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준의 책 <소설 만세>를 읽고 용기를 채웠다
끌리는 부분은 인스타그램의 후기 글보다는 보랏빛 책 표지였다. 실제로 양장본에다가 소설가가 쓴 고급 재질의 에세이라서 마음이 조금 더 갔던 점.
정용준의 소설 <내가 말하고 있잖아>를 읽은 적 있다. 마지막 표지를 덮었을 때 마음에서 긍정 에너지가 스며드는 기분이 들었다. 소설가는 약자의 눈높이에 맞춰서 프리허그를 해줄 수 있는 따뜻한 배려가 느껴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 책을 읽으면서도, 글을 시작하고 소설을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세심한 문장과 도움을 주는 문장들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열심히 페이지를 기록해 두었다.
나는 등단을 하는 소설 가류의 작가를 꿈꾸는 것은 아니지만, 꾸준히 글쓰기를 연습하는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 보라색 아이템으로부터 함께 위로를 받았다.
또 이 책을 읽는 동안 나의 태도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스스로를 칭찬해 주고 싶은 지점은 나는 글 쓰기가 무섭지 않다는 것이다. 남들과 다른 점은 일단 용기가 있다? 글이 주는 영향력이라 던 지, 타인의 시선 같은 것, 그리고 그다음 일들은 굳이 상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도 그게 좋다고 생각하고. 또, 자기 의지로 글쓰기를 연습하고 있다. 내가 분명하게 하고 싶은 것에 있어서는 꾸준하게 해 나가는 실행력이 장점이다.
지금은 많이 나아진 편이다. 한때는 기획 아이템을 컨펌받아도 첫 단어조차 선택하지 못하고 마감일을 당연하게 넘기던 때도 많았다. 글 쓰는 게 두려워 발제만 하고 바쁘다는 변명으로 약속한 글을 쓰지 않은 적도 있었다. 그리고 업무로 글을 쓸 때 나의 상사는 순 엉터리 글이라며, 내 글을 모두 뒤집어엎기도 했거니와 글을 너무 로봇 같이 쓴다는 피드백도 받은 적 있다. 글을 못쓰고 두려워하는 나의 모자람을 만회하려고 수많은 날을 글쓰기 때문에 야근을 해야 했다.
그런데 나는 어느새 글이 필요한 직무를 하고 있고, 글을 모아 독립출판을 해버렸고, 나는 글 쓰는 사람임을 강조하면서 N 잡러로서 살아가고 있다. 크게 글쓰기에게 덕을 보며 사는 셈이다.
단점. 단점은 아무렇게나 글을 뱉을 수 있지만 아직 뚜렷한 문체가 개성이 없다. 단번에 생길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비즈니스나 정보성 글을 적기에는 흥미도도, 집중력도, 깊이도 부족하기 때문에 우선 이 쪽은 가까워질 수 없는 영역이기도 하다. 언젠가 나의 얕은 지식이 드러날지 몰라서 두렵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요즘 글 연습을 하는 이유는 글을 꾸준하게 써 나가면 언젠가는 나의 결을 찾을 거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정말 아무 글이나 써내려 가면서 진짜 글을 잘 쓰는 게 뭘지? 계속 생각하게 된다. 나는 글을 계속해서 써 나갈 뿐이고, ‘잘’ 쓰는 사람의 반열에 오른 다는 것은 누군가가 인정해 주는 타이틀 같은 거라서 내가 신경 쓸 수는 없는 영역 같다. 그래서 잘 쓰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되고, 내가 잘 썼다고 스스로 판단하기에도 어려운 부분인 것 같다.
이런 복잡한 마음을 가진 ‘글쓰기 문하생’에게 정용준 작가가 남겨둔 말은 꽤 마음에 와닿았다.
36p. “진정한 문학이란 무엇일까, 소설은 어떤 가치가 있을까?”에 대한 질문에 열심히 답하고 생각과 마음을 전하려고 애를 써 왔던 것 같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답변에는 모두 알맹이가 없었다. 중언부언이었고 횡설수설이었으며 공허하기 짝이 없는 그저 유식해 보이고 그럴듯한 의견들이었다. 정답은 하나뿐이고 단순하기 짝이 없는데 그렇게 답할 수가 없어서 문장과 단어를 늘리고 늘린 것뿐이었다.
