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시별 Feb 26. 2021

나는 운동선수였다.

용기가 필요한 분들께

중학생이 된 해, 여느 때와 같은 체육 시간이었다. 우리는 이유도 모른 채 체육 선생님과 함께 어디론가 이동했다. 우리가 도착한 그곳은 사격장이었다. 총을 쏘는 법에 대해서 안내받았고 선배의 시범사격이 있었다. ‘탕’, ‘탕’ 시원한 탄소리와 다섯 발이 하나의 구멍으로 모여있는 표적지는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줄을 서 다섯 발씩 사격했다. 친구들의 탄은 표적만을 피해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내 차례가 되고 무심히 쏜 다섯 발은 표적지에 제대로 꽂혀있었다. 그해 여름, 코치님과 감독님의 몇 번의 반복적인 설득 끝에 나는 운동선수가 되었다. 운동선수가 무엇인지 체육특기생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했다. 미래의 진로를 결정할 만큼, 내 모든 것을 걸 만큼 진지한 고민은 하지 않았다. 단지, 나는 그 순간이 즐거웠고 흥미로웠다.

엘리트 체육 선수 육성을 목적으로 운영되는 운동부였다. 학교에서는 체육특기생들에게 운동해나갈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주었고, 이것을 혜택이라고 이야기했다. 선수들은 혜택을 받은 만큼의 성과를 내야 했고, 학교 수업과 성적이 아닌 시합의 결과에 집중해야 했다. 한번 발을 들여놓은 운동부의 세계는 냉혹했고 모든 것은 시합 결과와 등수로 결정되었다. 되돌아갈 수 없었다. 체육특기생으로 고등학교를 진학했고 졸업 후에는 자연스레 사격팀이 있는 대학교에 입학했다. 고등학교 운동부에서 대학교 운동부로 소속이 바뀌었을 뿐.

언제부터였을까? 지긋지긋했다. 지겨웠다. 변할 것 같지 않은 현실이 답답했고 되돌아가고 싶었지만, 너무 무서웠다. 흥미를 잃었던 것일까. 다른 무언가를 하고 싶었지만, 그 무언가가 뭔지 알 수 없었고 주변에 도움받을 곳은 존재하지 않았다.

코치님에게 면담을 신청했다. “운동을 그만두고 싶어요. 다른 것을 하고 싶어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내가 상상했던 그 무엇보다 잔인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네가 뭘 할 수 있을 거 같아? 딴생각하지 말고 운동이나 열심히 해. 기록이 안 나온 이유가 있었네.” 이날 이후 기록이 잘 나오지 않는 순간마다 코치님은 소리쳤다. “너 아직도 딴생각하냐!” 두루마리 휴지가 날아왔다.

친구들에게 이야기했다. “나 운동이 그만두고 싶어. 다른 걸 할 수 있을까?”

“그만두면 되지. 그냥 그만둬~” 친구들은 이런 게 고민거리가 되기는 하냐는 듯 답했다. 운동부의 세상에 대해서 알지 못하니까. 알 수 없었겠지. 이것이 불량서클 일진회에서 빠져나오는 것만큼의 용기가 필요한 일일 거라고 이야기했다면 이해할 수 있었을까?

“대학교 갈 때까지만 참아. 수능 봐서 대학 갈 수 있어?” 다들 입을 맞춘 양 나를 우물 안으로 밀어 넣기 바빴고 바깥세상이 무서웠던 나는 다시 눈을 감고 그 안으로 돌아갔다.

그날도 평범한 하루였다. 하늘이 맑았고 시원한 바람과 함께 평소보다 기분이 좋았던 것만 빼면 말이다.

어디서 나온 용기였는지 그 날 난, 운동부를 그만두겠노라 선언했다. 학과장 교수님께 휴학을 신청했다. 긴긴 대화와 설득 끝에 휴학 신청서에 도장을 받을 수 있었고, 그 도장이 앞으로의 내 인생을 변화시켜줄 증표라도 되는 양 설렜다.

휴학을 하고 태어나서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취업에 필수라고 말하는 자격증들을 하나씩 취득하기 시작했고 대학교 졸업에 필요한 조건도 미리 준비했다. 운동부는 그만뒀지만 그래도 졸업은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진지하게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 고민했다. 경쟁의 세계에서 지내온 내 시간의 승부욕은 이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심리학이라는 새로운 전공을 시작으로 임용고시를 거쳐 상담교사가 되었다.

‘선생님, 저는 이거 아니면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학생들이 자주 상담에서 하는 말이다. 어른들도 말한다.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 다른 일을 하고 싶은데’ 누구나 살면서 끝도 없이 미래와 진로에 대해서 고민한다. 나는 안다. 익숙함을 벗어던지는 일에는 굉장한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알을 스스로 깨고 나오는 용기에 대해 이제는 말해 줄 수 있게 되었다.

“너의 세계는 아주 넓어. 우리 안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어. 우물 밖으로 나가보자. 내가 너의 손을 잡아줄 테니….” 겁내지 말라고 용기를 내라고…. 그렇게 응원하고 싶다. “무서워 말아요. 우리” 그리고 이건 또 다른 알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는 나에게 하는 응원이기도 하다.

작가의 이전글 양면의 메시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