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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는 어차피 0으로 수렴하니까

과거에 친했던 친구의 결혼식이 망설여졌다

한때 친하게 지냈던 친구R과 연락이 닿았다. 언제나 주변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는 편인 내가 먼저 연락하며, 안부를 전했다. 언제 한번 보자는 말은 그 말로서 흐지부지 될 것을 알기 때문에, 내일 점심 먹으러 회사 근처로 가겠다고 하여 번개를 잡았다. 우리는 그때와 변함없이 편하게 이야기를 나눴고 나이라는 삶의 무게가 얹어지면서 결혼과 이직 같이 다소 현실적인 대화의 비중이 조금더 늘어났다.


부지런한 출근과 몇 번의 이직으로 우리의 지갑은 맛있는 음식을 모자람 없이 시켜먹고 양껏 남길 수 있을 정도의 두께가 됐다. 밥으로 채운 위장에 따뜻한 카페인을 촉촉히 덮어줄 만큼의 시간 여유도 생겼다. 초년생의 터널을 지나 스스로를 경제적으로 돌볼 줄 아는 시점이 됐다. 자연스럽게 회사 동료와 팀장 이야기를 꺼냈고 어느정도 구체성으로 상황이 그려지는 경력도 쌓였다. 시간이 쌓아준 연륜이 어느덧 쌓여있었다.


너 거기 갈꺼야?
그러게 나도 너무 오랜만이라 꼭 가야겠다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더라고.
참 이상하지? 우리가 그때는 되게 친했는데


점심을 같이 즐긴 친구와 같은 그룹에 있던 또다른 친구 J. 그녀의 결혼식이 코 앞이었다. 그 그룹의 과반수가 결혼하고 나니 우리의 모임은 흩어져 버렸다. 그래서인지 청첩장 모임도 없이 모바일 링크를 J가 단체 대화방에 올렸다. 남은 시간도 별로 없고, 모임 날짜를 정할 수 있는 여유도 별로 없었다. 서운할 겨를도 없이 참석할 의리만 남겨진 상태였다.


취업부터 소개팅까지 서로서로의 안부를 챙기던 가까운 사이였는데 즐거운 경사를 이런 방식으로 초대를 받게 되어 버린 것에 대하여 R과 나는 서운한 감정도 불쑥 들었다고 털어놓기도 했고, 이제 그 정도 거리감이 남았음을 인정해야 하는 것일까 하고 고민을 했다. 친했다고 생각한 쪽에서 느낀 기대감의 갭이 있었던 것 같다. 주말의 귀한 시간을 할애해 결혼식장에 가야할 것인지 망설여 지기 시작했다. 예전 같으면 약속이 있더라도 쪼개서 참석하겠다고 했을 것이다. 


종종 들었던 이야기가 있다. 결혼 청첩장을 돌릴 때, 지금까지의 인간관계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고. 결혼 적령기에는 같은 모임에 속한 친구들이 비슷한 시기에 한꺼번에 결혼을 준비하게 된다면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기도 하고, 축의금을 두둑하게 돌려가며 주거니 받거니하는 일들이 자연스럽다고. 축의금을 전달했던 친구가 결혼한 지 한참 지났을 때, 연락이 소원해진 사이에서는 청첩장 연락이 꺼려진다고. 청첩장을 위한 형식적인 만남은 본인도 그 얘기를 선뜻 꺼내기 어려운 자리라 쉽지 않은 데, 그렇다고 모바일 청첩장으로만 소식을 전하자니 예의가 없어 보인다는 것. 반가운 척 연락 vs 거리감을 반영한 연락의 정도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맞춰야하느냐에 따라 고민이 깊어진다고 했다. 시간 여유는 별로 없는데 예의를 다 해야 하는 마음은 갈수록 복잡하다고. 


