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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리바 Aug 20. 2019

우리는 모두 섬이다.

지금 외로우신가요?

외로움이 얼굴에 가득한 사람들이 있다. 오지랖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외로움이 보이는 사람들을 가아끔 생각하고 애써 걱정해주는 편이다.



1.

타지 생활을 하는 그는 퇴근 이후 스크린 골프와 화기애애한 회식으로 그 외로움을 상당히 오랜 기간 달래 보았지만 결국 밀려오는 현실과 취중의 갭 차이가 더 서글프단 걸 알기에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했다.

외로움에 술을 마셨다고 했다. 그는 술을 마시며 취하는 그 잠시 동안의 시간은 흥에 겹고 즐겁지만, 그 시간을 벗어나면 밀려오는 현실 자각 타임에 최근에는 술을 마시지 않는 다고 했다. 결국 그가 찾은 돌파구는 운동이었다.


사실 그의 이야기를 직원들끼리 한 적이 있었다. 그의 이야기를 하면서 나온 단어는 '외로움'이었다. 지난 몇 년간 회사에서 폭발적인 성과를 내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진 못했고, 어떤 그룹이나 라인에 끼는 둥 마는 둥 하며 애매하게 포지션을 유지하고 있던 그였다.

한 번은 그를 포함한 몇몇 직원들과 작게나마 회식을 했다. 우리는 잠시 분위기에 취했는데 회식자리에서만 말할 수 있는 대범한 말을 그날 내가 그에게 했다. '그분이랑 사이 안 좋은 게 보이세요'라고.

그는 무척이나 당황했다.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걸 가린다고 가린 둘 사이는 우리에게는 가시밭에 있는 기분이 들곤 했으니깐. 그래서 언젠가 한 번은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티 내지 않지만 티가 나는 사이라고.

그날부터 그는 사이가 좋지 않은 상대방에게 엄청나게 상냥하게 웃으며 인사를 하곤 했다.

여기저기 옮겨 다녔지만 그의 입맛에 맞는 사람이 없어 보였다. 이번엔 A와 친한 듯 보였지만, 다음에 보니 B와 친하고. 우리끼리 그를 자주 이야기 하진 않았지만, 대번에 '그가 마음을 둘 곳이 없다'라며 나름대로 그의 행보를 안타까워했다.


회사에서 있는 기간 동안, 나는 술 한잔 걸치면 모든 게 쿨하게 해결될 남자들의 세계라고 여겼는데, 남자들의 세계는 여자들의 세계보다 더 복잡하다고 쫌스럽다는걸 새삼 알게 되었다.

그런 남자들의 복잡스러운 세계에서 그의 마음은 복잡하기만 한 듯 보였다. 그래서 그는 운동을 한다고 했다. 운동을 하기 전에는 싫지만, 하고 나선 뿌듯하고 보람되다고. 무언가를 이룬 기분이 든다고 했다.

나는 그의 운동을 응원했다.



2.

고모들이 집에 와있었다. 교회에서 늦게 돌아와서 씻고 좀 쉬려고 했는데 신발이 많이 있는 것을 보고 놀랬다. 몇십 년 만에 모인 이유는 할머니 때문이었다. 그 날 내가 또 당황한 건 오랜만에 만난 친가 식구들 때문이었다. 친척 언니와는 20년 만에 처음이었고, 고모들과는 15년 그 이상만에 처음이었기에 나는 당황했지만 웃어 보였다.

그러나 가족이라는 게, 같은 핏줄이라는 게 잠 묘한 게 관계를 어색하게 만들어 주지 않는다. 관계가 더 응집되지. 오랜만에 모인 친가 쪽이었다. 예전부터 느꼈던 거지만, 친가는 모이면 화기애애하기보다 으르렁대며 공격성이 강하다고만 생각했다. 어렸을 적엔 몰랐다. 왜 명절이 끝나고 돌아가는 차 안에서 엄마가 아빠를 그렇게 못살게 굴었는지. 하지만 커가면서 하나씩 엄마의 분노에 대해서 알아가게 되면서 할머니 집에서 빈 정상할 일이 생기면 나도 거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가 혼자 외롭게 있지 않게 한마디라도 거들고 처신해야겠다고.

근데 우리 집에 모두가 모여있었다. 내가 들어서자마자 다들 환영한다는 목소리로 나를 맞았다.

엄마를 서운하게 하는 말들이 튀어나오면 나는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고, 어떻게 그 말에 대해 희화하며 받아쳐낼지. 긴장이 서렸다. 그러나 이 날은 화기애애했다.

