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멈출 수 없는 먹고 살기

하루는 그냥 나를 스쳐 지나간 거 같다. 내가 그 하루에 있었을까?

by 최서연




나는 다시 일주일에 적어도 5 일, 하루에 적어도 9 시간 30 분씩을 꼬박꼬박 보내야 할 곳이 생겼다. 출근 시간이 정해져 있었기에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겨를이 있었더라도 그 생각들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찌어찌 살다 보니 내게 주어진 출근 시간에 맞춰서 일어나고 준비를 하는 것만 안중에 넣고, 다른 생각들은 방구석으로 미뤄두었다. 아침의 출근길은 익숙한 풍경이라 출근하는 길에 아침 햇살이 비치는 한강이 보여도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그저 도착하기를 기다릴 뿐. 아침엔 항상 그렇듯이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려고 줄을 서고, 주문을 하고, 샷 추가도 한다. 커피를 마셔야 하루의 톱니바퀴가 끼워 맞춰져 돌아가는 느낌이다. 그리고 나면 별반 다를 것 없는 시간들이 나를 스쳐 지나간다. 일을 하고, 점심을 먹고, 일을 하고, 커피 한잔을 마시고, 일을 하면서 퇴근 시간을 기다리고, 퇴근 시간이 되면 반짝, 기분이 좋아졌다가 똑같은 퇴근길을 거슬러 올라간다. 집에 가면 그저 편하게 늘어질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얼른 집에 가려는 게 나의 유일한 관심사가 된다. 집에서 저녁을 먹으며 좋아하는 티비 프로를 켜본다. 웃으면서 밥 먹고 싶은데, 밥 먹을 때라도 웃고 싶은데. 그렇게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간다.


그 하루는 그냥 나를 스쳐 지나간 거 같다. 내가 그 하루에 있었을까? ‘내’가?


그렇게 잠이 들고나면 어김없이 다음날 아침이 나를 찾아왔고, 아직 일어날 시간이 아닌데 잠이 설깨어버린 정신없는 순간부터 그 사람이 생각이 났기 때문에, 다시 잠이 들려고 노력하는 것도 힘들었다. 일찍 잠이 깨어 버린 그 시간이 원망스러워서 잠이 깨면 그냥 일어나서 아무 생각 없이 출근 준비를 했다. 출근 시간보다 많이 일찍 나가는 것이 익숙해져서 출근 전에는 항상 햇볕을 쬐며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면서 햇볕이 따뜻하고, 출근시간까지는 아직 여유롭고, 커피가 맛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헛헛한 마음을 어쩔 줄을 몰라했다. 일할 곳이 있고, 잘 곳이 있고, 먹을 것이 있고, 사지 멀쩡히 아픈 데가 없는데도 행복해하지 못하는 나는 나쁜 사람 같아서 두 배로 힘들었다. 감사한 줄 알려고 노력하는데도, 아무리 노력하고 생각해도 알아지지가 않고 행복하지가 않아서 자꾸만 죄책감만 늘어났다. 내가 진심으로 감사하지 못하면 누군가가 벌을 내릴 것만 같았다. ‘잃어봐야 정신을 차리지!’ 라며 지금 있는 이나마도 다 빼앗아가 버릴 것 같았다. 나는 지금 가지고 있는 거라도 잃지 않기 위해 감사한 마음을 가지려고 애썼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아서 괴로워지기만 했다.