39p. 내가 좋아하는 것에, 내가 선택하고, 내가 열망하고 꿈꾸고 이루고 싶은 것에 다른 사람의 인증이나 보증은 필요 없다. 그것을 알지 못하는 이를 설득한 근거를 마련할 수는 있겠지만 근거를 통해 내 마음과 감각이 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이유가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이유는 내 감정과 감각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이유가 있다 한들 원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것이고, 원하지 않는다면 바로 그 이유를 핑계 삼아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80p. 아무튼 이렇게 저렇게 비벼 대고 끙끙대다 보면 어떻게 든 글은 써진다. 아, 정말 오늘은 접어야겠네, 생각하는 마지막 순간에도 한 문장이 떠오른다. 한 문장이 써지면 그 문장이 신기하게 몇 문장의 손을 잡고 함께 찾아온다. 어떻게 소설을 쓰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머릿속에 있는 것을 쓰는 것도 아니고 막 쓰다 보면 써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소설을 쓰려고 시간을 갖고 애를 쓰고 그 앞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닫힌 문을 열리고 보이지 않던 길도 보인다는 것이다.
123p. 소설을 쓰기 위해 혹은 잘 쓰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다면 다른 무엇보다 ‘쓰고 싶다’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마음과 욕망은 꺼지지 않는 불꽃이 아니다. 가만히 두면 언젠가는 사라지는 평범한 불이다.
124p. 쓰기 역시 그렇다. 써지지 않는다고 계속 안 쓰면 곤란하다. 글은 원래 잘 안 써진다. 처음부터 잘 써졌던 날이 있던가. 쓰다 보면 잘 써지기도 하고 이런저런 문장 쓰다 보면 막혔던 것도 풀리고 새로운 생각도 떠오르는 거지. 당장 대회가 없어도 매일매일 기본적인 훈련을 하고 정해진 루틴을 따르는 운동선수처럼 쓰고 싶은 사람과 읽고 싶은 사람은 계속 읽고 계속 쓰기 위해서라도 ‘읽기’와 ‘쓰기’라는 행동을 멈춰서는 안 된다. 태어날 때부터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131p.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바로 용기를 내는 것이다. 두려움을 이겨내고 주저함을 떨쳐 내고 첫 문장을 써야 한다. 처음부터 잘 쓰는 작가는 없다. 시간과 경험이 누적될수록 실력이 향상되는 것처럼 글도 쓰면 쓸수록 시간을 들이면 들일수록 더 나아진다.
140p. 이야기를 생각하고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하면 그 이야기를 잘 전달할까 고민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만약 당신이 어딘 가에서 재밌는 에피소드를 들었다면 에피소드의 내용이 재밌는지, 그것로 전하는 자가 재밌는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156p. 백지를 마주하고 있으면 안다. 그 마음. 멍하고 자신 없고 막막하겠지. 뭘 쓸 수 있을지 뭘 알고 있는지 몰라 아무것도 쓸 수 없을 것 같은 그 바보 같은 마음. 하지만 한 문장 한 문단 하나씩 써 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감정은 표현되고 표현된 감정의 도움으로 그것과 연루되어 있는 사건과 사람들이 하나씩 기억나게 된다. 자신에 대한 의미 없는 낙서 같은 글쓰기는 깊은 샘을 끌어올리는 한 바가지의 마중물 같은 것이다.
192p. ‘그러니까 말이야. 말하기 전에 그 말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들릴지 사회성이 강한 우리들은 도대체 어떻게 아는 걸까? 안다고 생각하는 것뿐… 실제로는 모르는 것 아닐까’
198p. 원한다는 것은 그것을 위해 무엇인가를 계속한다는 것이다. 그냥 바라고 느끼기만 해서는 곤란하다. 기도하는 순간까지도 플래너리 오코너는 알았던 것이다. 은혜를 구하기 전에, 바라기 전에 내가 먼저 그것을 원해야 한다는 것을. 진짜 원한다면 작가가 해야 할 일을 먼저 해야 한다는 것을. 구하기 전에 먼저 원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