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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벌한 유명 작가를 만나고 와서

나를 더 에세이 월드로 빠질 수 있게 해 준 날

사주를 봤는데 살벌한 사람이라는 말을 해주더라고요.
예 그렇습니다. 저는 살벌한 사람이에요.

양다솔 작가님을 멀찍이서 바라보고 왔다. 작가님의 책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을 처음 매대에서 마주했을 때 독특한 책 표지 디자인도 눈에 띄었지만 작가님의 외형적인 매력을 그대로 담고 있어서 잘 기획된 단행본 결과물이 아닐까 생각했다. 무난하게 생긴 나와 달리 작가님은 작가님만의 화려한 이목구비가 특유의 살벌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플랫폼 P에서 클래스를 듣고 왔다. 책 제작 강연도 아니고, 책 마케팅 강연도 아니었고 글쓰기 소상공인으로 살아가는 작가님의 포지션과 글쓰기를 업으로 삼고 있는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플랫폼 P의 2F은 이번 기회에 첫 방문이었는데 꽤 넓은 강연장에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


듬성듬성 공석이 보이는 가운데, 내가 서 있을 때 선택할 수 있는 곳은 딱 2자리뿐이었다. 첫 번째는 양다솔 작가님과 시시때때로 아이 컨택할 수 있는 자리 vs 두 번째는 작가님이 준비한 ppt 자료가 더 잘 보이는 자리. 둘 중 어느 게 나을지 저울질하다가 모니터 화면 앞에서 작가님이 서 있을 것 같다는 상상과 함께 두 번째가 적절하다고 생각했고 가져온 짐을 내려놓았다.


강연이 시작됐고 나의 예상은 빗나갔다. 작가님은 앉아서 진행을 하셨고, 나는 모니터를 보기 위해 왼쪽으로 몸통을 한번, 말하는 작가님에게 반짝거리는 눈을 들키기 위해 오른쪽으로 몸통을 한번, 좌우로 2번 반복해 움직여야 했다. 위치 선정은 실패! 


나중에는 이 자리에 앉은 게 다행인 상황도 있었다. 강연이 시작되기 전 머물렀던 카페가 몹시 추웠었다. 강연장에 들어서자 이산화탄소로 가득해서 얼어붙은 몸이 더운 열기로 녹으면서 살짝 졸음이 쏟아졌다. 작가님의 말에 끄덕거리면서 나도 모르게 감기는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고 또 끄덕거리면서 고개를 들어 올리고. 남들 모르게 졸음과 싸우려고 치열한 10분을 보냈다. 졸다 보니 어느새 강의가 끝나고 질의응답을 받고 있어서 어쩌면 20분 넘게 졸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졸음과 싸우기 전까지는 작가님의 한 마디조차 놓치기 싫어서 열심히 귀를 열고 기록하고 돌아왔다. 안타깝지만 졸면서 쓰여진 것은 지렁이 형체 뿐이라 들은 곳까지만 소화하기로. 


스스로에 대한 포지셔닝에 대해, 작가님은 글과 말을 포함해서 ‘이야기를 다루는 사람’으로 본인을 표현한다. 글쓰기 소상공인으로 말한다. 나는 요새 글 쓰는 커넥터(connector)를 쓰고 있는데, 작가님은 상위 레벨의 단어를 선택함으로써 말과 글 모두 잘할 수 있는 N 잡러로서의 기능을 모두 표현하는 것에서 한 수위였다. 


작가님은 비건 지향인이다. 소수자의 시각을 가졌다는 점은 글을 쓸 때 오히려 긍정적인 점이라는 이라는 시각을 얻었다. 비건을 추구하면서 글을 쓰는 사람은 많지 않아 미디어에서 발언할 기회가 2배는 더 않은 편 인 것 같다고. 지금 필요한 이야기인데 아무도 하지 않는 이야기에 대해 다룰 수 있게 된다며. 지금까지 ‘소수자’라는 개념 정의를 단편적으로만 접근했던 나는 ‘소수자’를 소수라는 의미를 확장을 하지 못하고, 한계와 유사한 것으로 바라봤다면 작가님은 반대였다. 작지만 큰 영감을 주었다. 


전업 작가가 됐든 아니든 좋은 글은 계속해서 적어나가길 바란다고 격려해줬다. 글만 쌓아가는 것이 쓸모없다고 느낄 지라도 계속해서 쌓고, 더 많이 쓰라고. 어쩌면 나에게도 용기를 심어주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job을 구하면서 동시에 스스로 에브리데이 글을 쓰고, 브런치에 올리고 있기 때문에. 네, 작가님. 제가 전업작가도 아니고, 프로 글쟁이는 아니지만 글만큼은 꾸준히 계속 써가겠습니다. 작가님!