정신을 팔 만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퇴근하고 직장 동료들과 맥주를 한잔하는 날에도, 떡볶이를 먹거나 한강에 바람을 쐬러 가는 날에도, 잠깐 커피 한 잔을 하러 가는 날에도, 그게 누구든 모임이 생길 법하면 빠지지 않고 함께했다. 달갑지 않은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혹은 그다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면, 대단히 달갑지 않다면, 혼자 있는 편을 더 좋아했던 나였다. 사람들의 모임에 매번 참석하고 끼려고 하기보다는 내키지 않으면 ‘ 아그럼 안가.’하고 쉽게 등 돌려 집에 오는 경우가 많았었는데, 원래의 내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원래의 나의 모습? 원래? 언제부터가 원래일까. 어릴 때는 모든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 했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강박을 가지고, 여기저기 친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던 적도 있었는데. 그때는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평했다. ‘너는 친하게 지낼 수 없는 사람이 없을 것 같다.’ ‘네가 화내면 무조건 상대방이 잘못한 거다.’ 또 언제부턴가는 다 나를 미워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면서 할 말은 하고 살아야겠다는 마음에, 그게 얼굴을 붉히거나 혼자가 되는 일이라도 망설이지 않고 내뱉던 때도 있었다. 그때는 주변 사람들이 나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역시 무섭다, 말 세게 한다.’


전자의 내 모습만 아는 사람과 후자의 내 모습만 아는 사람이 만난다면 그게 동일인물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어떤 방향으로 튀었든 내 마음에서 비롯된, 나의 모습이겠지만. 그 사람들은 자기가 본 찰나의 내 모습을 가지고 나를 정의하고 있을 텐데, 나 역시도 다른 사람들을 내가 본모습대로 정의하고 있겠지.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도 내가 보지 못한 그보다 훨씬 많은 면들이 존재할 텐데,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 내가 만난 건 누구일까. 그렇게 다르다면 어떻게 우리는 나라는 한 사람으로서 고유한 결을 유지하고 살아가는 걸까. 내가 나인지를 어떻게 알고, 네가 너인지를 어떻게 알지? 어쩔 수 없는 사회적인 동물이니까 타인이 생각하는 내 모습과 기대치에 나도 모르게 어느 정도 순응하고, 부응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일까? 그래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자기가 생각하는 나에 대한 정의를, 그 정의의 결을, 많이는 엇나가지 않게 보존할 수 있는 걸까?


나는 그 기대치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떤 식으로든 정의된 ‘나’에서 도망치기 위해, 살면서 여러 번 잠수를 탔다. ‘원래의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나는 이전과는 아예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으니까. 나는 이 세상이 차원의 세계라고 생각했다. 내가 직접 경험하고 만나는 차원, 내가 듣거나 읽어서 간접적으로 아는 차원, 그리고 내가 평생 알리가 없는 세계의 차원. 세 번째 차원은 나에게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세계다. 실제로 존재한다 한들, 그 실제가 나한테 와 닿을 일이 없는데 실제이고 아니고 가 뭐가 중요할까. 이 넓은 우주에 티끌만 한 인간으로 태어나, 영겁 같은 세월 중에 찰나의 순간만큼 살다가는데, 간접적으로라도 경험할 수도, 알 수도 없는 세계. 나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뭐가 다른가. 인연이 있다면 어떤 계기로든 만나서 나의 세계를 넓혀가는 사건이 되겠지만.


그래서 나는 이미 경험하고, 알던 세계라도 연결고리만 끊어버리면 아예 모르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만날 일도, 알리도 없는 차원의 세계로 사라져 버린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대로 행동하기가 힘들 때, 도저히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생각했을 때, 그래서 도대체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가 없을 때, 일상적인 말 한마디조차도 어떻게 대답해야 될지를 몰라서 ‘다른 사람이면 어떻게 대답했을까? 원래의 나는 어떻게 대답했을까?’를 고민하느라고 말 한마디도 할 수가 없을 때, 벼랑 끝에서 누구 하나라도 나를 위한 지푸라기라도 던져주기를 바랐지만 결국 나를 구할 수 있는 건 아무도 없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동굴 속으로 숨어버렸다. 모든 연결 고리를 끊어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고 핸드폰 번호를 바꾸고, SNS를 삭제하고 , 메신저와 인터넷상에 나의 흔적들을 강박적으로 찾아내어 삭제하고, 오늘 당장 죽더라도 나에 대한 기록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도록 내 기록을 찾아내어 청소하는 일을 했다. 죽기 위한 준비일 때도 있었고, 주변 사람들에게 잊혀지기 위한 행동일 때도 있었다. 제발 나에 대해 심심풀이로 입방아 찧어 대는 것을 멈춰주길 바랐다. 사실 나한테 그렇게 큰 관심도 없으면서, 그냥 씹을 안줏거리가 필요해서 씹어대는 사람들이 나를 어떤 형태로든 발견할까 봐 무서웠다.


