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세 마라토너의 기록
누군가는 자신의 이름에 붙은 온갖 수식어를 존재로 압도한다. 그가 남긴 삶의 단면이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을 때다.
해리에트 톰프슨의 경우가 그렇다. 그의 이름에 붙는 ‘최고령 마라토너’, ‘암 극복의 상징’이란 표현은 하나의 이미지 앞에서 힘을 잃는다. 백발의 노인이 결승선을 통과하며 지어 보이는 단단한 미소와 땀방울 너머로 드러난 기운. 단순한 감동의 장면이라기보다, 인간의 행위를 나이로 재단하던 관성적 편견을 미세하게 흔드는 균열이다.
1923년 펜실베이니아에서 태어난 그의 삶은 조용했다. 피아노를 치고, 다섯 아이를 키우고, 교회에서 봉사하며 시간을 이어 나갔다. 예술가로서 큰 무대에 오른 적은 있지만 스스로 빛내려 애쓰지 않았다. 영웅적 격변보다 잔잔한 일상의 층위가 그의 인생을 구성했다.
일상의 표면에 미세한 균열이 생긴 건 76세의 어느 날. 교회에서 열린 자선 릴리에 마라톤에 참가한 뒤였다. 8km를 걷고 뛰는 단순한 행사였지만 결승선을 넘은 그의 가슴에 정체 모를 파문이 번졌다. 몸의 피로보다 ‘살아 있다’는 삶의 신호가 강하게 울렸던 것.
울림은 삶의 전반에 퍼져 80대 중반의 나이에 풀코스 마라톤을 등록하는 결정으로 이어졌다. 주변의 만류가 거셌지만, 그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사실 그가 달리기를 택한 이유는 운동이 주는 활력 때문만이 아니었다. 두 번의 암 진단과 치료, 삶의 균열을 가져온 상실의 시간이 기저에 깔렸다. 마라톤은 존엄의 재건을 위한 의식이었다. 상실이 몸을 갉아도 마음을 멈추지 않겠다는 의지였던 것.
달리는 궤적에 이타적 무늬도 깃들였다. 백혈병·림프종 기금 마련을 돕고 싶었고, 마라톤이라는 오래된 형식이 누군가의 삶에 작은 빛이 되리라 믿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노령에 운동화를 신는 행위 자체가 인생의 삐걱대는 경첩을 조심스레 여는 선언이 아닌가. 노년의 다리는 쉽게 떨렸고 숨이 거칠었다. 몸과 세상 모두 그에게 멈추란 신호를 보냈다. 그는 포기란 단어를 쓰기 싫었다. 매일 4-5km를 걷는 연습부터 시작했다.
이후 지역 마라톤 모임에 가입한 그녀는 16차례나 마라톤 완주에 도전해 성공했다. 그를 보던 이들은 운동신경이 뛰어난 노인이라 말했지만, 오해였다. 도전 뒤에 숨은 것은 실패와 좌절, 재건의 반복이었던 것. 떨리는 다리를 스스로 격려하며 이룬 기적이었다.
2015년, 92세 65일의 나이였던 해리에트 톰프슨은 샌디에이고 마라톤 풀코스에 다시 도전했다. 이전과 같이 성공했지만, 놀라운 결과를 동반했다. 7시간 24분 36초라는 기록. 이전에 92세 19일로 호놀룰루 마라톤을 완주한 글래디스 버릴의 기록을 넘어선 순간이었다.
세계 언론은 그를 ‘역사상 최고령 마라톤 완주자’라 칭했다. 결승선에 사람들의 환호성이 울렸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고요함을 머금었다. 마치 자신의 완주는 세상에 대한 답이 아닌 내부의 어둠과 빛이 교차하는 합의라는 듯.
세계 언론의 조명이 쏟아졌지만 삶은 흔들리지 않았다. 마라톤 완주 이후에도 합창단에서 노래하고 피아노를 가리키며 지역 자선 행사에서 작은 역할을 이어갔다. 달리기는 삶을 뒤덮는 담요가 아니라 고요한 일상을 지탱하는 또 하나의 형식에 불과했다.
94세의 어느 날,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마지막까지 공기를 가르던 아름다운 모습을 뒤로한 채. 우연과 폭발이 아닌 축적과 노력으로 쌓아 올린 삶이었다. 사람들은 그의 나이와 기록에 감탄했지만, 정작 그는 언제나 자신의 마음과 즐거움을 삶의 근거로 삼았다.
결승선을 통과하는 노년 여성의 이미지는 이제 노년의 용기와 성숙을 상징하는 도상으로 남았다. 평생을 성실하게 쌓아 올린 하루가 완주로 응결되었다. 아마 그의 이름은 오래 기억될 것 같다. 세상의 편견과 관성적 좌절을 넘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신념을 증언하는 삶의 한 표지로서.
그의 표지가 전하는 교훈은 단순하면서 강력하다. 인간의 삶은 거창한 순간보다 꾸준히 쌓여온 장면이 모여 은은한 빛으로 나타난다는, 근래 보기 드문 의미. 축적의 시간 속 나이는 단지 시간이 새긴 나이테에 지나지 않았다. 해리에트 톰프슨만의 특별한 일이 아니다. 우리의 나이테도 마음의 문제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