그 날 알게 된 건, 고모들의 어조는 강한 톤이었고, 받아들이는 사람도 오해를 살법했다. 고모들과 엄마의 성향은 달랐다.


고모들은 외로워 보였다. 막내 고모는 살이 많이 빠졌다. 나는 그런 막내 고모에게 '살 진짜 많이 빠지셨네요'라고 말을 건넸다. 고모는 운동을 시작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나는 최근에 살 빼면서 제일 듣기 좋은 말이 예뻐졌다야.' 나는 막내 고모의 말에 짧게 '아'했다.

어렸을 적부터 봐 온 막내 고모는 꾸미지 않은 시골 아가씨였다. 내가 기억하는 막내 고모는 재밌기도 하지만, 엄마에겐 퉁명스럽고 포장되지 않은 사람이었다. 게다가 막내 고모가 엄마를 많이 퉁명하게 대한 건 사실이다. 고모는 외적인 미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고모에게 '예뻐졌다'라는 말에 반응을 한다는 것이 나는 놀랬다.

예뻐져 가는 고모는 외모뿐만 아니라 이제는 여행도 다니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주말부부인 막내 고모는 주말에 만나는 시간에 여행을 다니며 서로 평소와는 다른 일상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모부는 전혀 다른 반응이었다.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고모의 표정은 여자로서 많이 실망하고 서운한 표정이었다. 그 표정에서 나는 '외로움'을 느꼈다. 오랜 시간 고모와 마주한 적이 없어서 고모의 삶이 어떤지 잘 모른다. 그러나 고모가 스스로를 가꾼다는 건 정말 많은 변화인 거 같다고 여겼다. 고모는 남은 인생을 자신의 시간들로 조금씩 채워나가고 있다. 난 그런 고모를 응원한다.



3.

작은 고모의 목소리는 밝고 명랑했다. 얼굴엔 웃음기가 가득했고 나를 제일 먼저 반겨준 것도 작은 고모였다. 작은 고모의 삶은 그녀의 목소리처럼 명랑하고 밝았다. 작은 고모의 둘째 딸, 나의 친척 언니도 이 날 왔다. 작은 고모에게는 세 딸 있다. 두 명의 언니는 나보다 나이가 많고, 한 명은 나보다 나이가 어리다. 만나자마자 우리의 관심사는 나였다. 나의 '나이' '남자 친구 유무' '결혼'. 미혼여성 두 명이 있는 이 자리에 결혼은 당연한 화두로 올랐다. 언니는 똑 부러지게 '이 자리에서 그런 이야기 하는 거 아니에요!' 하며 난처한 나의 답변에 명쾌하게 정리해주었다. 덕분에 조금 편안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고모는 최근에 차를 구입하였고, 그 구입한 차 때문에 자유롭게 이리저리 다닐 수 있다고. 그래서 막내 고모에게 차를 구입하는 것을 적극 추천하였다. 남편이 하지 않는다면 스스로가 해야 해! 라며 당찬 포부로 막내 고모에게 말했다. 우리는 그런 작은 고모의 이야기에 수긍했다. 남편이 여행을 같이 가주지 않는다면 고모라도 자유롭게 적극적으로 자유를 즐길 수 있도록 돌파하도록 응원했다.

작은 고모는 비록 동네 안에서만 운전하지만 이제는 누군가를 의지할 일 없이 스스로가 해결한다고 했다. 김장을 담으러 가기도, 딸을 데리러 가기도, 마트를 갈 때도.



4.

그 이모는 외로워 보였다. 그 이모의 삶이 외롭든 외롭지 않든 내 주관적인 시각으로 이모를 바라볼 뿐이었다. 이모는 교회에서 만난 사람이다. 나는 그 이모를 가깝게 대하진 않았는데 어느 순간 그 이모의 삶이 보이기 시작했다.

20대 초반, 늦은 밤 교회에서 일이 끝나고 집에 가야 하는데 우리 집은 교회와 거리가 멀었다. 나는 차가 없었기에 늘 차가 있는 사람들에게 '부탁' '사정'을 하며 근근이 교회를 다녔다. 차를 얻어 타는 사람은 부탁이 부담스럽지만 어찌 됐건 집은 가야 하기에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비슷한 방향으로 가는 사람에게 부탁한다. 밤이 늦었고, 나는 부탁했다. 처음엔 전도사님께 부탁했다. 전도사님은 태워주려다가 방향이 비슷한 이모에게 부탁했다.

