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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냉장고 X엄마손 1년 김장 사이클

김치 종갓집 보다 더 자주 김장하는 우리 엄마

우리 엄마가 담근 김치는 정말 맛있다.


엄마 김치 맛은 세계 최고다. 가끔 외식을 할 때 조미료나 유명 브랜드에서 매콤 시~원한 김치 맛에 감탄할 때도 있지만, 우리 엄마 김치는 늘 맛이 좋다. 우리 집 식탁은 기본 반찬이 늘 5가지 이상으로 차려져 있는데, 그중 김치가 3종류나 된다. 배추김치, 열무김치, 그리고 시즈널 한 김치가 놓인다. 예를 들면, 파김치, 석박지, 총각김치, 겉절이 김치, 백김치 같은 것들 말이다. 가끔 이모네 집이나 이웃집에서 김치를 준다면, 기본 김치에 더해 남의 집 김치도 함께 식탁에 올라온다. 이른바, 병렬식 김치 섭취 습관이랄까.


우리 집은 김치 먹기를 한 번도 거른 적이 없는 것 같다. 당연히 고구마나 감자를 삶을 때에도 함께 올라가거나 라면을 끓여도 함께 젓가락질한다. 심지어 김치찌개를 먹을 때도 익은 김치와 아삭하게 먹는 생 김치는 느낌이 다르니까 식탁에 함께 올라간다. 물론 그날만은 생김치에게 달려드는 젓가락의 빈도는 줄어들겠지만 그 횟수가 0번은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다른 곳에서 김치를 챙겨주지 주지 않는지? 그것도 아니다. 매년 시골에서도 김치를 보내주는데, 이 김치는 우리 집에서 직접 담근 김치와는 손맛과 빛깔이 다르다. 일단 전라남도 음식이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간이 세고 양념장에 젓갈이 들어가고, 양념소에 누런기가 강하게 드러난다. 시골 큰 엄마의 스타일인 양념소가 배춧잎 한 장 한 장에 과감하게 붙어있는 스타일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우리 엄마 딸이니까 엄마 김치가 더 낫다고 생각한다. 


우리 집 식탁에 매 끼니때마다 김치 반찬이 올라간다는 것은, 김치의 공급이 원활하게 끊이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 집은 엄마가 매번 김치를 담근다. 김치 입장에서 보면, 우리 집은 김치 종갓집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다. 심지어 나는 김치 담그는 과정을 이제 대충은 꿰고 있다. 


다듬은 배추를 흐르는 물에 씻어 흙이나 모래를 씻어내고, 구멍이 뚫린 소쿠리에 김치를 올려놓는다. 그리고 굵디굵은 소금을 한 주먹 그득 쥐고 무심하게 툭 툭 뿌려가며 절여야 한다. 김치 사이사이에 간이 잘 배어야 하니까 구석구석에다가 소금을 챙겨 넣기도 한다. 


그리고 화장실 욕조나 베란다에 배추가 든 소쿠리를 놔두고, 4-5시간 정도가 지나면 김치가 살았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럴 때 엄마는 이상한 농담을 던지신다. 김치가 살았는지 가서 보라고 한다. 상상력이 풍부한 나는 여전히 ‘배추 한 포기가 팔딱 뛰어올라 바닥에 엎드려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슬쩍 보러 나간다. 절여진 김치는 반드시 ‘죽은 상태’가 돼야 한다.  


풀이 죽은 배추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엄마는 큰 실버 대야를 한 두 개 꺼내 양념 만들 준비를 한다. 여기서 비법 한 여사에게 동의를 받지 않고 우리 집 비법이 풀리는 거라 무척 조심스러운 면이 없지 않다. 진짜 누군가가 레시피를 따라 할 수도 있을 거라는 엉뚱한 상상력이 부풀어 올라서 비율은 따로 밝히지 않기로 한다. 사실은 정확하게 모르고 엄마만 알고 있다. 


첫째는 흰 쌀로 죽을 만든다. 그리고 감자를 갈아 둔다. 감자가 들어가면 김치 맛이 또 달라진다. 양파와 쪽파를 준비한다. 서해안의 자부심 새우젓과 하 씨가 들어가는 선생님의 이름이 붙은 멸치 액젓, 시골에서 직접 만들어 보내주시는 굵은 고춧가루, 작은 입자의 고춧가루와 적당량의 물이 필요하다. 그리고 마늘과 생강이 필요하다. 자, 이 정도면 양념이 되는 재료가 얼추 모인 것 같은데 더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기로 한다. 나는 본 것도 미처 다 기억하지 못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지만, 레시피 이 정도면 거의 공짜로 만천하에 공개한 수준이 아닐까? 지적 재산권(IP) 처럼 김치적 재산권(KP)이 있다면 분명 보호해 드려야 할 것이다. 


