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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리바 Jul 09. 2019

앓는 마음

언제 언제 까지나 진실한 마음으로. 언제 언제 까지나 그날을 위해 ! 

특별한 장소에서 만나 여전히 이어져온 오래된 친구들이 있다. 그 오래된 친구들과 예전 추억을 공유하며 여기까지 유지하게 되는 모임이 있다.

사람 인연이라는 게 가끔은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매번 만날 때마다 유쾌하고 끝이 없는 즐거운 이야기를 함께 나눈다는 건 너무나 신기하다.

처음에는 여자들끼리 소소하게 부산에서 1박 2일을 모이며 어디를 가는 목적이 아니라 그냥 집에서, 이불속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고, 음식을 시켜먹는 시간이었다.

함께 티브이를 보며 마치 거기서 사는 사람인 것처럼 동네를 누비고, 방바닥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은 채 저녁시간을 함께 보냈다. 공감하고 공유하고 그렇게 사소하게 마치 그래 왔던 것처럼 일상을 나누는 우리만의 시간들이었다. 사람이 목적인 시간이었다.

부산에서 자주 모였어도 우리끼리 바다를 나간다든가. 부산의 유명한 장소를 간 적은 딱히 없었다. 그런 곳이라면 멀리서부터 모여 온 우리가 아니더래도 언제나 다른 사람과 함께 할 수 있었으니까.

게다가, 우리는 부산이 아니라 더 크고 특별하고 상상도 할 수 없는 장소에서부터 좌우 충돌한 인연이 시작되어 더 이상 어디를 가서 놀 생각보다는 한 끼 맛있게 먹고 밤을 새워가며 이야기를 들려주고, 들어주고, 늘어지게 늦잠을 잔 다음, 다음날 카페에서 또 수다를 떨며 마무리하는 식의 모임이었다.


어딘가를 놀러 가지 않아도 잠시 잠깐의 만남으로 밤새 이야기 꽃을 피우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우리에게 너무나 즐겁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처음 우리가 어딘가를 갔던 건 대구였던 거 같다. 여자들끼리 소소하게 모여서 대구에서 김광석 거리를 걸었고, 강정보에서의 시간들을 보내고, 다음날 동물원 구경까지 하며 1박 2일을 알차게 보냈다. 물론 새벽시간에는 여자들끼리의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으니까.


그 사이 언니들이 결혼을 했다. 아이도 생겼다. 철들지 않을 것 같던 우리가. 여전히 그대로인 것 같은 언니가 여자로서의 인생을 하나씩 채워간다는 걸 옆에서 지켜본다는 건 무척이나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우리는 일 년에 한두 번씩은 모여서 서로 얼굴을 마주하며 모임을 유지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대구에서 모이다가 어느 날부터인가 남자들도 함께 동참하게 되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어떻게 시작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는데 어느 날부터 오빠들이 함께하면서 10년을 알아가는 우리의 모임의 인원이 조금 더 풍성해졌다. 


오빠들이 뭉쳐지니깐 우리는 산이며, 강이며 놀러 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어렵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어려운 사람들도 있어서 입은 웃고 떠들고 즐겁게 시간을 보냈지만, 항상 마음 한편에는 나의 행동에 대해서 되돌아보고 조심스럽게 행동해야겠다는 생각들로 가득 찼다.


언제부터였을까. 어색하지 않은 그 시점이.

이번에도 속전속결로 잠시 만남을 가졌다. 장소는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가 모일 수 있는 어떤 곳이든 상관없었다. 인원이 많다 보니깐 언제 어디서 다 함께 모인다는 것은 어려웠다. 그저 시간이 되는 사람들끼리 정해서 만나는 것이 중요했다.

