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보다 좀 눈치 없고 더 멍청했다면 마음만은 편하게 살 수 있었을까
일상으로 돌아왔다. 시간이 되면 출근할 곳이 있었고, 이번에는 잘해봐야지 싶었다. 지난번처럼 너무 욕심내지 않고, 너무 무리하지 않고, 얇고 길게 가자고 생각하면서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생각보다 나를 반겨주고 맞아주는 사람들과 신경 써주는 사람들 덕분에 처음에는 잘 적응하는 듯했다. 다시 일하고 싶었던 곳이라서 처음엔 너무 즐거웠다. 사람들도 내가 좋아 보인다고 했고, 나도 예전보다는 단단해진 기분이었다. 출근할 곳이 있다는 것이 좋았고, 그곳에서 보낼 시간이 기다려졌다.
그게 깨지는 데에는 채 한 달이 걸리지 못했다. 관계가 깊어지면 그만큼 자세히 보게 된다. 그 사람을, 그리고 그 사람을 대하는 나를. 여느 직장이나 그렇듯 자기 기분 안 좋다고 내 멘탈을 깨부수는 상사가 있고, 자기 필요할 때만 친한 척하는 박쥐 같은 사람들이 있다. 진심은 생각보다 쉽게 느껴져서 얄팍한 웃음은 바로 알아채버린다. 눈치가 빠른 편이 아닌데도 왜 그런 건 그렇게 잘 느끼는 걸까. 얄팍하게라도 웃어주면 진심인 줄 알고, 그냥 믿어버릴 수 있으면 내 마음이 조금 더 편할까. 지금보다 좀 눈치 없고 더 멍청했다면 마음만은 편하게 살 수 있었을까. 아니면 차라리 다 이겨먹을 만큼 영악하기라도 하던가. 나는 이도 저도 아니게 항상 어중간했다. 눈치도 못 챌 만큼 멍청하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이겨먹을 만큼 똑똑하지도 않은.
여러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나는 각각의 사람들에 대한 입장을 결정해야 하고 그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일관성을 유지해야 했다. 정을 줄 거면 정을 주는 쪽으로, 정을 안 줄 거면 정을 안주는 쪽으로 노력해야 한다. 조금 더 신경 써서 경청해주고 호응해주든가, 어느 순간 마음이 가더라도 괜히 오버하지 않도록 나를 채찍질하든가. 나는 자연스러우려고 노력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느끼기에는 어땠을지 모르겠다. 누군가가 별거 아닌 내 말에 호응하고 공감해주는 것이, 그 선한 마음이 고마우면서도, 결국 자기가 나눠준 만큼의 호의를 돌려받고 싶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 순간엔 나도 성의껏 화답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돌려줘야 하는 빚이 생긴 것처럼 피곤할 때도 있었다. 피곤한 순간들이 늘어났고, 이내 모두의 호의가 귀찮게 느껴졌다. 어른이 되면 자연스럽게, 서로 주고받을 마음을 계산하지 않고, 가까워지는 건 불가능한 걸까.
몇몇과는 가까워지고, 몇몇과는 적당한 거리를 두었다. 더 이상 누구와도 깊어지고 싶지 않았다. 어떤 형태로든. 나이가 들수록 관계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는 것 같다. 어릴 때일수록 뭐 하나라도 맞으면 그저 친한 친구가 되는 것으로 수렴되지만, 나이가 들면 들수록 여기까지만 하고 질척대지 말아야지 라며 쿨한 척을 해야 돼서 그런 걸까. 생각하는 바에 대한 말은 잘 통하지만 개인적으로 친해지려고 하지는 않는 사람. 일하면서 힘든 일은 서로 잘 털어놓지만 사적인 얘기는 하지 않는 사람. 퇴근하고 매일 같이 커피를 마시고, 맥주 한 잔을 하면서도 그만둔다는 얘기는 남의 입을 통해 듣게 하는 사람. 일하면서는 의견이 안 맞아 맨날 싸우는 것 같아 보이지만 끝나고는 누구보다도 연락을 많이 하는 사람. 잘 보이려고 노력하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무시하는 사람.
많은 모습들은 나일 때도 있었고 상대방일 때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