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깎이 은색 박스 때문에 우리 가족이 온종일 쩔쩔맨 사연
우리 집은 언제나 깔끔하다. 두 분은 평소에 집 안에 지저분하게 널브러지는 걸 참지 못하셔서 바로 그 자리에서 청소를 하는 편이다. 우리 집은 먼지가 오래 머무를 수 있는 집이 아니다. 예를 들어, 우리 집 거실에 새로운 물건을 놔둔다면 눈에 거슬리는 위치에 있으면 하루나 이틀을 넘기지 못하고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정돈되어 버리고 없다. 절대 버리는 일은 없다. 수납장이나, 가까운 서랍에 들어가는 게 대부분이다. 그런데 딱히 정해진 맥락 같은 건 없다. 그날 치우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다.
뭘 찾으려 하면 꼭 눈앞에 없어서 찾게 되는 상황이 생긴다. 찾는 사람 입장에서는 며칠 전에는 거실에 있던 것이 갑자기 사라진 거니까 꼭 찾을 일이 생긴다. 어떤 날은 서랍을 열었다가 문득 그 물건을 마주치는 순간, ‘어? 이게 여기 있었구나. 언제 넣어뒀지?’하는 상황도 종종 있다.
얼마 전 나는 반복되는 패턴을 발견했다. 거실에 눈에 띄는 어떤 장갑이 있다-이틀도 되지 않아 그 장갑은 어딘가로 자리를 옮기고 없어진다. 버리지는 않아도 누군가가 눈앞에서 치운 상태이다. -장갑 주인이 외출하려고 하면 놔둔 곳에 없다며 찾기 시작한다. 가족을 불러 도움을 구한다. -치운 사람은 그 물건을 어디에 내버려두었는지 기억하지 못하고 대답 대신 함께 찾기 시작한다. -장갑은 엉뚱한 서랍에 들어가 있는다. -장갑을 제자리에 놔두라고 핀잔을 들은 뒤, 거실에 눈에 잘 띄는 자리에 놓는다-그 장갑은 이틀도 되지 않아 또 어딘가로 불려 간다. – 장갑이 필요할 때 또 찾게 된다. - 그럼 장갑 주인은 짜증이 나서 성질을 내기 시작한다.
우리 가족이 집에서 하는 행동 중 절반은 무엇을 찾는 것이다. 우리 가족이 집에서 나누는 대화의 절반은 무언가를 찾고, 찾아라, 찾았다, 찾아달라의 내용일 것 같다. 물건이 정해진 위치를 기억하는 자, 그게 그대로 그 자리에 있기를 바라는 자와 치운 자, 그러나 치운 기억을 잃어버린 자와의 대화가 주말에는 더 자주 오간다.
“여보, 그거 어디다 뒀어?
“엄마, 그거 어디 있는지 아세요?”
“슬아야, 그것 좀 찾아봐라~”
필요할 때 나타나지 않는 것만큼 답답한 것도 없다. 원망의 화살표가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무언가를 찾으려고 하면 정리한 사람의 시선이 작용하는데, 실제로 그 물건을 자주 쓰는 사람과 시각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하루는 주말에 노곤한 몸을 최대한 게으르게 움직이던 날, 엄마가 나를 부르셨다.
“손톱깎이 통 봤니? 그것 좀 찾아봐~ 나가야 되는데 아빠가 찾으신다.”
쓰리쎄븐 손톱깎이 통은 은색에 손바닥 한 뼘 크기의 상자이다. 그 안에는 발톱만 깎을 수 있는 것, 손가락 틈새만 잘라낼 수 있는 것, 보통의 손톱깎이, 얇은 금색 손톱깎이, 박음질을 잘라낼 수 있는 미니 가위, 큐티클 제거기, 귀이개 등가 들어있는데, 우리 집 맥가이버 역할을 하는 그 만능 박스가 사라진 것이다.
졸린 눈을 비비며 열심히 집안 구석구석을 더듬었다. 우리 집에 가장 길게 머무르는 게 우리 엄마와 나 둘이고 시간을 역으로 계산해 보니, 우리는 그 박스에 있는 손톱깎기를 사용하지 않은 지 2주 가까이 됐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무리 찾아도 없으니 엄마는 이미 출근해 버렸고, 집에 남아있는 나는 더 바쁘게 찾아다녔다. 무언가를 찾다가 그게 없으면 불 같이 화를 내는 아빠를 보는 게 무서울 때가 있어서, 모른 척하기가 쉽지 않다. 아빠를 돕는 나를 보며 “잘 봐봐. 꼭 엉뚱한 데서 튀어나올 수 있으니까.”라며 급하게 손톱깎이를 찾던 성난 얼굴에서 한결 가라앉은 표정으로 나를 다독이신다.
