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이제 어리지 않은 축에 속한 나의 아쉬움이랄까. 모두와 맞먹고 싶진 않지만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다. 언제까지나 젊은 감각과 젊은 생각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싶은 욕심이 든달까...?
나이가 드는 건 싫지만, 가끔은 나이보다 조금 더 성숙하고 깊은 생각을 갖고 싶을 때가 있다. 게다가 젊은 사람들과 가끔은 어울리거나 즐기고 싶기도 하고.
벌써라는 말이 나에게 익숙해진다. 같이 모임을 했던 언니들은 '네가 벌써?'라며 영영 파릇한 막내일 거 같은 나에게 되묻곤 한다.
앳된 첫인상의 내가. 영영 막내일 것만 같은 내가 어느덧 3을 앞두고 있으니 놀랄 법도. 그러면서 그렇게 성장해버린 만큼 언니들의 시간도 흘렀다는 걸 실감이라도 한 듯 약간은 측은해지기도 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가끔은 꼰대 같은 성향을 지닌 사람들을 만나면 나이가 무기로 다가오는 순간들에 당혹스럽다. 내 주변에 그런 쿰쿰한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 별로 없기에 늙은 내가 나는 그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면 일반적이지 않다며 속으로 불만을 이야기하다가 겉으로는 더 이상 싸우기 싫어 말을 하지 않는다. 나이가 무기가 될 때면 빠져나갈 수 없는 논리를 가진 나는 질 수밖에 없다.
그 나이가 뭐라고.
빠른년생들이랑 빠른을 두고 논할 때 나는 빠른을 인정할 수 없다고 말을 한다.
지금은 빠른이 없어졌다 하더래도 우리 때는 국가에서 빠른을 인정했다. 그러나 엄연하게 1과 2는 다르다.
필리핀에서 교환학생을 할 때 우리는 웃기게도 함께 메이트로 떠났던 이들은 4학년이었다. 학년은 같아도 학번은 달랐던 우리였다. 사전교육을 다 받고 처음 공항에서 얼굴을 마주했다. 나는 그 나이에 비해 해외 경험이 많았었는데 나머지들은 많지 않았었다. 그래서 공항에 흥미가 생긴 아이들에게 게이트 몇 번으로 몇 시까지 와라.라고 이야기 한 뒤 나는 나대로 면세점을 둘러봤다.
그렇게 서로 헤어져서 둘러볼 때쯤 방송에서 우리 일행 중 한 명의 이름이 흘러나와 빨리 게이트로 향했다. 좌석이 업그레이드가 되었다는 기쁜 소식이었다. 그렇게 좋은 시작과 동시에 필리핀에 떨어졌다. 필리핀에서 생활하는 동안 나는 여유를 갖고자 하는 마음으로 다녔다. 되게 가벼운 마음으로 가볍게 생활을 했다.
그때는 생각보다 물욕은 없었는데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경험 욕은 많았다.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어느 날부턴가 나와는 동갑인 친구가 동생이랑 반말을 해대며 대화하면서 나는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알고 봤더니 빠른 년생.
그 이야기를 듣고 머릿속에서 족보가 꼬이기 시작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 동생이 나에게 '언니는 언니 같아서 언니라고 부를게.'라며 나에게만은 빠른을 쳐주지 않겠다는 거였다. 거기 있던 동갑친구도 '그래 나한테는 야라고 하고 얘한테는 언니라 해.'라며 쿨하게 넘겼다.
한 번은 술자리에서 빠른에 대한 논쟁이 흘러나왔다. 빠른과 빠른이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세네 살쯤은 친구가 될 수 있는 논리가 생겼다.
술자리에서 말하는 허무맹랑한 논리에 우리 모두가 전염되듯이 야, 야, 거리며 웃고 떠들었다.
그 시간만큼은 나이라는 것에 연연하지 않고 허심탄회하게 웃으면서 즐길 수 있었다.
물론 술의 힘을 빌려서 일 수도 있지만, 가끔은 나의 선을 넘을 듯 말듯한 말듯한 수위를 다시 생각해보자면 통하는 게 있으면 나이는 무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나이를 떠나서 나이가 가지는 쓸데없는 배경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몇 차를 달리는 모임에서 1차에서 나이 불문 다 함께 모여서 시간을 보냈다면, 2차는 '나이 많은 사람 보내고 가자.'라는 방향으로 의견이 나온다.
물론 회식에서 꼰대들의 설교를 듣기 버겁고, 과거의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나 술자리 푸념이나 되풀이되는 말들은 듣기가 힘들지만, 어쩐지 '나이 많은 사람 보내고 가자'라는 말은 나에게 서글프게 들리기도 했다.
물론 그 말에 예의 차리겠다고 반문한 적은 없지만..
내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일까, 나이에 대해서 더 이상 연연해하고 싶지 않다. 지금 나와 지내는 모두가 나의 성향에 따라서 굉장히 철없게 만나는 시간을 보내는 걸 보면서 언니 오빠 동생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싶은 생각에 두서없이 작성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