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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리바 Nov 26. 2019

29살의 마무리는 기도

시작도 끝도 고민이지만 삶은 답 없는 물음이 가득하기에.

29살이 되었다. 하루하루는 느린데, 한 달, 분기, 계절은 빠르다.

점심시간, 오후 시간, 퇴근시간 즈음 이렇게 느리다. 싶으면서 아침에 눈을 떠서 오늘 몇 월이구나 하면 시간이 빠름을 느낀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나를 보고 '역시나 너도 나이가 되니깐 센치해진다.' '아홉수다'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저녁을 보낸 뒤 뒤늦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29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지금의 나. 그 날은 그런 나 자신과 현재의 우리에 대해 이야길 했다.

그랬다. 30을 목전에 앞두고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은 내 삶을 보면서 이게 맞아? 내가 원했던 것들이 맞아?라는 의심을 하고 괴로워했다. 걱정을 하고 불안해했다.


나뿐만이 아니라 다들 그렇겠지만, 나는 그중에 조금 더 표현이 솔직한 부류였다.

조바심도 났고, 표현한 것보다 내 속에서는 불안감이 많았다. 그리고 계속해서 앓고 있었다.

다들 그래.라는 말이 위안이 되지 않았다. 난 어떻게 하지? 난 어떻게 해야 하지? 앞으론 어쩌지?

방법은 없는데 계속해서 없는 방법에 나를 헤매고 있어서 짜증은 났지만 그래도 이야기를 하면서 주변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간의 감정들을 조금은 털어버리는 기분이 들었다.


29살은 나에게 29살의 지점에 대한 고민을 많이 묻는 시간이었다.

아득했던 이 나이에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무엇을 하고 있을 줄은 알았지만 생각보다 더뎌서 계속해서 물으며 답을 찾고자 했다.

안정적인 직장을 가졌지만, 직장에서 머물러 있을 것이냐. 아니면 더 치열하게 살아야 할 것인가 (그렇다고 퇴사는 아직...) 머물러서 안정적임만을 바라보는 나 자신이 조금 지겹기도 하고.

그러나 세상은 지겹게 살아지는 것이 정답이랬다. 내가 지금 복에 겨우니깐 자꾸 딴생각에 빠지는...

그래서 내 나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나의 미래는 대체 뭐가 될까? 돈을 많이 벌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정작 방법을 모르겠어서 너무 분하다. 내가 머리가 좋거나 기술이 있거나 포부가 있거나 용기가 있거나 없는 것들을 자꾸 찾아서 머릿속으로 고민만 해댄다.


20대 초반에 나는 별이라는 소망의 이야기들을 들었다. 세상으로 뿌려질 반짝 빛나는 별. 그때는 어렸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줄 알았고 사회를 잘 몰랐기에 마냥 '난 별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에 별이라는 소망을 품고 살았는데 부딪혀오는 현실은 별 볼일이 없었다.

나는 별이라고 했는데 정말 별일까?라는 의심만 가득한 채 살아가고 있다. 그 당시에는 지금보다 몇 배나 더 밝고 긍정적인 나였는데 이제와서는 그런 마음들이 어딘가 퇴색되어 버렸다.

그 와중에 그럼에도 나는 잘 가고 있는 걸까?라는 궁금함과 내가 가진 마인드가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걸까? 내가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 사람일까? 하는 고민들. 무얼 해야 할지 모른 채 그냥 고민만 무성한 사람이 돼간다.




이런저런 일들로 최근에 마음이 답답해졌다. 그 와중에 이스라엘을 갔다 와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고, 내 마음을 발견했던 시간이었다. 이스라엘을 갔다 온 후 나는 이스라엘에 다녀온 이야기들을 교회에 이야기 했다. 내가 발견하지 못했던 지난 시간의 내 모습을 마주하고 왔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 이후에 목사님은 나에게 할 말이 있으신지 몇 번이나 나를 언급하셨다. 목사님은 그런 나의 이야기를 듣더니 '너 그거 깨달은 거 아냐'라며 말하셨다. 맞았다. 사실 나는 나 자신을 정확하게 바라봤다고 여겼는데 내 마음을 어떻게 앞으로 이끌림을 받아야 할지에 대해서는 인도받기 싫었다. 그래서 피해 다녔고.


주변에서 몇 번이나 나의 이름이 단상 위에서 나오니깐 슬슬 찌르기 시작했다. '교제하러 나가봐.'라고.

솔직히 목사님 조금 왕왕 대시는 성격이신데. 그래서 나는 내가 원하는 길을 인도해 주지 않으실까 봐 두려운 마음에 피했던 거였고. 그러나 아직 마음에서 구체적이지 않은 고민과 감정들로 침울해져 있었던 시간이었으니깐 일단 목사님 앞에 마주했는데 목사님은 '기도해'라고 말해주셨다.

사실 기도 하라는 그 말이 조금은 마음에서 찔렸던 게, 나는 기도하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다. 기도 하고 자 하면 귀찮고, 그저 '내 마음 다 아시죠?' 하며 '아멘'하고 마무리하는 나였는데 목사님이 기도하라는 그 말에 '어떤 기도'를 생각하지 않고 그냥 구체적인 기도를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4년 전에 엄청 간절하게 구체적으로 기도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생각해보니 그때 했던 기도들이 다 이뤄졌다. 그리고 나의 삶 속에서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이뤄지기도 했고.

그 와중에 들은 '기도해'라는 말에 나는 또 인도함을 받고자 기도를 한다. 지금은 그렇다. 난 또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어디로 흘러가야 할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여전히 막막한 지금의 나이지만, 내 모호한 감정과 기분에 생각을 따라가지 않고 그 기분의 시작점을 구체화하여 직시하려 한다.

뭘 해야 하지? 여전히 여전히 고민만 무성하고 답도 없는 물음에 속 시원하게 대답하고 싶지만 그저 구체적으로 기도하며 기다리는 시간을 갖고 싶다.


그렇게 29살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그리고 물음에 대한 답은 찾을 수 없는 인생임을 인정하고 살아가라고 말하고 싶다. 우울함에 삶을 놓치지 말고 우리가 존재해야할 분명한 이유들이 있고 살아가면서 함께할 많은 이야기들이 있으니 스스로 삶을 놓치지 않는 '나'이길 '너'이길 바래본다. 잠시 잠깐의 마음에 혼란이 들어와도 우리는 우리의 길을 분명하게 가야한다. 그건 너를 위해서가 아니라 문득 생각나서 '뭐해?'라며 툭 하고 연락하고 싶은 나를 위한 욕심과 바램 이다. R.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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