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첫날부터 코로나에 꽉 막힌 스페인 마드리드 국제공항
2022년 5월 10일 17시 50분에 인천에서 아부다비로 가는 비행기가 출발했다. 직항을 제외하고 가장 소요시간이 짧고 저렴한 가성비 티켓이었는데, 아부다비 공항에서 약 4시간을 경유하고 새벽 3시 10분 마드리드행 비행기를 타야 하는 피곤한 스케줄이었음에도 나에겐 그 시간이 설렘이었다.
밤 12시 가까이에 내린 아부다비 공항은 경유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늦은 밤 시간이라 사람도 많이 없고 조용할 거라고 생각했던 공항은 낮 시간 못지않게 여행객들로 채워져 있었다. 우리처럼 경유하는 사람들도 곳곳에 보였는데, 늦은 시간임에도 설레는 얼굴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을 보며 나의 마음도 같이 설레었다.
처음 보는 낯선 얼굴,
낯선 의복들
하지만 같은 공간에서 여행을 위한 비행기를 기다린다는 것 하나 만으로 그들과의 유대가 생겼다. 각자가 다른 방향으로 떠나겠지만 같은 기다림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반갑고 의지가 된다는 것이 참 이상하고도 코가 간지러웠다.
새벽 3시 10분. 탑승시간 20분 전부터 38번 게이트 앞에 서서히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하더니 탑승 시간이 되자 사람 기차가 완성되었다. 여기저기 흩어지듯 앉아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정리된 하나의 줄을 이루었다. 이제 진짜 여행의 출발선에 선 것 같았다. 그렇게 설레었던 아부다비에서의 새벽이 점점 끝나가고 있었다.
도착 예정 시간이던 9시보다 조금 더 이른 시간에 마드리드 바라하스 공항에 도착했다. 이른 시간에 도착했다는 즐거움과 드디어 스페인에 도착했다는 설렘이 너무 컸던 걸까? 코로나의 무시무시한 영향력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코로나 PCR 검사 인증과 어플 인증까지 무사히 마친 후 수화물 게이트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짐을 찾아간 후였다. 입국 심사장에서 줄을 서기 전에 잠시 화장실을 다녀왔던 게 화근이었다.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에 줄은 끝도 없이 길어져서 같은 비행기에서 내린 사람들보다 한참이나 늦게 수화물 게이트에 도착하게 된 것이다.
여행에서의 방심은
시간 낭비로 이어진다.
코로나 전에는 입국심사에서 여권만 확인하면 되었기 때문에 시간이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는데, 코로나로 인해 여권과 PCR 확인 그리고 어플 확인까지 더해져서 대기 시간이 배로 늘어나 있었다. 공항에서의 1~2시간이 충분히 긴 시간이라고 생각했던 우리에게 예상치 못한 변수였다.
첫날 일정부터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지만, 그것도 여행의 경험이고 에피소드라고 생각하며 우리는 끊임없이 긍정 회로를 돌렸다. 혹시나 계획대로 되지 않더라도 속은 쓰리겠지만 그 속에서 의미와 교훈을 찾는 여행을 하자고 이 시간을 지나며 다짐했다.
우리에게는 여행 첫날부터 기대하던 일정이 하나 있었다. 세계 3대 미술관으로 유명한 프라도미술관이었는데, 우리가 예매한 관람 시간이 오후 12시였다. 마드리드에서의 일정 상 오늘 보지 못하면 다음을 기약해야 했기 때문에 입국 심사가 늦어질수록 허탈하고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그럼에도 긍정 회로를 돌리며 열심히 다리를 움직여 입국장을 나왔다.
하지만 입국 심사를 마치고 짐을 찾아 나온 시간은 오전 10시 52분. 거의 11시가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공항에서 도심까지는 아무리 빨리 가는 교통 편이라도 50분 정도가 소요되는 거리였기 때문에 우리가 프라도 미술관에 갈 수 있는 확률은 아주 미미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렌페 티켓 발권이 어려워서 헤매다가 시간이 계속 가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는 안되겠다고 생각을 하고 긴급회의를 했다.
프라도 미술관을 갈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
프라도 미술관 예매에 사용한 돈은 1인당 15유로로 총 30유로였다. 한화로 4만원 정도 하는 금액이었는데, 포기하기에도 애매한 금액이었다. 포기하고 맘 편히 숙소로 갈지 아니면 최대한 가보는 것으로 할지 마음 속에서 갈등이 고조되던 그때, 좋은 의견이 나왔다. 시간과 체력을 위해 택시를 타고 가자! 길바닥에 버린 10분을 회복하고 헤매는 사이에 지쳐버린 체력도 보충할 겸 우리는 택시를 타고 가기로 결정했다.
렌페 티켓을 뒤로하고 급히 택시 가격을 알아본 후에 우리는 택시 승강장으로 향했다. 공항 택시 승강장 앞에는 많은 택시들이 정차를 하고 흥정을 하고 있었는데, 마드리드까지 가는 택시들은 거의 30유로로 고정 가격이 있었다. 우리의 짐 규모를 보시고는 택시 안내를 맡으신 여자 직원분이 우리를 택시로 안내해 주셨다.
정신없이 짐을 싣고 택시에 탑승하기 전에 기사님에게 아토차 역 근처에 위치한 숙소 위치를 보여드렸다. 다행히 기사님이 아는 곳이라서 바로 출발을 했고, 나는 조용히 구글 지도를 켜서 경로와 소요시간을 확인했다. 차로 25분 거리였다. 대중교통보다 줄어든 시간에 그제서야 안도를 하며 택시에 몸을 맡겼다. 현재 시각은 11시 10분이었다.
입국부터 너무도 정신이 없었던 3시간을 지나며 아부다비에서부터 가져왔던 설렘은 산산히 부서지고 있었다. 하지만 부서진 설렘 위로 또 다른 설렘이 계속 쌓이는 게 여행의 매력이라는 것을 마드리드 여행의 시작을 통해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 도시부터는 절대 도착한 첫날부터 일정을 무리하게 잡지 않겠다는 여행의 필수적인 교훈도 얻을 수 있었던 값진 경험이었다.
여행과 삶은 닮아있어서,
내가 사는 삶과 일도
이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에는 모두 설렘을 가지고 시작하지만 내 계획대로 되지 않거나 의외의 변수가 생기게 되면 쉽게 포기하고 좌절하게 된다. 지금 내가 하는 일들도 비슷한 궤도를 지나고 있다. 하지만 이 여행에서 배운 것처럼 설렘이 부서진 후에는 또 다른 설렘이 온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리고 절대 처음부터 욕심부리고 무리하지 말자. 혹시나 내 계획이 틀어지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해보자. 그렇게 천천히 내 속도에 맞춰서 걸어가다 보면 그 후에 얻는 값진 경험들이 있을 것이고 그것이 나를 성장시킬 것이다.
I hope you are happy trip every day!
See, I’m doing a new th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