그렇게 숨어버렸을 때는, 내가 나 자신에게도 당당하지 못할 때에는, 사람이 많은 곳에 걸어가는 것만으로도 식은땀이 나고 누가 나를 볼 것만 같은 기분에 겨울이 빨리 왔으면 했다. 두꺼운 패딩 점퍼에 모자를 쓰고 고개를 푹 숙이면 누가 지나가든 내 모습을 숨길 수 있을 테니까. 어쨌든 나는 변하기 위해, 떠나기 위해 의도적으로 연결고리를 끊어 버리고, 환경을 바꾸어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살았고, 원래라고 할 만한 나의 모습이 뭐라고 말하기도 어려워진 것 같았다. 원래는 그 옛날의 모습과는 달랐고, 종전의 내 모습과도 달랐고, 지금이 다시 원래의 모습이기도 했고, 혹은 그 훨씬의 모습일지도 모르는 내 모습을 가지고 만난 사람들로 다시, 내 빈 틈을 채우려고 노력했다. 사람들로 나의 빈틈을 채우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빈틈을 제대로 채우지도 않았다. 그냥 같이 시간을 때우는 것이었을 뿐. 그건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누구랑 만나서 무엇을 먹고 어떤 얘기를 하더라도 지루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내가 내 인생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하셨다. 주어지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그러다 보니 내 인생에 대해 수동적이고, 상처 받기 싫으니까 어떤 종류로든 관계가 깊어지는 걸 피하려고 하고, 어떤 일이든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것 같다고 , 그게 관계이든 일이든 뭐든. 운동회가 열리고 있는데, 달리는 사람을 그저 구경하고 있는 사람 같다고. 그래서인지 관계에 있어서 감정이 동요하는 일이 별로 없었고, 그래서 인생이 지겹다고 느끼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런 것 같았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 없이 나는 불행하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것 없이 그렇게 결정되어 있었으니까. 내 힘으로는 그 사람을 돌아오게 할 수 없으니까.


어떤 것을 해도 지루함은 해결되지 않았고, 뭐라도 할 일이 필요했다. 생각해보니 내가 숨 쉬듯이 자연스럽게 하는 것은, 생각하고, 글을 쓰는 것이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더 좋은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어서, 때로는 그저 네가 떠난 빈자리를 어떤 것으로도 채우지 못해서. 뭐라도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은 마음에 글 몇 자를 끄적거려서라도 너를 잡아두려고. 어떨 때는 그냥 자연스럽게 습관적으로, 그즈음에는 뭐라도 하는 척해보려고 생각하고, 써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막연하지만 언젠가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책을 만들어보자!’


예전에 같이 일했던 동생에게 독립 출판을 한 경험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 었었는데, 그 친구는 친구와 함께 하루 종일 본 것에 대해서 아주 자세히 묘사를 하는 내용의 책을 썼고, 인쇄도 직접 맡기고, 제본도 직접 스템플러로 해서 책을 만들었다고 했다. 내가 알고 있던 출판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나도 시도해 볼 수 있는 형식이 아닐까 했다. 독립출판에 대해서 아는 사람들에게 묻고, 찾아보며, 관련 자료를 끌어 모았다. 처음에는 온전히 손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손글씨에 나름대로 자신이 있던 터라 직접 손글씨를 써서, 제본도 내 손으로 바인딩을 하고, 10 권을 만들어서 팔더라도 일단 책이라는 것을 완성해서 팔아보자. 그것으로 나의 지루한 시간을 채우기로 했다. 그렇게 내가 쓴 글들을 모으고 정리하면서 시간을 보냈고, 그렇게 나의 첫 에세이 집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전 16화16. 먹고사는데 생기는 수많은 문제 중 하나,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