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한 모 TV의 생각과 고민들을 엿보다
모 TV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건 몇 해 전 송년회자리에서였다. 주식 열풍으로 너도나도 투자 정보를 이야기할 때였고 더 이상 직장인의 월급만으로는 돈을 차곡차곡 모으기에 한계가 있다는 이야기. 그러면서 흘러간 이야기가 결국 유튜버로 나서야 한다는 둥, 결국 자기 브랜드가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현실 넋두리가 끝을 향해 갈 때 누군가 그랬다.
브랜드 만드는 걸 하나하나다 지켜볼 수 있는 채널이 있어. 모 tv라고
구독자 수가 어마어마했다. 나도 나중에 볼게 하면서 따로 좋아요, 구독을 형식적으로 눌렀지만 다시 찾아본 건 이번 달 N잡러를 위한 공부에 필요해서였다. 몇 년 전에는 맥주 한잔에 흘러가는 말로 알던 게 브랜딩이었는데, 현재 시점에서 나는 브랜딩이 중요하다는 의미를 몸소 체감하고 행동하는 시기가 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뭐 어쨌든 모 tv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너무 뻔한 말이고, 프리워커스라는 책을 찾아서 읽었다. 기다렸던 책이라 두껍고 파란 책을 펼쳐 볼 수 있을 날 만을 기다렸다.
이 책이 내 마음에 들었던 건 성공, 실패의 한 지점에서 쓴 글이 아니라 흘러가는 과정을 그대로 담아낸 아카이빙 자료이기 때문이다. 과거와 현재의 맥락, 실무자가 느낄 수 있는 아주 가까운 포인트를 글로 접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생생하게 들렸다.
37p. 우리는 결국 절을 바꾸지 못하고 떠난 중이 됐다. 그래서 이 에피소드는 새드엔딩인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절을 바꾸려 망치도 들어보고 톱도 들어보면서 얻은 귀한 감각이 하나 있다. ‘이렇게 일할 때 일할 맛이 난다’라는 감각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일은 재미있어진다는 것. 모두가 무의미하다고 말할 때 스스로 맞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면서 얻는 성취감은 무엇보다 컸다. 그리고 결과는 성에 차지 않을지 언정 무엇이든지 ‘하는’ 사람은 시도조차 하지 않는 사람이 얻지 못하는 값진 경험을 얻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이 깨달음은 우리가 일을 하는 태도에 큰 영향을 줬다.
나 역시 크게 소속감을 느꼈던 절들을 네댓 번 떠난 경험이 있는 중이다. 떠날 때에는 떠날 수밖에 없는 뚜렷한 계기가 생기는데, 그때 머뭇거리기 않고 회사의 회유에 넘어가지 않고, 결심한 대로 나오는 게 가장 최선인 것 같다. 퇴사하기 일주일 전에는 떠나는 나를 배려해 주는 회사에 대한 애정과 소속감에 잠깐 흔들릴 수 있는데, 그것은 좋은 마무리를 위한 배려일 뿐인 것으로. 떠나려는 중(나)은 사직서를 내밀기까지 내적 갈등, 외적 갈등을 거치면서 나름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많았을 테고, 내가 원하는 때에 떠나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니 그 결심대로 행하는 것이 가장 후회 없이 깔끔하다.
오래 남아서 과도기와 혼란기를 넘긴 일개미와 비교했을 때 나는 끈기가 없어 보일 수 있다. 포기가 빠른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런데 퇴사라는 결정을 하기까지 나의 맥락을 온전히 이해해줄 수 있는 타인은 없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 퇴사를 했고, 무의미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확실히 회사에서 시키는 것을 성실하게 하는 것보다는 내가 원하는 것을 무난하게 해내는 것이 훨씬 만족도가 높고 자발적인 태도로 일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니까. 지금도 주체적으로 스스로 컨트롤하면서 살고 있는 내 루틴이 마음에 든다. 그러니까 떠난 사람은 무엇을 하든지 실패로 정의할 수 없다.
