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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리바 Nov 05. 2019

숫자에 불과한 여자의 나이

20대 후반 여자의 나이 생각. 삶에 대한 생각.

앞으로 결혼식 투어를 많이 할거 같다.

아직 시작도 안된 결혼식 투어에서는 웬일인지 반가운 얼굴들도 많이 보겠거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리고 우리가 벌써 그 나이에 접어들었다는 것이 아직은 실감이 나지 않는다.

(나를 객관적으로 본다면 스스로가 너무나 철 안 들었기에. 실감이 나지 않는다.)


결혼보다 자신의 인생에 대한 목표나 의지가 뚜렷했던 친구가 결혼을 할 것 같다고 나에게 연락해왔다.

처음엔 믿지 않았는데 얘가 그런 농담을 할 애가 아니란 걸 알면서 그 애의 말을 부정하고 싶었다.

... 만우절도 아닌데...


나는 결혼에 관해서 이른 나이부터 걱정을 했고 설렜고 쓸데없는 고민도 했고 이야기도 항상 해댔는데

그때마다 친구는 '결혼하면 여자의 일생은 끝이야. 왜 결혼에 대한 고민을 지금부터 해야 해?'라며 전투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의지를 엄청 보여줬다. 난 그 친구가 한 말이 아직도 생각이 난다. 

인생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깐 행복한 거라고.

 

투덜거리면서 마음과 인생이 침체되어 있을 때 그 친구의 말이 되게 와 닿았다.

맞다. 그 친구의 말처럼 인생은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깐 매일이 행복한 순간순간들이다.

그런 말들에 힘을 얻어서 인지 힘든 시간들도 지금 되돌아보면 엄청 행복한 기억이 가득하다.


내가 해외봉사를 나가 있을 때 이 의욕 많은 친구가 많이 생각났다. 한국에 돌아왔고, 친구가 교환학생을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떨어져 있었던 시간 동안 이 친구가 참 많이 생각났다. 연락한 횟수는 적었지만 그리움의 깊이는 깊었다.


뜬금없었지만 친구는 결혼한다고 한다. 


만약 우리 친구들 중에 결혼을 하게 된다면 가장 나중에 할 것 같은 리스트로 끝자락에 생각해놓은 친구가

결혼을 한다는 소리를 들으니 너무나 허하고 슬퍼졌다. 결혼 소식을 들은 그날 너무나 바빴는데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서 실수가 잦았다.


'우리가 벌써 그런 나이가 되었나 봐.' 하며 이야기를 하다가 친구는  나도  곧 이라며 진정으로 악담을 퍼붓는 (?) 친구에게 '조용히 가라.'라고 읊조렸다.


어찌 됐건 좋은 사람에게. 좋은 남자에게 간다는 것이 다행이다.

좋은 남자를 만나는 것도 중요한데 이전에는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지라는 마음이 컸었다.

타인에 빗대어볼 때 좋은 사람이라는 게 어떤 건지 잘은 모르겠지만 일단은 열심히였다. 내가 가진 역할에 열심히 임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 생각들을 열심히 했던 거 같다. 좋은 사람은 나부터 돼야 한다고 생각을 했으니깐 단순하게 나를 다지면 되지 않을까? 하며 '다져진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욕심도 많았다. '그렇게 되면 좋은 내가 좋은 사람을 만나지 않을까?'처럼 그렇게 생각하고 기대했던 거 같다.

그건 아마 혼자 여행을 하면서, 이곳저곳을 둘러보면서 여러 사람들을 두루 만나고 그런 관계들 속에서 환경들 속에서 생활 속에서 생긴 나의 다짐이였던 거 같다. 


최근에 들어서는 좋은 사람이 나타나면 볼 수 있는 눈을 가졌으면 좋겠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좋은 사람이라는 말은 내가 나를 평가하는 게 아니라 타인이 나를 평가해줘야 맞는 말인 거니깐. 스스로든 타인에게든 좋은 사람이 되는 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이상형을 묻는 말에 외적임을 먼저 묻고, 외적임이 상당한 기준이 되기도 하지만, 나의 내면에서는 그래도 '내면을 볼 수 있는 지혜와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나를 보니 결혼이든 연애든 여전히 어렵고 고단한 숙제들 같다.


