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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리바 Jul 30. 2019

나의 최종 목적지는 경단녀일까

생각을 끊임없이 항변하라.

난 회사가 좋다. 어쩌면 일하는 내가 좋다.

예전에는 돈이 없어도, 안정적이지 않아도 도전하고 남들과는 다른 삶이 좋아 보였고, 동경했다. 그러나 최근의 나는 안정적이면서 적당하게 워라밸의 삶을 즐길 수 있는 지금의 시간들이 좋다. 여행을 좋아하고 쫓아다녔지만 여행이 주는 환상은 환상일 뿐이었다. 지금의 시간들이 더 좋다는 건 아마 현실감각이 더 크게 작용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회사를 다니면서 부정적인 영향보다 긍정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긴 사실이다. 

회사가 질적으로나, 일적으로나 나쁜 것도 아니고, 나의 삶과 조율하면서 일을 한다는 것은 나에게 행운 같은 일이다.





우연찮게 지금의 회사와 맞닿았다. 그 맞닿은 과정은 우여곡절이 참 많았다. 첫 회사가 너무나 최악이었던 지라 지금의 회사에 입사할 때는 어느 정도 조직이 구성되어 있었고, 안정적이라는 생각에 수락했다. 그 당시 입사할 때는 부족하다고 생각을 못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회사는 그 시기에 조직적이면서 많이 미흡했고, 절차와 규칙이 세워지지 않았었다. 그래서 내가 겪었던 회사는 불편하지만 편한 이미지로 다가왔다. 

작지만 내부 규모가 큰 회사였다. 그런 회사에서 나 홀로 부서이동을 3번이나 했다. 회사의 그 누구보다 짧은 기간 많은 횟수로 나는 정처 없이 떠돌았다.

남들은 '너는 우리 회사의 중추적인 일을 복합적으로 다 할 수 있는 유일한 직원이야'라고 이야기 하지만, 웬일인지 소속감이 없어지는 우울감은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어디든 누구의 땜빵으로 내가 옮겨갈 수 있다는 위치에 있다 보니 책임감은 없어지고 되리어 회사생활의 회의감과 서글픈 마음이 올라오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간단하게 받아들이면 되는데, 그때는 간단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렇게 회사를 4년 정도 다니다 보니 내 밑으로 사람이 들어오고, 회사에서도 어느 정도의 연차가 쌓이기 시작했다. 최근에 회사의 언니가 퇴사한다고 나에게 알려왔다. 상황을 다 알기에 짠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고 마음이 섭섭했다.

언니의 퇴사로 인해 이력서를 받아보라고 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지원했다. 이력서를 하나하나 보다 보니 나보다 알차게 살아왔고, 열심히 사신 분들 같았다. 자격증도 많았고, 경력도 많았고- 덕분에 현재에 머무르지 않고 공부를 해야 한다는 자극만 잔뜩 받았다.


처음에 회사에서의 직원에 대한 요구는 자차 보유하는 여직원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근데 점점 시간이 갈수록 요구가 많아졌다.


1. 자차 보유

이건 어느 정도 유류비를 요구하면 될 부분이니 합당하게 사유가 될 수 있지만, 아래의 두 사항은 이해 불가다.

2. 20-30대 초반 여성

3. 미혼여성


단순한 경리 업무임에도 어째서 젊고, 미혼인 여성이어야 하는 걸까?

현재 사무실에서 퇴사를 한다고 했던 언니는 나이 40이 훌쩍 넘는다. 그녀도 웬만한 컴퓨터 업무는 다 잘한다. 이력서를 보는데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기본적으로 엑셀이나 문서작업에 관한 자격증 보유자들이 수두룩 빽빽이었다. 그러나 나이와, 결혼의 유무에 탈락하는 여성들이 대다수였다. 


나는 이번에 이력서와 회사 부서의 사람들의 태도에 어이가 없어서 분노감이 올라왔다.