45p. 일이란 뭘까. 아마 평생 정의할 수 없을지 모른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일이란 인생과 닮아서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 한없는 기쁨을 주는가 싶다 가도 기어코 시련과 좌절을 준다. 그러나 이왕이면. 한 번뿐인 인생 잘 살고 싶은 마음과 마찬가지로, 돈 벌려고 하는 일이지만 ‘이왕이면’ 자유롭고 의미 있게 잘 해내고 싶다.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이라면 끌려가듯 하고 싶지 않다. 재미있게 우리답게 일하는 기쁨을 누리면서, 나아가 세상에 좋은 영향을 주면서 일할 수 있다면 좋겠다. 같은 재료의 음식도 이왕이면 근사하게 차려내고 싶은 마음이다.
이 문장에서 밑줄을 박박 그었다. 마음이 방황할 때 고민하는 것에 대한 정의 내리기에 집착하게 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연애가 생각보다 잘 굴러가지 않을 때 사랑이 뭔지, 사람이 뭔지에 대해 고민했고. 일과 역할에 대해 불안정한 감각을 느끼기 시작할 때 일이 무엇인지, 일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 지 짚어봤던 것이다. 일하는 마음에 있어서는 회사가 주는 일에 대해 내가 잘 받아들이는 자세가 아니라, 내가 하겠다고 선택한 일에 대하여 내가 어떤 태도로 할지 스스로 결정 내리게 하는 건 참 중요한 것 같다. 설령, 누군가 나에게 갑-을-병-정의 구조로 일해야 하는 프리랜서의 세계를 추천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나는 그것이 대행 작업이든, 대대행이든 나의 포트폴리오에 필요한 일이라거나, 수익을 떠나 내가 흥미 있는 일이라면 그런 점들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나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의미와 흔적이 남을 거니까.
<프리워커스를 있게 한 것들>
57p. 기록의 시작은 엉성할수록 좋다. 기록이 쌓인 후 만들어진 것과 비교했을 때의 낙차로 결과물은 더 빛난다. 부디 가벼움을 잃지 말고 부담은 가능한 내려 두길. 다만 지치지 않고 기록으로부터 기록으로 나아가보기를 바란다. 저마다의 기록이 새로운 가능성으로 가는 다리가 되어 줄 것이다. 그 다리를 지나 우리가 함께 더 큰 가능성을 만들 수 있기를 바라 본다.
프리워커스 멤버들에게 가장 본질적인 정체성은 기록인 것 같다. 예나 지금이나 유명해진 사람들은 모두 기록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가벼움의 철학은 정말이지 중요하다. 뭐든지 완벽한 결과물만 내려는 사람이 있는 반면, 가볍게 쳐내도 되는 것들이 있는데 작업의 완성도 보다 타이밍이 중요할 때 가볍게 쳐내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기록을 예찬하는 이유는 나 역시 메모장을 들고 24시간 끼고 살기 때문에. 가방에 늘 펜과 메모장이 있다. 아이폰 메모장을 켜고 자판을 입력하는 것보다 손으로 꼭꼭 눌러쓰면서 담기는 방식이 좀 더 다르다고 생각한다.
148p. 생계를 위해 일하고 단기적으로 소모되는 일이 아닌, 스스로가 재미있게 일할수록 우리 자산이 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졌다. 무엇보다 팬과 함께 만든다는 것, 생산자와 사용자의 벽을 허무는 새로운 방식을 실험한다는 점이 우리에겐 고무적인 일이다.
184p. 그 일을 계기로 일을 선택하는 기준이 더 명확해졌다. 우리 앞에 놓인 여러 일을 두고 하는 첫 질문은 ‘고정비를 위해 해야 하는 일인가?’이다. 그렇지 안 하면 마지막 질문을 한다. ‘우리답게 할 수 있는 일인가?’ 그 외에는 어떤 것 과도 타협하지 않는다. 이런 원칙 때문에 놓친 일도, 파트너도 많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우리 고유의 색이 더 뚜렷해졌으며, 다수는 아닐지라도 명확한 목표를 갖고 찾아오는 소수의 사람들 덕분에 아직까지는 순항 중이다.