아직은 먼 이야기 같기도 하고,


'너는 매력이 이렇게 많은데 왜 남자 친구가 없어?'라는 말은 귀에 딱지가 붙도록 들었다. '나의 매력은 왜 여자에게만 보이는 거야?'그런 말에 이렇게 응대하기도 하고, 어리광 부리듯 '나도 남자 친구 만들 거야!'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그러지 않을걸 알기에 주변에서 웃어 보인다.

'내 매력을 잘 아는 너희들이 내 매력을 찾아봐.' '나한테 끼 부리는 것 좀 알려줘.' 하며 요구하지만 실제로 마음은 그러지 못할걸 안다. 

'너 오글거리는 거 잘 못하지?'라고 갑작스럽게 나에게 질문이 툭 튀어나왔을 때 나는 되지도 않는 애교를 떨었지만 이내 마무리를 못하고 ' 으' 거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러다 보니 연애도 결혼도 내 삶도 무엇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는 나이만 늘어버린 20대 후반의 여자인 내가 보인다.

대체 20대 후반을 살면서 여자인 태가 나도록 살았던 내가 있었던가.

이제 와서 여자인 내 모습을 찾으려고 애쓰는 내가 너무 웃겼다.


누가 결혼을 한대.라고 집에 이야기를 하면 나오는 이야기는 '너는 언제 가냐'이다. 걱정. 나의 흘러가져 버리는 나이에 대한 걱정. 시간에 대한 걱정. 미래에 대한 걱정. 

이런 걱정들의 이유는 나이가 차면 여자는 가치가 떨어진다는 게 공공연하게 인정되고 있기 때문에 어른들은 더 크게 걱정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 딸이 혹여나 뒤처지는 게 아닌 건지. 맨날 밖으로 싸돌아 다니는 우리 딸은 왜 짝을 못 만나는 건지. 왜 꽃에 벌이나 나비들이 들러붙지 않은 건지. 네가 이상한 거니? 남들이 이상한 거니?


이 전쟁은 내가 결혼을 해도 끝이 날까? 아니. 끝없다.

근데 왜? 왜 걱정을 하는 거야? 궁금해서 그러는데 대체 왜?

여자는 상품도 아니고 여자가 나이 들어가는 게 꽃중년 미중년을 뜻하는 중년미 넘치는 남자가 나이 들어가는 것과 똑같다고 생각해주면 될 텐데 왜 여자의 젊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덜해진다고 여겨질까. 20대 후반이 되니 들려져 오는 소리와 그 나이 때의 기준에 내가 기준이 되어 도마 위에 올려지니 내 생각과 맞지 않는 주변의 기준에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게다가 나는 그대로인데, 아무 생각 없는데 주변에서 오지랖과, 조급해함을 보여 내 앞길을 걱정하는 건 한국 사회의 당연한 모습이지만 이 당연한 말을 부정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마음이 커져버린다.


분명 발전하는 IT 강국. 나날이 느는 경제성장. 올림픽 개최국까지. 점차적으로 우리나라는 영역을 넓혀가는데, 근데 왜 우리의 생각은 머물러 있나 


한 번은 주변에서 '결혼은 어떡하니?'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나에게 엄청나게 시선이 집중되어버렸다. 그 시기 나는 내 힘으로 될 수 없는 온갖 결혼에 대한 시달림으로 순간 울컥한 감정이 올라왔다. '주변에서 쓸데없이 앞서가는 결혼 걱정에 아무 남자나 만나서 아무렇게나 살아버려 질 거 같아요'했다. 응... 요즘 말로 스트레스 오지게 박습니다. 였다. 정말 내가 말한 답변처럼 주변에서 밀리고 밀려서 결혼을 아무나 와해야 할 거 같은 심정을 느꼈다. (왜 노처녀 히스테리가 나오는지...)

