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애착의 대상을 향한 셀프 관찰 기록

아니 에르노 단순한 열정의 꼬리표

미디어가 주목하는 유명 소설을 찾아서 읽지는 않는 편이다. 얼마 전 아니 에르노가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는 소식만 들었지 딱히 그런 상이나 권위에 흥미는 없었다. 신간 책 선반에 꽂힌 아니 에르노 작가가 쓴 소설을 우연히 마주쳤던 것뿐. 얇은 단편 소설책 <단순한 열정>을 펼쳤다.


인상적인 점은 이 책이 불륜의 상대를 저격한 게 아니라 자신의 그 모습 자체를 기록한 것이라고 한다. 원망도 아니다. 그저 덤덤하게 개인의 행위에 대한 복기였을 뿐이다. 그래서 그녀가 불륜 행위를 저질렀다고 해서 밉다거나, 본 처를 향한 연민의 감정이 들 정도로 입장을 이입하게 되는 상황은 전혀 없다. 금지된 사랑일수록 멈출 수 없이 피어오르는 그 마음을 절제하고 포기에 이르러 이윽고 성숙(?)한 마음으로 덤덤하게 적은 그 이야기가, 씁쓸하고도 화려하고 찬란한 여느 사랑이야기로 들렸다.


사랑에 빠진 여자와, 상대를 기다리는 여자의 입장에서 쓴 글이다. 불륜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나면 누구나 좋아하는 상대를 기다릴 때 갖게 되는 행동을 쓴 것만 같아서 언뜻 보면 사랑의 책 같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를 24시간 그리워하고, 누군가를 났을 때 응축된 감정이 뿜어져 나오는 것들에 대해 그녀의 행동 자체는 무해하다고 생각했다.


불륜을 합리화하겠다는 입장은 전혀 아니다. 불륜이라는 속성과 결합하면 이 책은 바로 내로 남불이라는 나락의 권위로 굴러 떨어진다. 사실 사랑 자체는 죄가 없고, 비난이 따를 수 없는 행동이지만 어떤 상대(주어)가 붙는지에 따라 그걸 판단하는 모든 잣대가 뒤틀리고 마는 것이 신기했다. (김춘수의 시 ‘꽃’처럼…어떠한 정의가 붙었을 때 사회적으로 따라붙는 의미 같은 것들) 불륜이 소설에서 정말 중요한 구성 장치로 활용됐다. 어쩌면 말장난. 어쩌면 그녀는 천재. 대담한 작가일 수밖에 없다.


불륜이란 키워드와 자전적 소설이라는 점에서 자극적으로 들리긴 했다. 이 책의 알맹이는 사랑이요, 포장 자체는 전략적인 테마가 아닐까. 마치 얼마 전에 재미있게 봤던 <쇼윈도: 여왕의 집>에 나오는 전소민의 역할과 아주 잘 어울렸다. 상황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나도 짝사랑했던 남자를 생각할 때 그녀와 다를 바 없이 행동했다. 나는 물론 불륜이 전혀 아니었는데, 작은 것에 의미를 붙이거나, 그의 행동 하나하나를 주시하게 되는 것, 또 사소한 부분까지 기억하고 편집되어 그 마음을 더 키우는 일들이 남일 같지 않게 들렸다. 나는 그랬다.


작가의 이전글 듣기 좋은 목소리와 그렇지 않은 대화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