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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나이처럼 보일 때가 가장 아름답다

아트하우스에서 보고 온 영화 <코르사주>

자칭 영화관에 가기를 두려워하는 나는, 연말을 맞아 영화관을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극복이라는 말을 하기에 거창하긴 하지만 몇 년 동안 영화관을 상상만 해도 갑갑한 공간에 갇히는 느낌이 들어 근육이 긴장될 정도였으니 시도하는 것 자체에 스스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연말에 몰아서 이미 본, 그리고 볼 영화는 거의 4편 정도. 이만하면 영화광으로 레벨이 단숨에 업그레이드해야 할 수준이다. 역시 꽂히면 한 번에 해치워 버리는 나답다. 


코르사주라는 단어만 들었을 때는 페미니즘 코드가 들어간 영화일까?라고 오해했다. 단순하고 좁은 나의 편견이었고 코르사주는 말 그대로, 옥죄는 답답한 것을 상징하는 것이고 자유를 말하는 영화였음을 알게 됐다. 

세상은 날로 변해가고 아날로그 적인 것들이 모두 현대식으로, 더 세련된 것을 추구하면서 적응을 해가지만 궁실은 여전히 전통을 지키고, 옛날로부터 보존하고 지키려는 곳 중 하나이다. 그러다 보니,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을 가진 인물이라면 그 답답함 다른 무리에 비해 유난히 돋보일 것이고, 모난 것처럼 보이는 것 같다. 아주 작은 행동도 말이다.


황후 엘리자베트는 그런 인물이다. 보통 사람들과 다르게 자유분방하고, 그리고 더 자유롭고 싶어 하는 인물이 실제로 모든 것이 틀에 박힌 궁궐에 들어갔으니 예상되는 그녀의 스트레스는 말하지 않아도 훤하다. 더욱이 그녀가 가장 의지하고 사랑하는 대상인 두 아이들조차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슬픔이 배가 됐을 것이다. 


황후는 40대 여성이 아니라 시대의 상징물이어야 하고, 국가의 격을 대표하는 비주얼을 유지해야만 하는 상황이 얼마나 갑갑했을까? 임신이 목적이 아니라면 자유로운 성생활도 하지 못하는 고리타분한 남편(그러니까 왕). 성숙하게 행동해야 하는 그녀의 자녀들까지. 자유롭고 싶어서 승마를 즐기기 위해 여행을 떠나곤 했는데 말 관리자와 스스럼없이 지냈다고 해서 의심을 받고 소문까지 나 버리는 상황까지. 나 같으면 이미 헤까닥 돌 것 같다. 


제 나이답게 않게 행동하지 못하는 것이야 말로 정말 슬픈 것이다. 


황후의 두 아이들도 그렇다. 나이에 비해 성숙한 말들을 해야 하고,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지닌 엄마를 오히려 말리는 장면에서 나는 가슴이 너무 아팠다. 나중에 황후는 그녀의 부담감을 내려놓기 위해 긴 머리를 짧은 단발로 자르는데, 나는 그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왕실에서는 40대가 되면 저무는 나이인데, 나는 황후가 그녀의 모습과 가장 잘 어울리는 헤어스타일을 만든 것 같아서 가장 아름다웠다고 생각한다. 


긴 머리를 고수해야 할 때는 황후의 얼굴은 진짜 무기력해 보였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식물인간. 그 이미지를 먹잇감 마냥 뜯어먹는 언론부터 그녀를 이해하기조차 거부하는 주변인들. 머리 관리하는 사람은 그녀가 스스로 머리를 잘랐다고 해서 대충격을 받고 오열하는 장면에서, 황후 엘리자베스에게 거는 주변의 기대와 시선, 사회로부터 느껴야 하는 강한 압박감 같은 것을 (머리를 자름으로써) 벗어던졌다는 상징적인 장면 같아서 영화 속 최고의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그 뒤로 그녀는 조금씩 밝은 모습을 띄는 것 같다. 표정이 한결 자연스러워진 게 보인다. 이런 미묘한 연기를 자연스럽게 하는 배우 역시 대단. 영화를 보는 내 마음도 살짝 가벼워졌다. 


사람이 나이에 맞는 모습일 때, 그 대상이 가장 잘 맞는 것을 할 때가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황후의 오른팔 마리가 딱 그랬다. 마리는 오랜 궁궐 생활의 경력자로서 기품이 있었는 사람이라는 걸 발레리 공주가 ‘가장 위엄 있어 보였다’고 말해줬다. 이게 또 황후의 아이디어를 번뜩이게 한 계기가 아닐지 생각해 본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 생각을 했다. 내가 글쟁이여서일까? 엘리자베트 황후가, 아니 궁실에 사는 사람들 모두가 자기만이 일기를 쓴다면 역사 속 인물들은 조금 더 건강한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할 수 있었을까? 물론, 이해관계에 따라 공개의 위험이 따르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적나라하게 담긴 일기장들이 지금까지 전 세계 궁궐에서 현존(?) 아니 공개되지 못한 것이 당연하기도 할 것 같다. 나라면 의사로서 일기를 꼭 쓰라고 처방해 주고 싶을 정도다. 


황후는 정말 외로운 인물이었다. 영화 <스펜서>도 마찬 가지였을 것이다. 살아있는 한 가장 옆에 있는 하녀도, 남편도, 자식에게도 모두 비밀이 없이 투명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일기장 하나만 있었어도 마음에 기댈 곳이 생기고 현실의 중압감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왕실의 역사 속에서 몰래 일기를 쓴 인물이 있다면 꼭 내가 꼭 한번 덕질을 해보고 싶다. 


결국 황후는 하나씩 내려놓기 시작한다. 남편(왕)이 다른 여인에게 눈길을 보낼 때, 그에 대한 원망과 그 애정의 대상이 내가 아님을 자책하는 상황이 무지 마음 아팠다. ‘왕실에서 저물어가는 나이인 40대’와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수식어는 같은 선상에 오를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인 황후는, 남편이 눈길을 보내는 18세 여인에게 그 자리를 내어준다.


또 기품 있는 삶을 살도록 선택할 수 있는 마리에게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황후는 마리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엘리자베트는 가장 자유로운 선택을 하고 만다. 그것이 과연 최선이었을까? 싶지만 영화의 엔딩을 위해 감독이 선택한, 가장 극적인 연출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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