그렇게 말을 하고 나니 숙연해지면서 '왜 그런 생각을 해! 좋은 사람 만날 거야!'라며 응원은 해주지만 내 맘대로 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답을 해줄 수가 없는데 그런 답을 요구하는 이야기가 많아진다.


그러면서 입으로 나의 나이로 값어치를 매기는 어른들의 모습은 내가 누구누구 결혼한대.라는 말을 꺼낼 때마다 더 심화되는 것 같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결혼을 포기하고 아이를 포기하고 연애를 포기하고 몇 포세 대라는 말이 줄을 잇는데 사실 나는 포기 안 했다. 난 결혼이나 연애에 관해 아이를 육아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열린 마음으로 기회를 엿보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왜 자꾸 언론에서 나의 세대에 대해서 정의하고 결론 내리는 건데?!

(말은 만들면 현실이 된다고. 기레기들아)


예전에 그렇게 하고 싶던 결혼도 많이 낳고 싶던 아이도 언젠가 하겠나 싶은 연애도 뭐 그렇게 큰 의미가 있나 싶으면서 하면 하구 말면 말고 마음에 맞으면 하는 거고 그렇지 않으면 내버려 뒀으면 좋겠는 '나'다.


20대 후반이다. 게다가 여자.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면 내가 걱정할 것보다 주변에서 걱정을 많이 해주는 고마운 시간들이다.

이날이 올 줄은 생각도 못했다. 한 번도 20대 후반의 나를 생각해본 적이 없다. 현재를 열심히 살다 보니 여기까지 흘러져 왔는데 막상 와보니 나쁘지 않다. 여전히 철딱서니 없고, 여전히 어리숙하고, 여전히 천방지축에, 여전히 고집불통에

그러나 조금은 넓어진 사회적인 시각. 마음. 어찌 됐건 지난날의 나보다는 조금 쪼금 찔끔 더 나아진 나인건 분명하다. 열심히도 살고 있고. 분발하려고 노력도 하고 있고.

20대 후반의 여자라는 무게는 여전히 무거운 거 같다. (누구든 다 무겁겠지만)

나는 왜 여자는 시간이 흐르면 걱정이 대상이야?라고 외치고 억울함을 이야기하고 주장하지만 내 내면에서도 '지각이야. 늦었어. 일반적이지 못해. 뒤쳐졌어'를 외쳐댄다.

속으로는 걱정을 쪼금 하고 있는 중이다. 왜냐면 나 조차도 20대 후반에 결혼해서 살고 있을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생각하며 살아왔으니깐. 앞서 살고 있는 부모님의 삶을 보고, 주변의 삶을 보니 일반적인 삶이구나.라고 인식하며 살았으니깐. 생각해보면 결혼한 친구들보다 결혼 안 한 친구들이 더 많은데. 왜 결혼한 친구들의 기준에 나를 또 맞추고 살아야 하니?라고 또 다른 내가 물어온다.

삶의 기준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거 같다. 엄마세대 때나 유행했던 복고풍 청바지가 지금도 유행하고, 예전에는 하찮게 여겼던 네일 관리가 요즘은 성행하고, 우리가 얼마나 끊임없이 변덕을 떨어대는 변화되는 삶의 기준에 맞춰 살려고 사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7080 세대가 저물어가고 90년대생의 시절이 다가온다. 시대의 눈도 바뀌어 간다. 그렇지만 변하지 않는 생각들도 많다. 시간이 많이 흐른 뒤 변할 생각들도 많고.

지금은 맞지만 언제 또 바뀔지 모르는 생각들이다. 나는 페미니즘을 옹호하진 않지만 가끔 여자를 보는 관점에 대해서 우리 사회가 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사회가 점점 다양한 생각을 받아들이기 시작하고 있다. 다양한 시점에서 다양한 의견을 공유하며 좋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려고 노력을 한다. 난 그런 점은 굉장히 좋은 취지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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