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뭘 해야 하지? 딱히 급한 일정은 없는데 그렇다고 마음이 편안하지도 않은 상태 말입니다. 몸은 쉬고 있는데 마음만 분주하고 하루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지루해지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저는 그런 시간을 ‘여유’라고 착각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이니 잘 쉬는 거라고 스스로를 납득시키곤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여유가 아니라 방향을 잃은 심심함이었다는 것을요.
“심심한 곳이 바로 지옥이다.”
처음 들었을 때는 표현이 다소 과하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말이 꽤 정확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심할 때의 저는 대체로 무기력했고 특별히 즐겁지도 않으면서 휴대전화만 붙잡고 시간을 흘려보내곤 했습니다. 영상을 넘기고 남의 일상을 들여다보다가 하루를 마무리하는 날들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쌓이니 삶이 재미없다고 느끼는 건 어쩌면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재미’라고 하면 여행이나 맛집, 술자리, 쇼핑 같은 것을 떠올리실 것 같습니다. 열심히 일한 뒤 떠나는 여행이나 사람들과의 만남은 분명 즐겁습니다. 다만 그 즐거움은 늘 오래가지는 않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부터 다시 공허해졌고 또 다른 재미를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한 가지를 놓치고 있었습니다. 재미를 오직 ‘소비하는 방식’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요즘 제가 느끼는 재미는 오히려 아주 소소한 데서 시작됩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책을 몇 쪽이라도 읽고, 몸을 움직이고, 하루를 정리하는 루틴을 이어가는 일입니다. 처음에는 솔직히 재미있지 않았습니다. 의무처럼 느껴졌고,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오늘도 빠지지 않았다는 사실, 어제보다 조금 더 이해한 문장, 숨이 덜 가쁜 몸 상태. 이런 작은 변화들이 쌓이면서 묘한 즐거움이 생겼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특별할 것은 없지만 저만은 분명히 느낄 수 있는 재미였습니다.
흔히들 꾸준함은 재미없고 반복은 지루하다고 말씀하시지만 오히려 가장 지루했던 시기는 아무것도 쌓이지 않던 때였습니다. 매일이 비슷해 보여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감각이 있을 때, 삶은 생각보다 훨씬 덜 심심해졌습니다. 독서나 운동이 반드시 성취나 성공을 위한 수단일 필요는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 자체가 충분히 재미가 될 수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요리에서도 다시 즐거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거창한 요리가 아니라 냉장고에 있는 재료로 이것저것 시도해 보는 정도입니다. 실패하는 날도 있지만 그마저도 웃으며 넘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과보다도 제가 직접 무언가를 만들어보고 있다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순간들이 심심함을 조금씩 밀어내 주었습니다.
요즘 저는 스스로에게 자주 질문합니다.
“지금 저는 심심한 상태일까요, 아니면 재밌게 살고 있을까요?”
이 질문은 생각보다 솔직한 답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그 답은 대체로 오늘 하루 동안 제가 무엇을 쌓았는지에 달려 있었습니다.
2월을 앞두고 거창한 목표를 세우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저만의 재미를 하나쯤 더 만들어보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소비하지 않아도 되는 재미, 시간이 지나도 제 안에 남는 재미 말입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다 보면 삶 전체가 지금보다 훨씬 덜 지루해질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심심함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방치할 때 찾아온다는 생각이 듭니다. 반대로 재미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오늘 하루, 저를 조금이라도 움직이게 만드는 그 무언가 안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