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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 동안 숨겨져 있던 에버지 몽테뉴의 기록

날 것의 책을 가능하게 해 준 에버지 몽테뉴의 팬심과 책 리뷰

이 책을 발견한 날, 도서관은 시간을 때우기 딱 좋은 장소였다. 검고 푹신한 가죽 소파에 앉아 책 멍을 때리고 있었다. 책 제목은 그저 눈이 기능하기 위한 것일 뿐이었다. 내용이 연상되는 뻔한 제목의 책도 있었고 신선하게 느껴지는 책도 있었는데, 소파만큼 어둑어둑한 책 등에서 눈이 멈췄다. 구미를 확 당긴 게 바로 이 책이었다. ‘몽테뉴 여행기’


에세이의 시초인 몽테뉴가 직접 쓴 여행 기록은 그렇게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았다. 에세이의 아버지가 아니던가. 수상록을 인생 책 중 하나로 꼽는 나는 반가운 마음으로 빌렸다. 기대되는 마음과 달리 책의 외형은 내가 법학자가 된 것 마냥 꽤 무겁고 두꺼웠다. 1770년 어느 날, 지역사 조사를 하던 중 몽테뉴 성에서 200년 동안 숨겨졌던 원고로 발견된 책이다. 출간을 목적으로 하지 않은 이 책이 가진 날 것의 느낌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내가 몽테뉴를 팬으로서 애정 하는 이유는 남들과 조금 다를 수 있다. 예전에는 즐겨 읽지 않던 장르였지만 지금은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서 여행 에세이 <뭘 이런 걸 다>와 오기 분투 에세이 <망하려고 만든 게 아닌데>라는 책을 남겼다. 몽테뉴도 자신의 이름을 건 책을 썼듯이 나도 그랬다. 그와 나의 공통점을 찾은 것이다.


처음 몽테뉴의 수상록을 읽었을 때는 이런 이야기도 책이 될 수 있구나, 문학이 될 수 있구나. 에세이 장르를 내 방 책장에 마음에 들이게 됐다.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가 모두 개별성을 갖는다는 점. 중요한 사람들이나 승자의 방식으로 남겨진 기록만이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가 동등하게 특별한 가치를 갖는다는 점. 상황이 겹치면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글이 되고, 한 번도 겹치지 않은 이야기라면 특수성을 가진 글이 된다. 내가 이렇게 글 쓰며 살고 있는 것도 모두 몽테뉴 덕분이로다. 몽(테뉴아) 멘. 몽테뉴 덕분에 내가 나의 생각을 글로 솔직하게 날 것으로 풀어내는 책이 에세이 카테고리에 들어갈 수 있게 됐다.


아무튼 그런 점에서 몽테뉴가 남긴 여행 후기는 과연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졌고 명랑한 서문이 나를 반겼다. 처음 이 글 뭉치를 발견했을 때의 상황과, 출간 목적이 아닌 날 것의 글인 점, 누군가의 발견으로, 또 어떤 번역가의 발견으로 이 책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책과 나는 너무 잘 만났다.


196p. 몽테뉴 씨의 마음은 길에서나 여관에서나 새롭게 마주하게 될 것들을 향해 있었고, 낯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었다. 내 생각에는 바로 이러한 마음이 몽테뉴 씨를 통증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던 것 같다. 어쩌다 누군가가 몽테뉴 씨에게 너무나도 다양한 길과 지역으로 끌고 다닌다면서 항의를 한다면 자신은 어쩌다 보니 그곳에 있었던 것이지 억지로 그곳에 가려고 한 것은 아니며 그곳으로 가는 길을 놓치거나 피할 수는 없었다고 대답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본인으로서는 미지의 장소를 거니는 것 말고는 계획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몽테뉴가 여행을 떠난 시기는 47세이다. 로마를 목적지로 삼았지만 매번 샛길로 빠지는 (내가 유럽을 여행할 때와 똑같은 방랑 스타일의 도보 여행) 새로운 동네의 온천에 들렀다가 보르도 시장으로 임명됐다는 소식을 듣고 여행은 끝이 난다.


책은 소소하게 여행 중에 있었던 기록을 세세하게 담았을 뿐이다. 그래서 어떤 재미나 역사적 사실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나는 정말 팬심으로 그 두꺼운 책을 모두 읽었다.


매일 기록을 남겨야 했기에, 인간 몽테뉴도 하인에게 받아 적으라고 시켰다고 한다. 그래서 문체는 3분의 2쯤 책을 읽었을 때 몽테뉴가 직접 펜을 든 이후부터 글의 결이 달라진다. 이건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몽테뉴에 대해 3인칭으로 주어가 사용되다가 나중에는 몽테뉴의 생각까지 함께 적힌 글을 볼 수 있다. 심지어 어떤 여관에 묵었는지, 어떤 온천에서 몇 컵의 물을 마셨고, 화장실에 몇 번을 오갔는지 적나라하게 나온다. 특히, 코로나 여관에 묵었던 게 지금 이 코로나 시기에 기억에 남았고, 몽테뉴 역시 곁눈질로 나라 별, 동네 별 예쁜 여자를 샅샅이 즐겨본 게 틀림없다. 글이 말해준다.


내가 쓴 여행 에세이 <뭘 이런 걸 다> 책 역시 굉장히 날것의 책이다. 처음에는 책을 내려고 쓴 글이 아니었다. 스물아홉 살에 다녀온 여행의 기억을 잊고 싶지 않아서 남겨두고 싶었을 뿐. 그런데 코로나19 때문에 방구석에 갇혀있던 어느 날 여행 사진을 둘러보기 시작한다. 수첩을 후루룩 펼쳐보며 여행 사진을 보는데, 너무도 생생한 이 기록을 나만 알고 있기에 아까우니 책으로 내서 모든 사람들이 다 특별한 이야기를 보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내가 독립출판을 결심한 출발 지점이었다.


몽테뉴도 날 것의 여행기를 썼는데, 나라고 안 될까?
누군가가 썼으니 나도 썼을 뿐


때로는 나도 내 책이 창피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완벽하지 않은 글이기 때문이다. 책을 내고 판매를 할 때에도 다듬어지지 않은 글이라서 매력 있다고 자신 있게 독자들에게 강조하며 판매했었던 시기가 있는데 이 책을 읽고 다시 한번 자신감을 얻었다. 내 책도 내 책의 매력과 가치가 있으니 고개를 굽히지 말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몽테뉴가 남긴 정리되지 않은 명랑한 기록. 나는 꽤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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