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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풋이 가득한 내가 진짜 바라는 것

광주 무각사에서 만난 세 불상님에게

행사 참석차 금요일 오전에 도착한 광주. 대전에 사는 친구에게 이곳에서의 만남을 제안하면서 점심을 함께 먹기 위해 기다릴 곳을 찾아다녔다. 네이버 지도 앱에서 찾은 곳은 518 기념공원인데 그 옆에 무각사라는 절을 발견했다. 조용한 사찰을 나의 행선지로 정했다.


점심시간 무렵에 도착한 광주 지하철을 타고 무각사로 향했다. 공원에는 산책하는 광주 사람들이 많았다. 점심 먹고 한 손에 테이크아웃 잔을 들고 산책하는 듯한 무리가 나를 여럿 지나쳤다. 나도 살짝 배가 고팠지만 1시간 뒤에 도착하는 친구와 돈가스를 먹기로 해서 공복인 상태로 있어야 했다. 아침과 정오 근처에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고 있는 무각사는 꽤 큰 현대식 법당 건물이었다. 확실히 우리 동네 근처에 있는 관악사 호압사하고는 다르고, 엄청 큰 위압감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나는 여행지에 갈 때마다 해외에서는 교회나 성당을 찾아 잠시 둘러보거나 사색을 즐기곤 하는데 절에 들어간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지금 믿고 있는 종교는 없다. 일상에서 벗어난 곳에서는 조용한 장소가 주는 평화로움이 너무 좋아서 집을 떠나 여행지에 가면 매번 종교 시설에 들른다. 오늘은 사찰에서도 느껴보고 싶었다.


부처님을 만나러 가는 출입구 앞에 4명의 커다란 도깨비가 지키고 있었다. 아, 여기는 보통 사찰이 아니구나. 사찰에 들른 사람들은 두 손을 모아 도깨비에게 합장을 했고 무각사(혹은 그 안에 있는 부처님)를 향해 합장을 총 5번 했는데, 나는 룰을 잘 몰랐고 종교가 없는 사람이라는 핑계를 삼아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걸어 들어갔다. 오히려 도깨비의 눈을 빤히 맞추며 눈인사까지 했다. 부리부리한 눈과 거대한 도깨비 상을 보려니 무언가 압도감이 전해져 왔다.


법당은 엄청 컸고 3개의 커다란 불상이 나를 맞이했다. 현대식 건물이라 당연히 CCTV가 나의 존재를 알아봤겠지? 살짝은 의식하면서도 진짜 사색을 즐기고 싶은 소심한 사람이었기에, 살짝 들어갔다. 아무도 없길래 조용히 방석에서 철퍼덕 앉았다. 합장하는 법도 모르고, 절 하는 법도 모르지만, 그저 가서 불상을 말없이 올려다봤다.


불상의 주변에는 법당 식구들이 낸 헌금으로 봉헌한 것 같은 미니 불상이 벽에 한가득 채워져 있었다. 이미 헌금을 많이 낸 사람들의 염원은 뭔가 다를까? 그들의 소원은 무엇일까? 불상과 이름표까지 세워둘 만큼 간절한 염원은 무엇일지 궁금하기도 했다.


사색을 즐기기 위해 일단 앉았는데, 나는 딱히 바라는 것은 없었다. 제일 한가운데 앉은 부처님과 눈을 맞추며, 나는 생각했다. 나는 무엇을 빌어야 할까? 내가 원하는 게 뭘까? 이곳에 처음 방문한 내가 소원을 빌어도 부처님은 내 소원까지 들어줄 여유가 있을까? 공짜로 소원을 빌면 너무 염치없게 되는 걸까?


부처님을 빤히 쳐다봤다. 별다른 의도는 없었다. 잠시 후, 내 옆에 멀찍이 앉은 어떤 사람이 절을 시작했다. 정해진 법칙이 있는 듯 무릎과 발등의 각도도 질서정연해 보였다. 저 사람은 어떤 내용의 기도를 저렇게 간절하게 빌고 있을까?


나는 바라는 것이 없었다. 간절한 것도 없었다. 오히려, 인풋이 너무 많은 상태인데 나는 더 바랄 것은 없었다. 이미 감사할 일이 더 많은 것 같아서 덜어내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미 쥐고 있는 것이 너무 많은 상태다. 바라는 것도 갖고 싶은 것도 없다만 나의 소원을 굳이 꺼내보자면 잘 비워내는 것이었다.


부처님, 제가 비워내기를 잘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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