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죽아였던 나는 요즘 따뜻한 아메리카노만 마신다.
오랜만에 포항 이모네 갔을 때였다. 다 같이 식사를 하고, 햇볕이 좋아 나른해지는 오후, 같이 커피나 한잔하면 어떠냐고 물었다. 언니랑 이모랑 이모부도 커피를 드시겠다고 해서 내가 커피를 탔다.
아주 뜨거운 물로 커피를 탔다가, 드시기 어려울까 싶어 미지근한 물을 조금 섞어서 드렸다. 이모부가 커피가 왜 이렇게 미지근하냐고 물으셨다. 마시기 어려울까 봐 물을 섞었다고 하니, 커피는 마시기 어려울 정도로 뜨거워도 괜찮다며 웃으셨다.
이모부는 매일 아침, 뜨거운 커피를 한잔 사서 택시 안에 두신단다. 커피 향이 차 안에 가득 퍼지면 그 냄새가 참 기분이 좋으시다고. 어떤 집의 커피는 그렇게 두면 향이 가득 퍼지는데, 어떤 집에서 산 커피는 그렇게 뜨거운데도 냄새가 하나도 안 난다며, 아침마다 곰곰이 냄새가 좋은 커피 한잔을 실러 가신단다.
마시기도 어려운 뜨거운 커피가 채워준 냄새를 싣고 다닐 이모부의 택시.
그 얘기가 따뜻해서 집에 올라와서도 오래도록 기억이 났다.
또 설에는 오만 원짜리 한 장보다 천 원짜리 열 장을 더 좋아하는 애기들에게 줄 세뱃돈을 은행에서 바꾸느라 멀리 가는 손님을 그냥 놓치셨다고 한다. 돈 바꾸는 게 뭐 중요하냐고 이모에게 한참 잔소리를 들으시면서도. 두둑이 바꿔온 천 원짜리를 예쁜 봉투에 넣어주겠다고, 라이언이 그려진 편지지 세트를 사서 곱게 담았을 이모부를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나는 포항 집 식구들의 그런 따뜻함이 좋다. 그래서 요즘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시게 된다. 따뜻한 아메리카노가 찰랑거리는 잔을 두 손으로 감싸면 포항 집의 따뜻한 기억이 가득 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