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일해야 할 금 같은 시간에 우리는 왜 여행을 결심했을까?
프리랜서. 단어에 들어가있는 'Free'라는 단어처럼 스케줄과 작업 공간도 프리(free), 내 시간과 노력도 타인에게 프리하게 내어주는 직업이다. 프리랜서에게 시간은 페이와도 연관이 있기 때문에 일을 하지 않는 만큼 페이도 없다. 그런데 그렇게 귀중한 45일의 시간에 우리는 왜 일상을 박차고 유럽으로 떠났을까?
직장인이던 시절에 갔던 여행은 길어야 일주일. 한 도시만 온전히 누리기에도 벅찬 일정과 체력은 우리의 여행 의도와는 맞지 않았다. 모두가 같은 목표를 향해 살아가는 나의 세계를 떠나 새로운 곳, 새로운 풍경 속에서 그 문화를 경험하길 원했다. 내가 익숙한듯 살아가고있는 일상을 벗어나는 경험이 필요했다.
그래서 우리는
무릎과 허리가 더 아파지기 전에
여행을 떠나자고 했다.
웃긴 이야기일 수 있지만, 종종 단기간 여행을 다니며 몸이 불편해서힘들어하시는 분들을 본 적이 있기 때문에 생각할 수 있었던 진지한 이유였다. 그리고 90년생 동갑 부부인 우리의 생애 주기를 생각했을때 지금이 아주 좋은 타이밍이었다.
유창하지 않은 영어실력에 장기간 자유여행은 처음인 우리 부부는45일간 7개 나라, 25개 도시로 배낭 2개와 캐리어 1개를 가지고 겁도 없이 떠났다. 당시에 여러 SNS에서 인종차별과 소매치기들이 판치고 있다는 정보가 쏟아지고 있었기 때문에 긴장도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설레었다. 매일 익숙했던 일상을 벗어나 조금은 긴 호흡으로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보고 경험한다는 것이 어떤 것일지에대한 궁금함이 더 컸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꼭 해야하는 과정은 짐을 챙기는 것이다. 처음에는 무겁게만 느껴지던 짐은 여행하는동안 비워지고 보관되고 채워지는 과정을 겪으며 이 여행의 일부가 된다.
짧은 호흡의 여행만 했었던 나에게 조금 더 길어진 여행 일정은 챙겨야 하는 짐에도 변화를 주었다. 특히 유럽은 오래된 도시들이 많아서 바닥이 울퉁불퉁한 경우들이 있는데, 캐리어를 가져가게되면 바퀴가 고장나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그래서 고민 끝에 우리는 메인 짐을 캐리어 1개와 대형 배낭 1개, 소형 배낭 1개로 결정했다. 거기에 보조가방 1개와 각자가 매는 소형 보조가방은 덤이었다.
필요한 짐이 가방보다 많은
나는야 도라에몽
앞의 가방들에 넣을 짐들을 챙기다보니 그 많은 가방에도 자리가 부족할 지경으로 짐이 많았다. 그래서 필요없는 짐을 빼고 필요한 짐만 챙기느라 여행 전날까지 가방 문은열려있었다. 45일 여행을 하며 느낀거지만 열심히 고민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도 있었고 왜 고민했을까 민망했던 것도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마음 한 켠에 챙겨두었던 짐들도 마찬가지였다.
공통
칫솔, 치약, 클렌징폼, 샤워도구(샴푸, 린스, 바디워시, 바디로션), 썬크림, 장바구니, k94 마스크
수영타월, 선글라스, 신발 각 1개(운동화, 샌달, 슬리퍼), 레쉬가드 2개, 동전지갑 2개, 접이식 우산
각종 충전기, 돼지코(공항 통신사에서 대여), 노트북, 아이패드, 보조배터리 2개, 카메라, 오즈모
상비약(종합감기약, 콧물약, 목감기약, 소화제, 지사제, 변비약), 데일밴드, 파스, 비타민, 유산균
음식(누룽지 큰팩, 캔 반찬 3종, 볶음고추장 튜브2개, 볶음김치 2개)
소형 양념세트(올리브기름, 들기름, 간장, 소금, 설탕, 후추, 레드페퍼, 파슬리가루)
요가매트, 소형 폼롤러, 운동 밴드, 손 선풍기 2개, 피크닉매트 2개, 에코백 1개, 룸스프레이 1개
물티슈 소형 4개, 대형 1개, 소형 티슈 4개, 수세미 1개, 미니 자물쇠(배낭용), 자전거 자물쇠
여권, 여권 사본, 캡쳐본, 프린트물(예매티켓, 할인쿠폰, 예약정보), 빈 파우치 2개(마그넷 담을 용도)
남편
긴 바지 2벌, 반 바지 3벌, 반팔티 5벌, 얇은 셔츠 1벌, 긴 양말 2개, 발목 양말 3개
캡모자, 등산모자, 등산용 바람막이 1벌, 얇은 바람막이 1벌
쉐이빙폼, 면도기, 렌즈, 렌즈액, 렌즈통, 안경, 힙색
아내
긴 바지 1벌, 치마 2벌, 원피스 1벌, 반팔티 5벌, 얇은 셔츠 1벌, 나시 2장, 레깅스 1장, 양말 2개
캡모자, 등산모자, 등산용 바람막이 1벌, 얇은 바람막이 1벌
화장품, 클렌징오일(화장솜에 적신), 악세서리, 머리끈, 면봉, 헤어밴드, 섬유스프레이, 드라이용 빗, 여성 용품
이렇게 45일 유럽여행을 설레임과 짐을 한가득 안고 시작했다. 하지만 쓸모없는 짐은 없었고 각자가 필요한 상황과 장소에서 그 역할을 다했던 좋은 여행 친구들이었다. 마음의 짐들 또한 당시의 상황에 필요한 고민들이었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현재에만 몰두해있는 시선을 고민과 생각을 통해 좀 더 장기적인 관점으로 보게하기 때문이다.