연예계 마당발로 불리는 홍석천이 누누히 말했듯, 결혼 잔치의 주인공이 되지 못한다면 호주머니에 채워질 일이 별로 없다고. 물론 사람과의 관계가 주는 것-받는 것=0 정확하게 오갈 수는 없다.  아무래도 멀어져 버린 관계를 다시 되살릴 수는 없지만 그때 두둑하게 담아서 건넨 돈봉투를 회수하지 못할 것이 미리 아쉽다는 생각도 든다. 숫자로 헤아리는 인간관계는 원래 씁쓸한 법이겠지. 어차피 사람은 홀로 와서 홀로 가는 법이니까. 별수 없다고 해야하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사람들은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을 한번? 아니면 여러 번하게 된다. 내향적이고 차분한 사람들은 그룹에 속했을 때 구성원들과 적극적인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과거를 아쉬워하고, 좁고 깊은 인간 관계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낸다. 외향적이고 활달한 사람들은 구성원 안에서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얇은 넓게 만나온 사람과 정작 마음을 연 사이는 소수라는 것과 그들 마저도 시절 인연 처럼 흩어져 버리는 것을 쓸쓸해 한다. 외향적인 사람이 무조건 친구가 많을 것이라는 전제와 내향적인 사람이면 사람을 좁게 만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물론 협소한 사고방식이기는 하다. 


취업, 결혼, 이직, 육아, 이별의 인생지대사를 기점으로 ‘내 사람들’ 무리가 체에 한껏 걸러지는 느낌이 든다. 친구가 많은 사람도 결국 소수의 친구들만 남기고 이들에 집중하게 되며, 친구가 적은 사람도 결국 소수의 친구들과 소중한 만남을 유지하게 된다. 점점.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집중하게 되면 멀어지게 마련이니까.


나 또한 그렇다. 사회 혹은 기성 세대가 정한 결혼 적령기를 한참 지나서 점차 멀어지고 있는 나는 다른 때에 비해서 친구들과의 연락이 예전만큼 쉽지 않다. 꿈에 나오거나 불쑥 떠오르면 곧잘 연락을 이어갔고, 쉽게 만날 약속을 정했다. 좋아하고 편한 사람들에 한정해서. 결혼과 출산의 단계에 이제 막 접어든 친구들에게 연락을 할때는 밤 보다는 낮 시간대에, 주말 보다는 (PC카톡을 켜놓을 가능성이 높은) 평일만 골라서 안부를 묻곤 한다. 육아에 뛰어든 친구들과는 카톡 한 통에 이틀의 텀을 두고 답장을 오간다. 그만큼 실시간 시시콜콜한 이야기 보다는 지나간 일에 대하여 정리된 내용으로 근황을 정리하는 방식이다. 어차피 오래갈 친구들과는 아이들이 자라고 10년이 지나도 연락이 닿지 않을거라는 확신이 있지만, 관계는 상호의 합이니까 단정 지을 수도 없지. 이렇게 서로의 인륜지대사에 혼미해지는 과도기 나이에 접어들면 여유 있는 사람이 먼저 챙기지 않으면 금세 흩어져 버리는 것도 같다. 


시절인연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마음을 열었던 친구들 중에서도 점차 거리가 멀어지게 된 친구와는 멀어지게 마련이고, 만난 지 얼마되지 않아도 마음이 통한 다면 언제 그랬냐는 듯 급속도로 친해진다. 가는 사람은 막지 않고 오는 사람 또한 막지 않는다. 현재의 그 관계에 대하여 감사하며 충실할 뿐이다.


또 인연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는 다는 것도 안다. 그렇게 벗어나고 싶었던 회사의 대표님으로 부터 반가운 연락을 받고 N잡러 기회를 얻게 되기도 했고, 크게 기대하지 않던 사람들과 생각치 못하게 친해져 시시콜콜한 일상을 나누는 사이가 됐다. 그래. 그냥 멀어진 것과 축의금 봉투의 두께에 일일이 쓸쓸해 하지말고 일단은 R과 고민은 일단락됐다.


친구의 결혼식에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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