우리 엄마는 주 5-6일 정도 일을 나가시는 데 우리 집 김치통이 바닥을 보일라 치면 휴일 동안 배추를 사서 김치를 담그는 날로 하루를 꽉 채운다. 보통 요즘 사람들은 김치를 간편하게 사 먹지 않나? 아니면 시골에서 다 같이 만들어서 한 통을 갖고 겨우내 먹을 텐데 우리 집은 절대 그렇지 않다. 떨어지면 바로 담근다. 그러다 보니 1년에 김치 담그는 횟수를 묻는다면 종갓집 며느리 보다도 우리 엄마가 더 많을 거라 장담한다. 우리 집은 그때그때 김장하는 집이다. 


우리 엄마가 김치 소의 비법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나는 그저 거들뿐이다. 딸이라 같이 담그기에는 도울 수가 없는 현실이다. 일단, 쉬는 날 평일에 김치를 절이고 양념을 미리 만들어 두시기 때문이다. 둘째는, 퇴근하고 피곤에 절여진 내가 김치를 담그는 엄마를 부엌까지 자발적으로 들어가 두 팔을 걷어붙일 수 없는 상태다. 이미 나는 파김치가 된 상태에서 어떻게 파김치를 담냐는 것이다. 포기는 배추를 셀 때 하는 말이라 하는데, 우리 집에서의 포기는 김치를 담글 때도 주로 내가 쓴다. 모녀가 김장을 함께 할 수 없다는 긴 변명을 늘어놓았고 나의 역할은 굉장히 작고 소중한 편. 


장갑을 끼고 김장하는 엄마의 옆에서 재료를 가져다 드린다. 나는 시간이 지체되지 않도록 빠릿빠릿하게 움직여야 한다. 파와 양파를 가져와라, 양념을 이곳에 부어라, 김치를 하나씩 이 쪽으로 옮겨 달라, 멸치 액 젓을 다시 갖다 달라, 굵은 고춧가루를 국자로 3번 떠서 넣어 달라. 다 쓴 대야를 물로 헹궈 달라. 미리 끝낸 단계에서 1차로 설거지를 한다 거나 하는 잡무 등을 맡는다. 이런 난이도의 일은 엄마 만큼 김치를 잘 만드는 총 주방장급의 레벨이 거들 필요가 없는 일이다. 그러나 아예 없으면 그마저도 김장 시간이 배가 되는 계륵 같은 포지션이다. 혼자 다 하느라 이런 일들이 막힌다면 얼마나 답답한 지 나는 잘 알고 있다. 일주일에 딱 하루 쉴 수 있는 엄마가 김치를 담그던 그날도 나는 볼멘소리를 했다. 


“우리 집은 무슨 김장을 8번 넘게 하는 것 같지. 엄마가 만든 김치가 맛있는 건 나도 알고 모두가 다 아는데, 엄마 쉬는 날을 잡아먹으면서까지 김치를 먹겠다고 고집부리고 싶진 않아. 나는 엄마 김치가 좋은 데 엄마가 쉬지 못하니까. 이제 CJ 김치를 조금씩 사다 먹으면 어떨까 싶어요.”

(아빠 왈)

“에이 그게 무슨 소리! 김치는 엄마 손맛이 최고라서 이걸 꼭 먹어야 해. 그리 너희 엄마가 무슨 8번 김장을 하냐? 나는 그렇게 안 한다.”

“그럼요~?”

“20번 정도는 된다고 생각하지”


대화를 가로챈 아빠의 대답으로부터 나는 목구멍에서 ㅎ,ㅓ,ㄱ, 이 강한 입김을 뱉고 말았다. 우리 엄마는 언제까지 김장을 담가야 할까? 내가 평일에 쉬는 날 김장을 위해서 연차를 쓰는 것이 좋을까? 우리가 다 같이 담그면 김치 맛이 2배로 줄어들 진 않을지 걱정도 된다. 무엇이 정답인지 아직 모르겠는데 확실한 건 우리 엄마 손맛 김치는 세계에서 독보적인 아삭한 맛이라 엄마의 김장은 최소 10년 동안은 멈출 일이 없을 것 같다. 


에잇, 이놈의 맛있는 김치. 12월 본격 김장데이를 앞둔 우리 집의 김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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