대책 없는 퇴사를 응원하는 것에 대하여. 나도 뭐 할 말이 없다. 작가님이 말하는 대책 없이 퇴사한 1인에 나도 포함되니까요. 지금은 무모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번아웃으로 그만둬야 할 때는 작년 시점이었고, 전 직장과 맞지 않아 퇴사를 선택해 일개미 시즌2를 시작하려는 나니까. 작가님은 불가사리 같이 보낸 6개월이 있었지만, 나는 10개월 간 쉬고 에너지를 풀 충전한 상태에로 3개월 직장 생활을 했고, 이번에는 자유 신분이 되기를 선택했다. 격일 뉴스레터를 시작했다고 했는데 나는 뉴스레터를 보내는 사람보다 받는 사람에 더 어울리는 것 같아 아직까지 1인 미디어 콘텐츠 발행자로의 흥미는 생기지 않는다. 


농담은 직관과 통찰이 담겨있어 정말 어려운 것임을 알게 됐다고 한 것에 대해. 나는 이 말을 하실 때는 기립 박수를 치고 싶었다. 그 자리에서 내 뇌를 스캔한 것처럼 똑같은 견해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작가님의 말에 적극 공감한다는 제스처를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었으니까.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처럼, 꼭 인생을 진지하고 무겁게 살 필요 없는 데. 가벼워지는 것이, 사실은 더 어렵다는 생각을 매번한다. 심플이즈더베스트인 것 처럼 가렵고 쉬운게 더 어렵다. 


이런 감성 허세에 곁들여진 나는 가벼울 때는 한없이 단순하게 사고하고, 진지할 때는(어쩔 수 없이 일할 때+a) 한없이 진지하게 행동하는 2개의 트랙을 가지고 살아간다. 가까운 친구들에게도 속없이 굴 때가 있어 진짜 천진난만 해맑게 산다고 보는 친구들도 여럿 있다. 나를 그렇게 수식하는 것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 수분을 가득 머금고 있는 진흙 덩어리 보단 가벼운 모래 같은 존재가 더 마음이 간다. 


한 가지 더. 다른 장르도 시도할 생각이 있냐는 질문에 대해. 에세이를 제대로 쓰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에세이를 더 제대로 쓰겠다. 답을 들었을 때 내 머릿속이 ‘띵’했다. 평소에 나는 작가라는 호칭에 대한 부담감과 장르에 대한 고민이 있었기 때문에 화들짝 놀라버렸다. 


나는 고작 에세이 책 1권 냈을 뿐인데, 유명 작가들과 똑같이 '작가'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 불편함과 간지러움을 느낀다. 딱히, 어울리는 다른 말은 없어서 넉살 좋게 반응하지 못했는데. 소설을 써 등단하거나 깊이 있는 글을 써내야 작가라는 타이틀에 비로소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내가 쓸 수 있는 건 에세이계의 아버지 몽테뉴를 좋아하고, 나는 에세이 밖에 쓸 줄 모른다. 경험 수집가라 정말 많은 에피소드를 갖고 있고 나만의 말 맛을 살린 에세이를 쓰고 싶은데, 깊이 있는 글에 대해서는 다소 거리감이 있다. 나는 에세이 말고도 다른 글쓰기를 개발해야 하나 싶었는데, 양다솔 작가는 이왕이면 에세이 장르를 제대로 쓰겠다는 대답이 ‘정면돌파’를 하겠다는 것처럼 들렸다. 용감하고 멋진 분이다. 


까불이 글방이 열리자 신청하고 싶어 기웃기웃거리다가, 몇 시간 뒤 신청 링크를 열었다. 작가님의 까불이스러움에 나도 같이 전염되자고. 그리고 신청서를 이미 마감되어, 추가 접수에 간절하게 남겼다. 올해 작가님의 글방 멤버로는 낄 수 없었다. 


이번 강의를 들으면서 작가님의 유려한 화법에 홀린 듯이 들었다. 사실 나는 작가님의 책을 아직도 안 읽은 예비 독자이자 열렬한 팬도 아니었는데, 이번 기회에 진짜 팬이 됐다. 동시에 많은 영감을 받았다. 곧 시작될 칼럼을 준비할 때 마감에 대처하는 현실을 미리 알게 됐고 N 잡러 로서 내가 포트폴리오에 담고 싶은 콘셉트들을 풀어나갈 메모를 가득 적고 왔다. (작가님이 말한 단어에서 뽑은 게 아니라, 내가 강의를 들으며 들었던 생각들을 말이다.) 이번 강의는 유익했다는 말로도 부족하고 컨설팅을 받고 온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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