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퍼즐에서 찾은 인생철학

미완성이 과제로 주어질 때 가장 쉬운 성취 방법

퍼즐을 좋아하는 어른이다. 이 취미는 직장에 다닌 뒤부터 생겼고, 연말과 연초, 휴가 기간에 마음에 여유가 있을 때 퍼즐을 떠올리거나 혹은 시간이 많이 남아서 할 일이 없을 때 펼쳐 놓기도 한다. 퍼즐은 대중적이지 않은 취미다 보니, 자칫 덕후로 보일 수도 있고 외골수 혹은 조용하고 구석에 있기를 좋아하는 이미지의 캐릭터로 보일지 모르지만 나는 전형적인 외향형 인간이다. 퍼즐을 꽤 좋아한다. 우리 집에는 10가지 정도의 퍼즐이 있었는데 지금은 당근마켓으로 몇 가지를 처분하고 너 다섯 가지의 퍼즐만 남은 상태다. 몇 년간 자주 맞추다 보니 그림이 조금 식상해져서 그렇다.


단순한 퍼즐보다는 복잡하고 화려한 500피스, 1000피스를 가장 선호한다. 하루에 다 맞추고 싶어서 점심 직후부터 맞추기 시작해 해가 질 때까지 이른바 자연광 아래서 즐긴다. 500피스는 4시간 정도, 1000피스는 8시간 정도 걸리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집에 하루 종일 집에서 안 나가는 날에 시작하게 된다. 완성한 퍼즐은 한 번도 본드를 붙인 적 없다. 퍼즐의 매력은 다 맞추고 다시 깨트려 박스에 새것처럼 넣어두는 맛이 있다. 퍼즐을 완성하면 그것은 장식용 액자이지 더 이상 퍼즐이 아니다. 나는 그냥 맞추는 행위에 집중할 뿐이고.


<나만의 퍼즐 맞추기 방법>

일단, 퍼즐 크기에 맞는 공간을 찾아야 한다. 시작하기로 마음먹으면 볕이 잘 드는 내 방 창가, 혹은 거실에 넓은 영역으로 펼쳐둔다. 자연광 아래서라면 이 두 곳이 적당하다. 행여 한 조각이라도 잃어버리면 그건 퍼즐이 아니니까. 자칫 가족들의 발에 차이거나 다른 물건과 섞여 조각이 유실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공간의 바운더리가 나름 기본 원칙이다.


퍼즐 맞출 때는 숲을 보는 눈과 나무를 보는 눈을 둘 다 보는 힘을 길러주는 훈련이 된다. 퍼즐이 이 두 가지 시각을 모두 가능하게 해서 즐겁기도 하고, 유익한 연습 도구 같다.  


다음은 숲을 보는 눈으로 울타리 만들기. 퍼즐 조각 중 가장자리와 모서리에 있는 그림을 찾는다. 퍼즐 맞출 수 있는 공간이 생기면, 그다음은 퍼즐 전체의 바운더리를 만들어 놓는 게 중요하다. 퍼즐도 글쓰기와 공통점이 있다. 전체 개요를 먼저 짜고 세부 문장들을 채워 나가듯. 전체 그림의 바운더리를 만들어 놓고 세부적인 그림을 맞춰나가면 어떤 조각을 쥐더라도 크게 헤매지 않고 안정적으로 맞출 수 있다.


다음 단계는 나무를 보는 눈으로 세부적인 디테일을 찾아 맞추기. 전체 완성된 그림을 번갈아 보며 색깔과 배치를 눈여겨본다. 전체 바운더리를 머릿속에서 이해(관찰하기)하고 난 뒤에는 어느 조각을 집던지 어느 곳에 두면 되는지 힌트를 찾을 수 있다. 디테일한 피스를 맞추는 건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가끔 중간에 애매한 곳에 위치한 퍼즐을 한 조각 맞추고 그에 연결된 조각을 찾아냈을 때의 쾌감이 있다.


인생에서도 중요하지 않을 것 같은 작은 조각 하나가, 나중에는 다른 상황의 단서로 이어지고, 의외의 연결점이 되는 것처럼, 결국 퍼즐을 맞출 수 있는 기점이 되는 것만 같아서 퍼즐 조각을 하나 쥐더라도 쓸모없다는 둥 허투루 생각되지 않는다.


또 퍼즐을 맞출 때 무언가 딱 들어맞는 촉감이 좋다. 인생과는 좀 다른 느낌이다. 정확하게 조각이 맞춰지는 느낌. 이걸 느끼고 싶다면 퍼즐을 강력 추천하고 싶다. 나는 변화를 좋아하는 편에 속하면서도, 일을 할 때에는 정해지지 않은 것이나 미완성에 대해 빨리 끝내 버려야 속이 시원해지는 그런 게 있다. 정해지지 않은 것을 빨리 정하고 싶고 빈 공간을 채우고 싶은 욕구가 나도 모르게 들 때가 있는데 퍼즐이 나름 도움이 된다. 빨리 정할 수 있는 것, 채울 수 있는 것이 나에게는 1000피스 퍼즐 맞추기 시간이 안정을 주는 것 같다.


퍼즐을 다 맞춘다는 것은 내 힘으로 온전히 100% 완성했다는 뜻이 된다. 천 개의 조각만 맞추면 목표달성이고 원하는 그림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전혀 이어질 것 같지 않던 조각들이 하나씩 연결이 될 때가 기분이 좋다. 그래서 평소 좋아하는 배경의 퍼즐을 구비해 두는 게 편이 좋다. 쉬운 것 말고 좋아하는 것.


맞춰 놓은 조각 하나하나를 찾아갈 때 스스로 대견해질 때가 있다. 다른 맥락 없이 조각을 마주했을 때는 어디에 있을지, 정답이 있을지 생각하게 되는데, 전체 그림을 살펴보면서 다른 맥락과 이어지는 한 조각을 마주했을 때는 그 조각의 위치를 추정하고 대략적으로 가늠할 수 있다. 내가 덤벙대고 작은 부분은 놓칠 때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그 위치를 잘 찾아 나갈 때 뿌듯함이 들어온다.


결국 다 잘될 것이라는 의미가 퍼즐을 맞추는 데에도 따라붙는다. 이 퍼즐의 끝에는 결국 해피엔딩이라는 것. 내가 유독 연말과 연초에 퍼즐을 찾아서 맞추는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스스로를 다독이기, 스스로에게 작은 성취감을 부여할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인 장치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송년회 파티에서 친구가 500피스 퍼즐을 선물해 줬다. 그 친구는 집 정리를 하다가 필요 없어서 버리려다가 내가 생각나서 챙겨줬는데 나는 너무너무 마음에 든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퍼즐은 재미있게 더 오랫동안 맞출 수 있을 것 같다. 예쁜 그림이 보인다면 고민 없이 카드 결제를 해버리겠어요. 나의 퍼즐사랑

작가의 이전글 관계는 어차피 0으로 수렴하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