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단한 천국을 원하는 건 아닌 거 같은데
월급이라는 것이 나의 진통제가 되기에는 너무 약했던 것일까. 나는 하루하루 눈을 뜨는 것이 힘들어지기 시작했고, 아침에 눈을 뜬다는 것이 재앙으로 느껴졌다. 잠이 들면 영원히 깨어나지 않기를 바랐고, 제발 이대로 눈을 감으면 나라는 존재가 깨끗이 사라져 버리기를 간절히 빌었다.
내가 사라지기 위한 행동을 하는 것은 연락을 끊어버린 친구들에게는 다행히 전해지지 않겠지만, 최소한 내 가족들에게는 아픈 일이 될 것이니까 도움을 주지는 못할망정 민폐만 끼치고 사라지기는 싫은데. 그렇다고 그 들이 나를 이 고통에서 꺼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세상에 나를 구해줄 수 있는 사람이란 건 존재하지 않았고, 나를 구할 수 있는 건 나 자신 뿐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게 되었지만, 나는, 나를 구해 줄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이 상태가 계속되니 모든 게 너무나 지겨워졌다. 미안함도 지겨워지고 고마움도 지겨워져서 그저 다 놔버리고 싶었다.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가겠지. 이 꼴로 눈에 계속 거슬리는 게 더 답이 없을 것 같은데. 차라리 사라지는 게 홀가분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면 내가 대단한 천국을 원하는 건 아닌 거 같은데. 내가 노력한 만큼, 내가 마음을 준 만큼, 내가 투자한 만큼, 그보다도 더 많이 돌려받길 바라지도 않으니까 그저 내가 한 만큼만이라도 돌려받는 세상이기만 해도 살만할 것 같은데, 세상에는 그렇지 않은 것이 태산이다. 착하게 산 만큼 복을 받지도 않고, 나쁘게 산 만큼 벌을 받지도 않아.
그 와중에 그나마 등가교환이 되는 것은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이다. 내가 알고 있는, 잠깐이라도 기분이 나아지게 할 수 있는 아주 간단한 방법. 투자 대비 가장 확실한 만족을 주는 것. 그것은 내가 좋아하는 음식밖에 없다. 치즈가 가득한 피자를 한 입 물면 그 순간만큼은 기분이 좋아지니까. 매콤한 국물에 묻힌 떡을 쫄깃쫄깃 거리며 씹어 먹으면 그 순간만큼은 만족스러우니까. 진한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초코가 얼마나 진하게 느껴지는지 생각할 동안은 다른 생각은 안 해도 되니까. 그렇게 입으로 욱여넣은 음식은 짧은 순간이라도 좋은 기분과 교환되어 주었고, 당연히 급속도로 살이 쪘다. 살이 찌면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사람인 걸 알면서도 먹는 것을 멈추지 못하고 헐렁한 통장을 긁어대며 닥치는 대로 먹고 싶은 것을 먹어댔다.
아무것도 내 마음대로 안돼 는데 이거라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거라는 화풀이였을까. 먹다 보면 언젠가 멈추겠지, 먹다 보면 언젠가 괜찮아져서 안 먹어도 될 때가 오겠지. 그렇게 합리화하려고 애쓰며 소화하기 어려울 정도로 꾸역꾸역 먹고는 도저히 소화가 되지 않아 손가락을 집어넣어 토를 하곤 했다. 나를 위로하는 방법은 한편으로는 나를 망치기도 하고, 나를 망치던 직장 생활은 내가 살이 빠지게 해 주긴 했는데, 어떤 게 나은 걸까. 진정으로 나를 위로해주는 방법이 있을까. 나를 위로하면서도 나를 해치지 않을, 나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위로해주는 그런 게 과연 있기나 할까? 음식도, 술도, 사랑도, 사람도, 일도, 꿈도, 열정도, 쾌락도, 모든 것이 다 적당히 해야 나한테 좋은 거라면 내가 매일매일을 버티면서 그 적당함을 어떻게 조절해.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애초에 나 같은 사람 이 할 수나 있는 건가? 애초에 그렇게 할 수 있었으면 이렇게 되지도 않았지.(씨바)
아무래도 나는 이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적합하지 못하게 태어난 것 같았다. 너무 면역력이 약하게 잘 못 태어난 거야. 그래서 버티기에는 너무 약하고, 독하지니 마음이 안 따라주고, 맘 편히 모르는척하기엔 어중간히 알고, 아니까 따져서 이겨먹기에는 또 부족한, 이도 저도 안 되는 어중간한 불량품이라서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보일지 몰라도 전혀 멀쩡하지가 않은. 다들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살아갈 수는 있게 태어나서, 내가 이러는 걸 이해도 못하고, 나처럼 이러지도 않는데. 나만 어쩌다 잘 못 만들어져 버린 불량품인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