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용서합니다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다

by 최서연




명상 일기 39일 차


며칠 만에 다시 명상으로 돌아왔다.


숨 쉬는 고래 | 마음이 힘들 때 나를 안아주는 너그러운 명상






최대한 혼자 있는 시간을 확보하기로 했다. 혼자 있게 되면 또 바삐 뭘 하려고 하지 않고, 시간을 낭비한다는 느낌이 들만큼 쉬기로 했다. 부족한 잠을 자거나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보거나, 그냥 창문을 열어두고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누워있거나.


미룰 수 있는 일정과 약속은 최대한 미루고, 혼자 있는 시간을 제일 중요한 약속인 것처럼 마련해 놓고 내 마음이 괜찮아질 때까지, 충전이 될 때까지 쉰다 생각하자 하면서도 자꾸만 조급해지려는 마음을 좀 가라앉히려고 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고 나니, 다시 명상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인정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내 성격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다.


어쩔 수 없는 외로움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다.


이 세상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다.


이만큼의 거리가 있을 때 건강한 너와 나의 관계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다.








나는 나를 용서합니다.



사람이 많은 곳에 자주 노출되면 지쳐버리는 나를 용서합니다. 그렇게 지치면 사람이 너무 싫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따뜻한 온기를 그리워하지 않은 적이 없는 나를 용서합니다. 그래서 또 열심히 사람들의 틈바구니 속을 헤매고 다니다가, 금세 지쳐버리고 또 아무도 없는 곳으로 도망가버리고 싶다고 생각하는 나를 용서합니다.


더 많이 일해야 하지 않냐고,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다그치던 나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사실 나를 가장 괴롭히던 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였음을, 그걸 다른 사람에게 덧씌워서 저 사람이 나를 힘들게 한다고 생각했던 나를 인정하고 용서합니다. 그러는 동안 온전히 쉬는 시간도 없이 그 다그침을 받아내던 나를 인정하고 용서합니다.


일에 온전히 집중하고, 방해받기는 싫어하면서 가끔은 외롭고 심심함을 느끼는 나를 인정하고 용서합니다. 혼자 여러 가지 하는 일이 많아 바삐 자유롭게 움직이는 걸 좋아하면서도, 내가 잠깐 심심할 때만 딱 맞춰서 함께할 수 있는 이가 있기를 바라는 욕심과 결코 내 마음처럼 되지는 않는 세상을 인정하고 용서합니다.


마음이 맞으면 또 한없이 가까워지고 싶어 하는 나를 용서합니다. 사실은 이 정도의 거리가 있을 때 가장 너와 내가 건강하게 관계를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너와 나 사이의 건강한 거리를 인정하고, 그럼에도 무작정 가까워지고 싶어 했던 나를 용서합니다.


세상의 모든 순간과, 세상의 모든 부분이 나에게 따뜻하고 친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인정하기 힘들어, 매번 기죽고, 눈치 보고, 상처 받았던 나 자신을 용서합니다. 세상에는 감동할 정도로 따뜻한 면과, 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차갑고 날카로운 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용서합니다.


내가 열심히 노력하는 만큼, 그만한 반응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나 자신과, 내 마음 같지 않은 사람들과 세상을 인정하고 용서합니다. 신경 쓰지 않겠다고, 신경 쓰지 말자고 다짐해놓고도 남몰래 계속 귀를 기울여 남의 평가와 인정을 받아보고자 했던 나를 인정하고 용서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온전한 내 편이 되어주겠다고 다짐하고는, 내 마음과,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이지 못했던 나 자신을 용서합니다.


오늘은 이렇게 용서해 놓고도, 나 자신을 다그치지 않겠다고 다짐해놓고도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할지도 모르는 나 자신을 용서합니다.


그래도 조금씩 알아채는 순간이 빨라지기를, 길을 잃고 헤매다가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힘이 조금을 키워졌기를. 이 마음을 오래 잊어버리지는 않기를. 나에 대한 사랑을 보내주는 것을 망설이지 않기를.


나는 나를 용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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