아빠는 손톱을 깎으려 했는지 발톱을 깎으려 했는지 모르겠지만, 오전에 찾지 못했다. 늦잠을 늘어지게 자고 싶었던 나는 잠결에 쓰리세븐 은색 박스를 찾아야 했기에, 다시 침대로 들어가 누우려 했다. 이미 잠이 깨버렸고 손톱깎이가 대체 어디로 가버렸는지 궁금해져서 다시 잠에 들 수가 없었다. 이럴 때 쓸데없는 오기가 발동하는 나도 참. 나는 또다시 집안 구석구석을 뒤져보았다. 그러다 오랜만에 발견한 물건들도 몇 있었다. 나중에 필요하면 여기로 와야겠다. 겨울용 덧버선, 작은 상자, 치실, 포스트잇 등 사소하고 잡다한 물건들이 구석구석에 맥락을 달리 한 채 놓여 있었다.
한편, 지난 2주간 우리 집에 많은 손님이 방문했는데 혹시 짐 속에 휩쓸려 들어간 것은 아닌지 상상력이 미쳤다. 우리 엄마 친구들, 전구 교체하러 온 우리 아빠의 동료, 이모들까지 그분들이 가져갔을지, 쓰리세븐이 무슨 가치가 있다고 가져가. 말도 안 되지. 하면서 밑도 끝도 없이 의심의 레이더망이 켜졌다.
그뿐 만이 아니다. 서로가 완벽하지 않은 서로를 어림짐작하며 가늘게 눈을 뜨고 의심하기도 한다. 엄마가 건망증이 생겨서 냉장고에 손톱깎이를 넣어뒀을 수도 있으니까 냉장고, 냉동칸을 차례로 열어본다. 아빠 실수로 쓰레기 통에 담긴 게 아닌 지 재활용 박스를 뒤집어 보기도 한다. 아니면 내가 내 방으로 가져가서 썼을지 모르니까 내 방을 객관적인 눈으로 한번 더 살펴보기도 한다.
(배우 손석구가 말했다. 물건에 애착이 강하고, 그들이 말을 거는 것 같아서 잘 못 버린다고. 만약 우리 집 쓰리쎄븐 손톱 박스가 말을 할 수 있는 존재라면 그는 아마도 팔짱을 끼고 우리를 비웃으면서 쳐다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여튼 저 답답한 인간들아, 나를 언제까지 찾아보는지 기다려보자.’)
우리는 하루 종일 “이상하다. 그게 어디로 갔을까?”만 몇 번이고 똑같은 말만 반복했다. 손과 발은 구석구석을 뒤집어 보며 찾기를 멈추지 않는다. 정말 알 수 없는 일이다. 집안을 아무리 뒤져도 보이지 않는 그놈의 손톱깎기. 쓸데없는 오기는 저년 8시가 돼서야 비로소 가라앉았다. 그래, 이렇게 까지 나오지 않는 건 포기하라는 뜻을 받아들이자. 또 어느 순간에 나타나면 그때는 태연하게 은색 박스를 열면 되는 것이다. 그냥 나중에 또 찾게 되겠지. 에휴~ 한숨 소리를 크게 내며 소파에 기대 옆으로 기대 누웠는데, 반짝거리는 형체가 내 시선에 잡혔다.
찾았다 요놈!
손톱깎이는 TV장 밑에 있었다. 우리가 세 번 네 번 다섯 번 넘게 집안을 구석구석을 뒤졌는데, 인간이란 존재가 이렇게 한없이 빈틈 투성이라는 게 분명 해지는 순간이었다. 서랍의 뒤 쪽 구석에 끼어 있었다. 낫 놓고 기역자를 모른다는 게 바로 우리 이야기였다, 등잔 밑은 진짜 어둡다 손톱깎이를 하루 종일 찾지 못할 만큼. 엄마와 나는 내장 속에 갇힌 억울함과 오기의 감정을 뱉어내는 듯이 배를 잡고 깔깔깔깔 하하하하 웃어젖혔다. 나는 가슴에 손을 얹고 열심히 찾아다녔다. 정말이다. 정말 꼼꼼하게 찾아봤는데 서랍을 하도 여느라 뒤쪽으로 은색 박스가 밀려버리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다. 엄마도 서랍을 여러 번 들락날락했는데도 못 봤다고 하셨고, 음 그렇다면 아빠는 이곳을 찾아보긴 하셨을까?
이렇게 가까운 데에 있었는데 덜 깬 눈으로 아침부터 방, 서랍, 화장실, 냉장고까지 싹 다 뒤져본 우리 자신이 어이가 없음 그 자체였다. 이로써 엄마 아빠의 건망증도, 나의 실수도 아니었다. 우리 세명은 시야가 굉장히 좁은 인간들이란 점을 확실히 하고 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 집은 맥락 없는 정리정돈으로 끝나지 않는 ‘찾기 대화’가 오갈 것임이 분명하다. 우리 엄마 아빠가 바뀌지 않는 한 끝날 일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