안동으로 향했다. 이번 모임은 다른 때와는 다르게 잔잔하게 그렇지만 너무나 즐겁고 행복하게 1박 2일을 보냈다. 그 속에서 재밌는 에피소드도 많았고, 소소한 하루하루의 시간들이 나에게 휴식으로 다가왔다. 하루 종일 불만과 불평과 고민들을 생각할 시간도 없이 지났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일들을 앞두고 머피의 법칙이 항상 발생하는 것 같다. 가기 전날 일이 폭발하는 그 순간 사람까지 폭발했고, 그 상황을 수습하고 정리하고 분노하느라 반나절을 다 보내버린 거 같았다. 분노하는 감정을 표출할 수 없어 눈물과 주먹을 꽉 쥐며 감정조절을 했던 시간이었다. 게다가 주말 출근을 잠깐 해야 했어야 할 상황이었고, 꼬여버린 일과 사람 때문에 마음이 나락으로 떨어진 시간이었다. 퇴근을 하니 온 몸에 힘이 빠졌다. 일이 싫기보다 사람이 싫어지는 하루하루였다. 나만 이렇게 전쟁같이 하루를 마무리하고 떠나는 건가. 다들 잘 살고 있는 걸까 싶은 하루였다. 다행히 주말 출근은 과장님이 도움을 주셨고, 나는 11시에 출발할 수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탈출하듯!


안동에 도착해서 빵을 사 먹고, 부용대를 올랐고, 하회마을을 헤매며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마트를 갔고, 숙소를 가서 저녁을 먹고, 월영교를 가다가 차가 빠졌고, 그럼에도 월영교를 향해 야경을 보았고, 저녁에 돌아와 설거지 내기를 했고, 노래를 부르고, 게임을 했더니 새벽 2시 30분이 되어서야 다들 자자는 소리가 나왔다.

아쉬운 마음에 잠을 못 자고 있었다. 

그러면서 하루를 생각했다. 어쩐 일인지 하루 종일 마음에서 행복이 가득하게 튀어져 나왔다. 날씨가 너무 뜨거워서, 길을 헤매어서, 부용대를 오르면서, 가는 길이 멀어서, 시간이 맞지 않아서, 차가 빠져서, 내기에 걸려서 어찌 됐건 짜증을 내고 불평이 튀어나올 시간이 많았음에도 어쩐지 '너무 행복해!' 하는 생각뿐이었다.


함께 있는 이 시간들이 나에게 휴식이었고 힐링이었단 걸 집에 도착해서야 제대로 알게 되었다. 늘 주말이 순삭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번만큼 주말이 순삭 된 건- 주말이 너무나 아쉽고 서운한 적은 없었다.

노래를 부르고 체감상으로 12시 30분이라고 생각했던 시간이 1시 30분을 지나고 있었을 때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시간이 다 어디로 가버린 거냐고. 말도 안 된다고. 


집에 와서 못 잔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마음이 너무 공허하고 애절해져서 힘들었다. 나만 봐도 금요일까지 치열했던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멤버들을 만나 웃어 보이는데 나 스스로도 애잔했지만, 다들 왜 그토록 애잔하게 느껴졌을까. 다 나만큼 고민하고 치열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모인 거겠지? 만나서 이렇게 행복하고 즐거운데 다들 밑바닥엔 각자의 고민스러움들이 있겠지. 이렇게 우리가 만나서 그 시간만큼 마취총 맞은 채 힘들었던걸 잊고 행복함만 남긴 채 헤어지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다들 행복하고 건강하게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만났을 때도 행복하게 웃으며 만났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집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공허함에 조금 힘들었던 하루였다. 헤어질 때면 이렇게 애절한 마음이 밀려오는 건 무슨 이유였을까. 주말과 평일의 격차가 너무 컸던 이유 때문이었을까. 잠시 잠깐의 만남으로 우리의 전부를 달래지 못한 아쉬움이었을까. 함께 흘러간다는 안도감에 대한 그리움이었을까.

수많은 이별을 반복해오며 헤어짐을 꿋꿋하게 이겼던 이전과는 다르게 이번에 모였던 모임은 헤어진 후 큰 잔향을 남긴다. 며칠간을 앓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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