결재 올리데 과장에게 '단순 경리직인데 굳이 미혼여성이라뇨? 말이 되나요?'라고 물었는데, '애가 아프면..'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아니 애가 매일 아픈가요?'라는 나의 반박에 과장은 뒷 말을 잇지 않았다. 어쩔 수 없다는 제스처와 표정으로만 말할 뿐이었다. '제가 이해가지 않는 건 20-30대 초반의 여성이에요' 그러나 과장은 자기한테 이야기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자기도 사람을 뽑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이 들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맞다. 우리는 조직의 뜻을 거스를 수 없는 실무원들이었다.

불가항력이었다. 말할 수도 없고, 말하기도 껄끄럽고, 말하고도 책임을 감당하고 싶지 않은.


까놓고 말하면 굳이 왜 젊고 미혼여성이 필요한 거야? 

나는 내 경험을 살려서 답변하자면, 늙은이들이 젊은 여자들이 다루기 쉽고 편하니깐. 사회 경험이 적은 여자들은 나이 많은 남자들의 권위에 쉽사리 '수긍'하는 입장이다. 그런 이유로 어린 미혼의 여성을 뽑으라고 하는 거 같은 게 보이니깐 난 속에서 부하가 치밀었다.

나의 사회 초년 시절엔 어땠나. 난 수긍하기 바빴다. 젊음이 나이 많은 어른들에게 소모품이 된다고 무슨 이유에서 인지 그렇게 생각되어 질까? 사회성 없는 젊은이들은 뭣도 모르고 지위와 나이에 눌려 '네'하기 바쁘다. 나 역시 첫 직장에서 '약 좀 사 와' 하는 말에 '네', '밥 좀 주문해줘' 하는 말에 '네' 했으니까.

나 같이 자기주장 강하고 성격대로 사는 사람도 솔직히 첫 직장에서 쓴 맛을 보고 때려치우고 나왔기에 그런 마음들이 투영되었다. 이력서를 결재올리때마다 나는 분노와 화를 내고 있었다. 나이와 결혼 유무를 떠나 회사에 적합한 사람이면 결재를 올렸는데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어쨌든 이 모습이 훗날 나의 모습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력서를 보면 취업전선에서 다들 최선을 다하며 자격을 쌓고 있다. 그런데 회사는 그런 사람들의 채용을 원하지 않는다. 단면적인 모습만 보고 내가 너무 좁게 생각한다고 하더래도 나는 이번 일을 통해 '결국 자기 사업이 살길이구나'라는 결론을 지었다.


어쩌면 피해의식일 수도 있다. 나는 부당함에 정신과 마음을 스트레스받아하며 처음을 시작했으니깐.

세상은 다양하고, 우물 안 개구리인 내가 모르는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누군가도 많을 것이다. 세상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생각들로 가득 차 있고, 그런 이해할 수 없는 부당함과 부조리한 생각들을 바라보며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하는 다짐들이 한가득 새겨진다. 내가 더 어른이 된다면 모두를 만족시킬 순 없지만 좋은 방향의 조직을 만들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이런 나의 다짐에 '난 달라. 난 내가 피해를 받은 만큼 돌려줄 거야'라고 다짐하는 이들도 있다. 이렇든 저렇든 그 생각에 나는 '잘못'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다양한 세상에서 다양한 의견들이 좋은 방향으로 흐름을 튼다는 것이 중요하니깐. 그러나 최종적으로 난 세상이 조금 따뜻해지고 함께라는 시각을 가졌으면 좋겠다.

본인들이 언제까지 채용을 책임지는 위치일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진 것들이 언제까지나 내가 가진 것들이 아니기에 우리는 겸손하고 이타적이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입 밖으로 용기 있게 꺼내 질문하지 못할 질문들만 가득한 채 최종적으로 채용을 마무리했다.

결국 나도 회사는 좋지만, 여자로서 포기할 수 없는 결혼과 육아 그리고 그 이후의 육아휴직과 복직은 기대하지 못할 거 같다. 그렇게 나는 경단녀가 되겠지. '네'를 잘할 줄 아는 젊은이들에 밀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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