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꽃을 꽂으면서 배운 것들

내가 만들고 싶었던 꽃이 저런 모양이었을까?

by 최서연



인생의 큰 궤적이 변하는 경우가 있을까? 무슨 일이 있어도 인생은 정해진 궤도가 있고, 거기서 그렇게 크게 벗어나는 일은 없는 것 같다. 그게 참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책을 한 권 냈다고 해서 내 인생이 크게 변하지는 않았다. 친구들과 아는 사람들과 몇몇의 주변 사람들에게 책을 팔고, 나의 글이 읽혔지만, 나의 하루는 여전히 비슷하게 돌아갔다. 다만 이따금씩 친구들이 책을 샀다며 연락을 해오고, 축하의 말을 해주고, 더 가끔씩은 내 글을 읽고 위로를 받았다는 내용의 연락을 해오기도 했다. 그런 순간이면 잠깐이지만 마음이 따뜻해졌다.


책을 내고, 다니던 일을 그만두었다. 전업 작가가 될 자신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누가 봐도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매일매일 다른 방법으로 삽질을 해대는 것이 짜증 났던 회사에 다시 돌아가면서 다짐했다. 회사란 원래 삽질을 해대며 시간을 보내고, 그것들이 의미 있는 일인 양 자위하면서 다니는 거라고. 더 좋게, 더 나은 방향으로,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올바르게 바꿀 수 있다는 희망과 의지를 버리고,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라면서 다니자고. 그런 마음으로 돌아가면 조금은 잘 버틸 수 있지 않을까 했다. 몇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나는 여전히 그런 상황들을 견디기 힘들어한다는 것과, 아무리 내려놓으려고 해도 이 일은 내 영혼을 갉아먹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적어도 나를 갉아먹지 않는 일을 찾고 싶었다. 글을 쓰면서 할 수 있는 일. 내가 갉아 먹히면서 쓰는 글은 읽는 사람에게도 전달될 거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조금이나마 즐거운 에너지를 줄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다. 설령 돈을 조금밖에 못 벌더라도, 남들이 보기에 대단한 일이 아닐지라도.


동생이 다녔던 플로리스트 학원을 찾아 내일 배움 카드로 등록했다. 꽃을 만진다는 것은 이유 없이 기분이 좋은 일이었다. 이유 없이 기분이 좋아지는 일. 그런 일들은 갈수록 찾기가 어려워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떤 방식으로든 경험하는 것은 많아지고, 한번 경험한 것들은 점점 무뎌져서 더 이상 와 닿지가 않는다.


또 다른 새로운 것을 찾아서 새로운 순간들을 경험하더라도, 그것들이 내 인생을 대단히 바뀌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시간들이 훨씬 더 많아지고 난 후에는, 모든 것에 그냥 다 무뎌져 버린다.


플라워 수업을 들으면서 배운 게 있다면, 세상에는 나보다 훨씬 꼼꼼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세상 꼼꼼한 성격이라고 생각했었고, 나를 겪어왔던 모든 사람들도 그렇게 말해왔었다. 그런데 사람들과 같이 꽃을 꽂으면서 ‘내가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꼼꼼하고 손이 야무진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간에 나는 항상 애를 써서 열심히 하고, 그만큼을 사람들이 알아주길 바랐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내가 얼마나 꼼꼼하게 살펴서 해냈는지, 내가 하나의 오점도 남기지 않기 위해 얼마나 여러 번 체크를 했는지, 그 수고를, 노력을, 능력을, 알아봐 주길 바랐다.


알아봐 주길 바라는 만큼 하나라도 지적을 받으면 그렇게 자존심이 상할 수가 없다. 내가 얼마나 애를 썼는데, 내가 얼마나 여러 번 살피고 꼼꼼히 한 건데, 그 하나의 실수로 나의 노력이 무너지는 것 같아서, 나를 이런 헐렁한 사람으로 볼 것 같아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하지만 나보다도 훨씬 꼼꼼하게 꽃 한송이, 한송이를, 잎사귀 하나하나를, 꽂았다가 뽑았다가, 조금 잘라냈다가 길이를 맞추고 다시 한번 꽂았다가, 다른 잎사귀로 바꾸었다가, 필러를 바꾸었다가, 꽂았다가, 다시 빼는 게 나은가 하고 뽑아냈다가. 결국은 플로럴 폼에 구멍이 남지 않아 꽃을 꽂을 수 있는 자리가 없게 되는 걸 보면서, 꽃의 얼굴이 원하는 방향을 보고 있지 않아서 줄기에 철사를 감아 방향을 바꾸려다가 그만 꽃줄기가 꺾이는 것을 보면서, 누가 봐도 칼로 베어낸 듯이 길이를 맞추어 꽃을 꽂은 사람들의 작품을 보면서, 나는 ‘내가 만들고 싶었던 꽃이 저런 모양이었을까?’ 생각했다.


잎사귀 하나하나가 내가 생각한 대로 배열되고, 꽃의 얼굴 하나하나가 내가 생각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지 않더라도, 오늘 내가 받은 꽃은 이거니까, 오늘 내가 받은 꽃의 그 모습 그대로를 나는 바라봐줘야지.


어차피 완벽한 날은 없으니까. 어떤 날은 실수를 하는 날도 있고, 어떤 날은 운 좋게 잘 된 날도 있고, 또 어떤 날은 생각지 못하게 도움을 받는 날도 있고, 반대로 어떤 날은 방해를 받는 날도 있어서 모두가 내 뜻대로 되진 않겠지만, 완벽한 날이 없듯이, 완벽한 나도 없으니까.


완벽한 꽃도 없고, 완벽한 날도 없는데, 왜 완벽하지 않은 나는 원망을 하게 될까. 나도 완벽하지 않을 수 있는 거야. 어쩌다 운 좋게 완벽한 날이 생길 수도 있지만 매일을 완벽할 수는 없는 거야.


나도 흔들리는 인간일 뿐이고, 나를 나라는 모양의, 나라는 색깔의 꽃으로 봐줄 수는 없을까. 내가 딱 원하는 모양의 가지와 잎사귀를 가지고, 내가 원하는 위치에 꽃봉오리가 생겨서 원하는 방향으로 얼굴을 마주하고, 꽃잎 어디 하나 상한데 없이, 완벽하게 예쁜 빛깔로만 존재할 수는 없으니까. 나라는 사람, 그 자체로 그 본연의 모양을 가진 꽃인 거라고. 어떤 날은 완벽하지 않을 수도, 충분히 실수할 수도 있다고, 나는 그렇게 매일매일 다른 꽃을 꽂으면서 조금은 나의 완벽하지 않음을 탓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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