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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리바 Dec 03. 2019

미니멀 라이프

멀고도 험한 길

※이 글을 통해서 최근의 소비습관이 망쳐진 나를 되돌아보려 한다.


나는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고 싶었다. 실천하고도 있었고.

지난 몇 개월은 생각보다 많이 쇼핑을 즐기지 않았던 시간들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끓어오르는 결제력에 뒤늦게 잔고를 보고 현타가 온 최근이었다. 

미니멀 라이프의 결심은 쉽다. 다이어트와 마찬가지로 매해 미니멀 라이프를 시작한다고 결심해댄다.

그러나 내가 결심을 하고 난 뒤 세상이 나를 가만 놔두질 않는다. 세상에는 내가 충분하게 가지고 있음에도 소유해야 할 물건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정말 대단한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 내가 살고 있다니.


매년 유행은 달라지고 매년 유행은 진행된다.

작년에 안성맞춤이었던 물건들은 올해에 웬걸 낡아 보이고 촌스러워 보인다.

그래서일까 충분해서 넘쳐나기 까지 한 옷으로도 모자라 화장품, 그것도 모자라 먹고 마시고 즐길거리 가득 내 인생은 '충분'하게 차 있음에도 계속해서 구매를 진행한다.

버리진 않고 무조건 사고 보는 습관은 언제부터 나에게 생긴 걸까?

'언젠가 사용될 아이'라며 구석에 처박아두는 물건들.

세일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사이트를 들어가서 (지금 사용하진 않을 거지만) 뭐라도 건지려는 욕심들.

있음에도 또 구매하는 구매욕.

그러면서 통장 잔고는 바닥이고, 장롱은 만석을 외쳐대고 있다.


소비 바이오리듬이 들쑥날쑥 한데, 근래에는 소비욕은 다시 생기기 시작했다. 

여름에는 생각만큼 산 물건들이 없다. 그러다가 날씨가 추워지니 하체에 찬 바람이 너무 직접적으로 느껴져서 바지 몇 벌 산다는 것이 카테고리의 여러 가지 테마들을 둘러보다가 아우터까지 넘보게 되었고, 신발이며 액세서리며 그러면서 여기저기서 시즌 오프라며 터지는 세일 기간까지 갑자기 눈에 들어오면서 의도하지 않았던 결제를 하기 시작했다.


예전의 나는 '이성적인 판단'으로 일단 장바구니에 묶어두거나, 찜을 해둬서 추후에 확인하는 버릇이 있었는데, 이번은 제어할 수 없이 '찜'도 안 하고 장바구니 들어가 있는 목록들을 결제를 동시에 진행해 버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돈 쓰는 맛을 즐겼다. 역시 돈은 쓰면 즐겁지만 그 이후 잔고 바닥으로 약간의 그지가 되어버렸다.


역시 이렇게 정신줄 놓고 있을 때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봐야 함을 깨닫게 된다.

옷 많잖아. 아침에 무슨 옷을 입을지 고민을 한다는 거 자체가 옷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옷이 많다는 의미야! 너 화장품도 많잖아!? 어떤 눈썹 색이며 어떤 섀도며 어떤 립스틱이며 넘쳐나는 화장품. 어떻게 조합을 할 껀지 매번 거울 앞에서 고민하는 그거. 그게 많다는 거야. 화장품이 아주 많이 넘쳐난다는 거지! 신발도 신는 것만 신고 안 신는 건 쳐다도 안 보는데 왜 자꾸 신발을 살 생각만 하는 거야?? 게다가 요즘 가장 관심을 들이는 건 다이어트 식품!!!! 이제 하다 하다 다이어트 식품까지 넘보는 나는 주체할 수 없는 구매력 때문에 잠시 정신줄 놓고 있었던 11월의 시간들이었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면 장비빨이라는 생각에 이거 저거 알아보고 마음에 드는 걸로 냅다 구입했는데 뒤늦은 정신 차림으로 인한 후회는 말로 이룰 수 없다.


정말로 나는 물건이 많다.

가끔 방에 들어가면 나도 그 많은 물건들 중 하나인 기분이 든다.

엄청 많은 물건들은 사용되려고 얼마나 많이 대기하고 있을까.


나는 물건을 살 때 최대한 클래식하고 단조로운 것들을 사려고 노력한다. 아무리 유행은 돌고 도는 거라지만 유행 따라 옷장을 채운다면 뱁새가 황새 따라가는 격이 되는 꼴이라 기본 템들을 채워 넣어 보려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기본 템들이 너무 많아진다. 오버핏도 하나 있어야 하고 정식 핏도 하나 있어야 하고. 각진 것도 하나 있어야 하고 모양이 잡혀 있지 않은 것도 하나 긴 것도 하나 짧은 것도 하나 중간 것도 하나. 주황색도 하나 코랄색도 하나 코랄 레드도 하나 레드도 하나.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시대가 조금은 변해서 꼭 유행인 것만을 추구하지 않고 각자의 개성을 존중한다는 사회분위기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매체에서 보이는 패션이나 뷰티에 시각적인 판단이 마취가 되어 내 옷장의 기준들이 변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나는 근래에 웹사이트를 접속해서 보이는 우측 하단에 놓인 쇼핑몰 광고들을 최대한 클릭 안 하려고 노력하고. 각종 블로그나 동영상으로 이야기하는 유행템들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보지 않으려 노력한다.

한번 보기 시작하면 이것도 사야 하고 저것도 사야 하고. 사야 할 것들 투성인데 안 보기 시작하면 옷장 속에서 언제 사놓고 묵혀두기만 했던 잇템들을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이 되곤 한다.


새로운 것은 늘 짜릿하지만, 새로운 것들만을 위한 소비습관은 내 삶이 가벼워진다.

클래식, 단조로움이 지루함을 뜻하는 듯 하지만 결국 그 단조로움이 나를 다른 방향으로 눈을 돌릴 수 있게 도움을 주기도 한다. 우리의 삶은 나날이 풍족해지고 우리는 필요 이상으로 많은 물건들에 둘러 싸여 있다.

그 많은 물건들에 집중하고 소비하라고 말하고 싶다. 엄마의 30년 이상된 바지가 최근의 유행이 된다. 30년 전 사진 속 아빠는 지금 봐도 나무랄 데 없이 패션감각이 좋다.


지금 보이는 시즌오프며 신상들을 잠시 뒤로한 채 옷장이든 신발장이든 화장대든 아직 멀쩡하게 나를 기다리는 오래된(오래되지 않은) 물건들을 꺼내서 집중해야 할 때다. 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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