짐을 챙기느라 소란했던 여행의 시작이었지만, 여행하는 매일 아침은 눈을 뜨는 게 너무 설레었고 행복했다. 아침잠이 많은 내가 매일 새벽에 눈을 떠서 준비할 정도로 자발적인 새벽 기상이 이루어지는 놀라운 경험도 했다. 심지어 여행 당시에는 5월~6월이라 유럽의 써머타임이 적용되던 시기여서 하루가 길어졌음에도 이 시간이 느리게 가기를 바라고 바랄 정도였다.
과거 없이는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이는 미래가 없다. 그렇다면 미래를 위해 현재의 나에게 투자하며 누구보다 열심히 커리어를 쌓고 일을 하는것이 당연한 답이 아닌가? 하지만 때로는 반대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목표를 향해 무작정 쌓아가고 달려가는 삶을 잠시 멈추고 조금 멀리에서 스스로의 삶을 바라보자. 나는 왜 다른 사람보다 뒤쳐진것 같을까?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나? 삶의 목적과 방향성이 어느 지점을 향해 가고있으며 지금 나는 내가 바라는 삶을 향해 제대로 가고있는 것일까?
위의 질문들은 여행 전부터 마음에 챙겨둔 짐 중에 하나인데,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마음 한켠에 디폴트(default)로 넣어둔 짐일거라 생각한다. 아마 평생 짊어지고 살 것이다. 하지만 관점을 조금 달리해서 생각해보면 이 고민은 나를 힘들게하는 짐이 아니다. 현재에는 짐처럼 느껴지는 고민이지만 미래의 관점에서 이 고민을 바라보면 인생을 좀 더 의미있고 행복하게 살아가게하는 키맨(key man)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미래에 투자하기로했다. 우리가 함께 바라고 이루어가길 원하는 미래의 가정과 일을 위해 익숙한 곳에서 멀리 벗어나 둘만의 여행을 하기로 계획한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조금 긴 호흡의 여행을 통해 희로애락을 함께하며 서로를 돕고 세우는 동료가 되었고, 가정과 각자의 일에 대해 깊고 넓은 대화를 하며 미래를 함께 그려가는 금 같은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비행기를 타서 자리에 앉으면 보이는 것이 있다. 바쁘게 수화물을 싣고 가는 트럭, 대기하는 비행기들, 활주로, 풀과 건물 등등…. 앞의 사진처럼 새하얀 구름이 파란 하늘에 떠있는 아름다운 모습은 비행기가 높이 날아올라야만 보이는 풍경이다. 익숙한 곳을 벗어나고, 활주로를 달리고, 탁한 회색 구름을 뚫고 날아야 비로소 볼 수 있는 것이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기 위해서는
필요한 과정들이 있다.
때로는 조급한 마음에 과정을 생각하지 못하고 빠른 결과를 바랄때가 있다. 여행 전의 내가 그랬고 사실 여행이 끝난 지금도 그 마음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진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달라진 것은 있다. 현재를 조금은 먼 미래의 관점에서 보고 내 속도에 맞춰서 사는 자세이다. 편하고 익숙한 것만이 답은 아니고 제대로된 방향을 가고있다고 해도 탁한 구름을 지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빨리가고 늦게가고의 문제가 아니라 하늘 위로 제대로 날아가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I hope you are happy trip every day!
See, I’m doing a new th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