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할 일이 눈앞에 있는데도 괜히 핸드폰부터 집어 들고 스크롤을 내리다 보면 시간은 금방 사라지고, 마음 한구석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찝찝함만 남습니다. 저는 그 기분을 오래도록 ‘피곤함’이라고 착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이건 피곤함이 아니라 외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면이란 곧 고통이고 마음 단단히 먹고 참아내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제 경험으로는 조금 다릅니다. 외면이야말로 고통을 길게 끄는 방식이었습니다. 직면은 오히려 고통의 총량을 줄여주는 선택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한동안 재정 문제를 애써 보지 않으려 했습니다. 통장을 열면 불안해질까 봐, 숫자를 보면 기운이 빠질까 봐. 대신 아무 생각 없이 작은 소비를 반복했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괜찮았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용기를 내서 모든 내역을 정리해 봤습니다. 딱 30분 걸렸고 생각보다 끔찍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직면하는 순간 문제는 이미 절반은 해결된 셈이었습니다.
외면은 늘 달콤한 얼굴로 다가옵니다. “지금은 좀 쉬어도 돼”, “내일 해도 늦지 않아”, “너무 빡빡하게 살지 마” 같은 말들로요. 하지만 그 달콤함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외면한 일은 반드시 다시 돌아와 더 큰 얼굴로 앞을 막아섭니다. 반대로 직면은 처음엔 거칠지만 생각보다 빨리 길을 내줍니다. 책을 펼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초도 안 되지만 그 10초를 외면하는 데는 며칠이 걸리기도 합니다. 운동화를 신는 순간까지가 가장 힘들지, 막상 걷기 시작하면 몸이 먼저 답을 합니다. 직면은 늘 시작의 용기만 요구할 뿐 끝까지 고통을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요즘 스스로에게 자주 묻습니다. “이건 정말 못 하는 걸까, 아니면 외면하고 싶은 걸까?” 이 질문 하나만으로도 행동이 달라집니다. 핑계가 떠오르면 그게 외면이라는 신호라는 걸 이제는 압니다. 그래서 예전보다 조금 더 자주 조금 더 솔직하게 문제 앞에 서보려 합니다. 완벽하게 해내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건 외면하지 않았다는 사실 그리고 오늘은 어제보다 한 발짝 더 직면했다는 감각입니다.
결국 삶을 바꾸는 건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작은 직면의 반복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고 다만 몇 가지를 외면하고 있을 뿐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하루, 핸드폰을 내려놓고 한 가지라도 마주해 보는 건 어떨까요. 생각보다 삶은 친절하게 반응해 줄지도 모릅니다. 외면을 멈추는 순간 방향은 자연스럽게 잡히기 시작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