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웠다면 채워야 합니다

by 오동근

회사에 다니며 하루를 보내다 보면 늘 비슷합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는 정신없이 일합니다. 그 시간만큼은 정말 열심히 산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이후입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오늘도 수고했어’라는 말과 함께 소파에 몸을 던지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다가 하루가 끝나버립니다. 저녁 시간은 늘 휴식이라는 이름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하루를 비우고 나면 다음 날 아침에는 이유 없이 지쳐 있었습니다.


최근 ‘비우고 왔으니 채워야 한다’는 말을 듣고, 제 하루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출근해서 9시부터 6시까지는 정말 많은 에너지를 쏟아붓지만 생각해 보면 그 시간은 ‘채우는 시간’이 아니라 ‘비우는 시간’에 가깝습니다. 업무에 집중하고, 감정을 쓰고, 체력을 소모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흔히 저녁을 완전히 쉬어야 할 시간이라고만 생각합니다. 하루 종일 비웠는데 저녁마저 아무것도 채우지 않으면 당연히 허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동안 놓치고 있었습니다.


저녁에 책을 읽거나 운동을 하면 더 피곤해질 거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해보니 정반대였습니다. 짧은 시간이라도 책을 읽고, 가볍게 몸을 움직이고 나면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해졌습니다. 하루가 ‘그냥 끝났다’는 느낌이 아니라 ‘그래도 오늘은 나를 위해 뭔가를 했다’는 감각이 남았습니다. 그 감각 하나로 다음 날 아침이 조금 달라지더라고요. 중요한 건 완벽함이 아니었습니다. 매일 빠짐없이 해야 한다는 강박은 오히려 의욕을 꺾습니다. 저도 며칠 하다 하루를 건너뛰면 괜히 스스로를 탓했습니다. 그런데 주 3번만 해도 충분하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못 한 날을 문제 삼기보다 한 날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가 더 오래 가게 만든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저녁은 쉬는 시간이 아니라 채우는 시간’이라는 관점이었습니다. 휴식과 충전은 다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휴식도 필요하지만 나를 조금이라도 성장시키는 충전의 시간이 있어야 하루가 균형을 찾습니다. 20분 책을 읽고, 40분 정도 천천히 걸으며 그 내용을 곱씹는 시간은 생각보다 큰 힘을 줬습니다. 그 시간만큼은 남과 비교하지 않고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늘 “낮에 열심히 하면 된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사실 모두가 낮에는 비슷하게 노력합니다. 차이는 결국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저녁에서 만들어집니다. 화려하지도 않고, 남들이 알아주지도 않는 그 시간에 무엇을 선택하느냐가 쌓여서 나중에 차이가 됩니다.


요즘 저는 저녁을 조금 다르게 대하려고 합니다. 대단한 계획은 없습니다. 다만 하루를 비우고 돌아왔다면 아주 조금이라도 나를 다시 채우자는 마음입니다. 그 작은 선택이 당장 인생을 바꾸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하루를 헛되이 보냈다는 후회는 줄여줍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분들도 비슷할 겁니다. 열심히 살고 있는데도 늘 허전하고 분명 하루를 버텼는데도 남는 게 없는 느낌. 그건 당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미 충분히 비우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묻고 싶습니다. 오늘 저녁, 여러분은 무엇으로 스스로를 채울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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