119p. 짝퉁 해프닝을 수차례 겪으면서 우리는 ‘반복’의 필요성에 대해 알게 됐다. 반복 이야말로 틀림없는 것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새로움’에 대한 갈급함으로 언제나 다른 것, 신선한 것만을 만들어내려고 했는데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미 갖고 있는 우리의 것을 단단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틀림없는 우리 자신의 것’이 많아질수록 우리는 더 선명해졌다.
88p. 너무나 민망하고 힘든 상황이었지만 버틸 수 있었던 건 그 와중에도 유쾌함을 잃지 않으려 했던 마음 때문이었다. 우리는 힘들수록 실없는 우스갯소리를 하면서 웃으려고 했다.
<프리워커스가 만난 사람들>
269p. 없어. 왜냐면 이건 네 거잖아. 브랜드를 만드는 거랑 사업을 하는 거랑은 달라. 사업은 나중에 내가 따로 얘기해 줄게. 브랜드에 대해서는 지금 코멘트할 게 없어. 브랜드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에는 공식이 없고, 네 거니까 네 소신을 갖고 만들어가면 돼. 그건 너무 잘하고 있어. 제일 멋있어. -라인프렌즈 김경동 부사장
전 직장 상사를 찾아가 브랜드에 대한 들은 피드백을 남긴 말. 솔직히 말하면 나도 쾌감을 느꼈다. 브랜드를 꾸려나가는 동료들을 보면서 너무 잘하고 있다. 멋있다는 말 한마디를 들을 수 있는 건 일을 하면서 느낄 수 있는 몇 안 되는 짜릿함 일 것 같다. 이 순간 모베러웍스가 너무 부러웠다.
<동기 부여가 되는 말들>
140p. 공유하고 나누는 사람의 최종 이익이 커진다. ㅡ 야마구치 슈 <뉴타입의 시대>
83p. 누구든지 웬만한 정도의 상식과 경험만 있다면, 자기의 삶을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 방식 자체가 최선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자기 방식대로 사는 길이기 때문에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ㅡ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274p. 즉흥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면 빨리 해보고 아니면 말면 된다는 자세. 요즘에 저는 신중할수록 손해라고 생각해요. 시간 끄는 사람이 무조건 손해 보는 것 같아요.
278p. 부족해도 결과를 내고 마감하는 게 더 중요해요. 하면서 계속 좋아지고 성장도 하는 거지. 이것저것 재느라고 시작도 안 하는 사람보다는 망해도 뭐든 하는 사람이 나은 거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물론 그 말도 맞지만 저는 그거보다 ‘능숙하다’는 감각이 더 중요한 거 아닌가 싶어요. 좋아하는 일만 하는 것은 냉정하게 얘기하면 취미 생활 아니에요? 어떤 일을 능숙하게 하면 잘하게 되고, 잘하면 그 일을 좋아하게 되는 것 같아요. 또 어떤 한 분야의 일을 잘하고 경험치가 많아지잖아요? 그러면 다른 일도 잘할 수 있어요. 이 분야에서 저 분야로 다리 건너기가 쉬워지는 거죠. - 월간 <디자인> 전은경 편집장
292p. 우리가 하는 일들은 안정화되면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안정적인 걸 원하는 게 아니러니 한 거죠. 불안이 디폴트거든요. -김태경 어반북스 편집장
303p.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자신들이 있어요. 정말 반짝반짝한 자산들이요. 지금은 돌 같지만 가공하면 다이아몬드가 될 수 있는 채로 남겨져 있는 것도 분명히 있을 거예요. 저도 ‘내가 이런 능력이 있었어?’하면서 발견하는 게 있거든요. 그런데 이건 해봐야 아는 것 같아요. 경험을 많이 해봐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산을 캐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거든요. 아직까지도 저는 그 광산을 계속 캐고 있어요. 각자의 광산을 캐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