 조금씩 가라앉고 문제의 모양이 또렷해집니다. 독서는 제 안에 은유를 심어주었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바꾸려면 대단한 목표와 계획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 삶을 돌아보면 저를 바꿔온 것은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작은 문장들이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훈련입니다”, “이 불안은 성장통입니다”라는 말들. 상황은 바뀌지 않았지만 말이 바뀌자 태도가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태도가 바뀌니 행동도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요즘 저는 삶을 설명하기보다 삶에 새로운 이름을 붙이려 합니다. 일이 막힐 때는 ‘정체’라고 부르지 않고 ‘발효’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기다릴 수 있게 됩니다. 불안할 때는 ‘위험’이 아니라 ‘신호’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도망치지 않게 됩니다. 이것이 제가 경험한 은유의 힘입니다. 현실을 바꾸지 않고도 삶을 다르게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기술입니다.
아침마다 침대에서 일어날 때 가끔 그 문장을 떠올립니다. “침대는 과학이다.” 그리고 속으로 이렇게 덧붙입니다. “삶도 과학이다.” 매일 조금씩 실험하고, 실패하고, 기록하고, 다시 시도하는 과정.
우리는 모두 자기만의 실험실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어떤 분은 여전히 침대를 가구로만 보시겠지만 어떤 분은 그 안에서 과학을 발견하십니다. 그 차이는 능력이 아니라 관점입니다. 연결하려는 마음, 낯설게 보려는 용기, 그리고 그 용기를 가능하게 하는 언어.
오늘 하루, 무엇을 무엇과 연결해 보시겠습니까.
그 질문 하나만으로도, 오늘은 이미 어제와 다른 하루가 될 준비를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