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내려 1번 출구로 나오자마자 버스 정류장을 봤다. 720, 370,..... 7217!
이제 막 중앙 차선에 진입하고 있었다. 얼른 횡단보도까지 뛰어가 빨간불이 들어오길 기다렸다. 다행히 맨 앞에 서있던 720 버스가 출발하지 않아서 나는 여유롭게 기다렸다 탈 수 있게 되었다. 뒤에서 있는 7212 버스로 걸어가며 720 버스의 기사 아저씨를 보았다. 앞문도 열어놓고 아직 타는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눈치였다.
‘기사 아저씨 되게 여유 있으시네.’
사람들이 타자마자 쏜살같이 문을 닫고 출발하고, 정류장 뒤에서 한번 문을 열었다면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은 지나쳐 가버리는 버스들도 많은데 말이다.
생각해보니 내가 종각역에서 뛰어서 횡단보도에 도착하고, 빨간불이 들어오길 기다려서 건너올 때까지 서있으셨던 거라면 꽤 오랜 시간이잖아?
앞에 있는 버스가 출발하면 뒤에 서있던 7212 버스가 진입할 줄 알고 정류장 뒤쪽으로 걸어갔는데, 버스 행렬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뭔가 잘못된 거 같은데.
720 버스 기사 아저씨는 버스가 고장 나서 출발하지 못하고 있던 거였다. 이내 뒤에 서있던 버스 기사님들이 버스에서 내려서 720 기사님의 재시동을 도와주다가 아무래도 고장인 것 같아서 회사에 연락하기로 하셨다.
나는 그 상황이 해결될 때까지 정류장에 서있기로 했다.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 상황이 어떻게 해결되는지 궁금했다.
서울의 한복판, 한복판 중에서도 진짜 한복판인 광화문과 종각 사이에 버스 차선이 갑자기 막혔다고 생각해보면, 그 뒤에 따라올 수많은 버스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면 조금 아찔할 정도이다.
오분도 안돼서 뒤쪽에는 종각역 사거리를 막을 정도의 버스 행렬이 이어졌고, 뒤에 있는 버스 기사님들은 한 대씩 차례로 후진을 하고, 전화로 뒤에 있는 기사님들께 상황을 알렸다. (한 분 한 분의 노력과 선택으로 조금씩 해결되어가는 광경이 감격스럽기까지)
720 버스는 계속 서있었고, 나는 7212 버스와 함께 빠져나왔다. 그리고 버스들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일반도로로 정상 운행되었다.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들. 그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느끼는 것들은 사실 망가지기 정말 쉬운 것들이다. 차 한 대만 고장 나도 몇십대의 버스와 사람들과 그 교차로에 서있는 차들이 초록불을 받아도 움직이지 못하게 된다.
어떤 이들은 구조와 시스템을 계속 이야기하지만, 망가지지 않은 모든 것들은 보이지 않은 개개인의 선택으로 지켜지고 있다.
올바른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세상을 바꾼다는 말이 생각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