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잠재의식

잠결에 드러나는 소우주

by 온리원


아이의 무의식은 스펀지라

엄마의 모든 감정을 파악하고 빨아들인다.


아이 양육에 대한 현실적 두려움으로

늦은 밤 책상에서 일을 하다가도

나도 모르게 울컥 쏟아지는 눈물을 참지 못할 때,

아이는 등 뒤로 느껴지는 내 절박한 슬픔과 두려움을 고스란히 흡수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아이는 "난 우찌 않아." 라며

다짐하듯이 혼잣말을 하곤 했다.


그 후로는 아이가 있을 때 울지 않으려 노력했다.

아이가 말을 걸 때는

더욱 과장되게 반응했고,

열렬히 환호했으며,

온몸으로 웃어 보였다.


"엄마, 이거 우쮸가 만들었져"

"와~~~~! 너무 예쁘다. 우리 우쮸 최고!

엄만 진짜 행복하다."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만들어온 첫 카네이션이었다.


내 속이 어떻든 간에,

엄마가 우울한 사람이 아니라 행복한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는 게 중요했다.

나는 내 감정을 이해받기 위해

이 소중한 생명을 낳은 것이 아니니까.


아이는 말하지 않고 표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모른다.

아이와 교감할 때 만큼은 나 역시 아이로 돌아가

그 순간의 감정을 마음에 양보하지 않고

겉으로 투명하게 드러냈다.

그리고 아이와 놀 때만큼은

현실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을 잠시 내려놓았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행복에 집중하기 위해서.


"가위바위보!"

"아 ~~~아깝다~~~~!"


물론 아이와 게임을 할 때는

져서 너무나 아쉽다는 표현을 명백하게 해주어야 한다.

이때의 키포인트는 말보다 표정이다.

무표정으로 '아깝다'고 하면

아이는 그저 멀뚱멀뚱할 뿐이다.


나 자신을

디즈니 만화 속 7:3 비율의 주인공이라 생각하고

온 얼굴의 미세근육을 다 동원하여

진심으로 애타게 아쉬워해야 한다.

아이는 바보가 아니므로 어떤 상황에서나

무조건 기쁜 표정은 아이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대신 이때는 승리감에 도취된 아이의 만족스런 웃음이 인센티브로 딸려온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아이가 가장 보고 싶어하는 것은 역시 행복한 엄마의 모습이다.

반달 같은 눈과 입꼬리가 바짝 올라간 엄마의 표정을 유심히 살펴보던 아이는

그때부터 하루에도 몇번씩 나에게

뭔가를 주기 시작했다.


"엄마. 이거 우쥬가 그렸저. 자해찌."

"엄마. 생일 축하해. 이거 하트야. 하트쥬게"(매일이 생일이었다)

"엄마, 이거 우쥬가 심엇져."

"엄마, 이거 꽃이야. 코 해봐. 맡아바."


아이는 나에게서

온몸으로 춰대는 열렬한 환호성을 확인하고서는 함께 웃었으며,

줬던 물건을 도로 다시 가져가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같은 물건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줬다 뺏으며 아이의 무의식에는 '기쁨과 보람'이라는 감정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나보다.



어느 날 새벽 5시,

입과 코로 새근새근 뱉어내는 숨소리를 뚫고

갑자기 터져나오는 웃음.


"으히힝, 히히, 축하해, 축하한다구.'


여전히 눈은 감고 있었지만

아가의 표정은 활짝 웃고 있었다.

소리를 내면서 웃을 정도면

도대체 어떤 꿈을 꾸고 있었던 걸까.


무슨 꿈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이 조그마한 아이의 잠재의식 속에 '행복' 한 주머니가 자리 잡고 있다는 건 확실해 보였다.

꿈속에서조차 활짝 웃는 걸 보니.



문득 거울을 본다.

내가 웃을 때 어떤 표정인지 잊고 산지 오래라.


지난 세월, 쳐진 입꼬리가 더욱 자연스러웠던 얼굴을

행복으로 하나하나 성형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