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음주예찬 영화 <어나더라운드>
술에서 쓴 맛이 나는 이유에 영화로 답한다
일단 포스가 꽤 맘에 들었다. 술을 즐겨 먹는 사람들만이 알고 있는 취기가 오른 느낌을 포스터가 잘 담았기 때문이리라.
혈중 알코올 농도 0.05% 약간만 취하면 인생은 축제다
이런 말을 하는데, 술을 좋아하는 나로서 도무지 참고 넘어갈 수 없었다. 다행히 OTT에 있어서 원하는 시간에 바로 볼 수 있었다.
실제로는 근사한 인물인데 생기 없고 지루한 일상 때문에 핏기가 없는 얼굴의 마르틴. 지루함의 아우라를 풍기며 학생들로부터 무시당하는 역사 선생님이다. 재미있게 가르칠 능력이 1도 없어 직업적 위기를 겪게 된다.
마르틴 스스로가 지루한 일상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끼면서 4명의 선생님들이 시작하는 생체실험. 하루 12시간 간격으로 술이 깨지 않을 만큼 혈중 알코올 농도 0.05%를 유지하는 것. 취기가 살짝 오르면 텐션이 오르고 몸이 가뿐해지는 기분 좋은 상태가 된다. 이 시점에는 어떤 말도 대담하게 꺼낼 줄 아는 용기도 생기고 제스처가 과감해지면서, 자신감을 가진 사람으로 보일 수 있게 된다. 자신감 없이 상대방을 답답하게 만들었던 마르틴은 학생들에게 술 덕분에 위트 있는 퀴즈를 내기도 하고, 톰뮈는 아이들에게 체육활동지도를 더 활력 있게 가르치게 되고, 페테르는 용기 없는 학생을 다독이며 더 좋은 스승으로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나도 이 시점에서는 그러게 정말 술이 긍정적인 면이 있겠구나. 필요하기도 하겠다고 수긍하려던 시점이었다. 한편으로는 술 냄새가 당연히 났을 텐데 현실적인 걱정이 들기도 해서 영화에 몰입이 깨지기도 했다.
알코올혈중농도가 높아질 때, 알코올을 바라보는 긍정적인 시각은 점진적으로 바뀌게 된다. 판도라의 상자처럼 인간에게 금기된 위험한 행동 호기심.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극단적으로 높은 쾌락을 추구하게 된다. 제3자가 봤을 때는 이미 취한 듯, 제정신이 아닌 듯, 심각한 수준인 듯싶지만 알코올 섭취한 당사자는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고 덕분에 더 대담하고 스스로도 멋진 행동을 하는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 용감해 보이는 순간을 알코올을 매개로 연출하는 1인칭 시점의 시각인 것이다.
알코올이 위험한 것은 점진적으로 위험하다는 점이다. 슬며시 오르는 취기가 좋아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은 오해일 수 있다. 알코올은 점진적으로 인간을 잠식하게 한다. 알코올에 의존성이 높아진 그들은 그 유혹을 이겨내기에 사투를 벌인다. 가까운 가족들은 달라진 마르틴의 행동이 걱정되고, 마르틴은 극단적으로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격앙된 행동을 하기도 한다. 다시 되묻고 싶다. 과연 술은 행복에 도움이 되는 게 맞을까?
술과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실험에 참가한 4명의 선생은 몸은 몸대로 상하고, 이혼 위기에 놓이고, 외로움은 외로움대로 커지게 된다. 심각한 것은 알코올에 본인도 모르게 중독된 것이다. 나도 모르는 새에 술병을 쥐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술과 나는 대등한 관계가 아니라는 점을 알아차려야 한다. 술을 이길 생각은 일절 하지 말아야 한다. 술은 즐기되, 의지하면 안 된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점은 술과 우리의 인생은 멀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는 데 술은 없어서는 안 될 인생 조미료인 것이다. 톰뮈가 알코올에 의존하면서 피폐해져 가는 삶을 스스로 놓으면서 열린 장례식. 알코알코부터 겨우 도망쳐 온 나머지 3명의 친구들은 그를 기리기 위해 슬픈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술잔을 들어야 했다. 동시에 학생들의 졸업에 기뻐하면서 축하는 의미에서의 술 잔도 동시에 들어야 한다.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다.
아, 그래서 술에서 쓴 맛이 나는 거구나.
좋을 때 취하고 나쁠 때 팽해야 하는 게 알코올 같다. 잔뜩 기대한 채 화이트 와인을 병째 들고 영화를 시작했는데, 단 한잔만 먹고 잔을 내려놓았다. 영화 러니타임 동안 마르틴, 톰뮈와 그들의 친구들이 몸소 보여준 실험에 나는 한잔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을 떨쳐 낼 수밖에 없었다.
올해 유난히 필름이 자주 끊겼던 나이기에 스스로 반성한다. 술은 팽해야 하는 존재다. 나란 놈아, 알겠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