웬걸, 차가 없는 내 사정을 무시하고 내 앞에서 청년들이 보는 앞에서 짜증이란 짜증을 내면서 거절했다. 나는 그날 그 이모의 차를 타지 못했다. 전도사님도 당황한 듯 보였다. 그 이후로 그 이모에 대해서 내 마음에서 마음의 문을 닫았다. 교회를 다니는 동안 그날의 상황이 나에겐 많이 충격이었으니깐.

생각해보면 엄마의 차를 얻어 탔던 이웃 할머니와 그 주변의 이모들이 있었는데 엄마는 그 분들에 대해 불평치 않으셨다.

누군가를 태우는 일은 차를 가진 입장으로서 궃은일임에 틀림없다. 그렇다고 교통비를 내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그 일을 할때 무언가를 바라고 일을 하진 않았다. 그저 내가 차가 있고, 형편이 되니깐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

훗날 엄마의 행동에 대한 감사함은 어렸던 우리에게 돌아왔다. 엄마의 차를 얻어 탄 어른들은 나를, 동생을 위해주는 계기가 되었고, 엄마도 그 감사한 마음들로 일했다.


그래서 이런 경우는 나는 당황스러웠다. 어차피 그 이모와 더 이상 만날 일이 없으니깐 그 날 이후 별 말 없이 넘어갔지만 그 이후 그 이모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듣곤 했다.

주변에선 이모의 가족들이 특이하다고 했다. 남편은 이모를 '누구누구 씨'하며 타인을 칭하듯 불렀고, 한집에 사는데도 배달음식을 따로 시켜먹는다고.

딸들은 무심하고 아들까지도 특이했다. 그래서 가족에 대한 애정이 적다고 했다.

모든 가족이 한집에 살지만 한집에 사는 것 같지 않게 행동한다고 했다.

듣고보니 불행한 거 같은데 아무렇지 않게 건너 들으니 초월적인 관계임에 틀림이 없다 여겼다. 남의 집 이야기에 내가 왈가왈부할 필요도 없지만 그날 이루 간간히 보이는 이모의 피로한 얼굴에 드리워진 외로움은 그녀를 가끔은 측은하게 여기게 만들었다.




결론

인정하기 싫지만 난 외로운 사람이다. 최근의 몇 년간 나는 외로울 틈이 없는 사람이었다. 내 시간은 늘 약속들로 꽉 차있었고, 내 주변은 늘 북적였다. 북적임 속에서 나는 늘 즐거웠고 행복했다. 외로움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바쁘고 새로웠다. 즐거움은 언제나 나와 가깝게 있는 듯했고, 언젠가 이 즐거움이나 관계들도 정리가 되겠지만 당장은 아니라는 생각과 확신이 들기도 했다.

그런 확신과 생각에서 먼저 손을 든 건 나였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피로하고, 의미가 없고, 관계를 만들어 간다는 것이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외로워졌다.

누군가는 외로움에 친구를 만나고, 취미를 찾고, 이성친구를 만들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스스로의 외로움에서 벗어나려 노력한다. 하지만 외로움을 느낄 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냥 가만히 공허한 가운데 외로운 가운데 나를 잠시 놔두고 싶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들이었다.

활기차고 밝고 분위기를 주도했던 나도 나였지만, 바보처럼 힘 없이 쓸쓸하게 표류하는 나도 나였다. 그런 외로움 가운데 다시 무언갈 사부작 시작했다. 이전만큼 활기차고 삐까번쩍하게 채우진 않아도 스스로만에 톤을 유지하며 하나씩 진행하고 있다.


내가 최근에 외로움을 느낀 건 소속감에 대한 외로움이었다. 20대 후반은 아직 어리지만,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너무 젊은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너무 나이 든 것도 아니고, 또 다른 시작을 해야 할 마음의 조급함도 서려있고, 안정적인 궤도에 올라왔음에도 어디에 속하지 못하고 떠도는 기분이 든다. 그렇다고 나와 처지가 비슷한 친구가 있거나, 내 나이 또래와 비슷한 자매나 친척 사촌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내 주변은 하나씩 짝을 찾아 서로에 속해진 관계를 만들어나간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는 외로운 위치로 전락해 버린 기분이 든다. 나는 나대로 씩씩하게 살고 있다 여기지만 솔직히 혼자 살기엔 세상은 너무나 쓸쓸하다. 그렇다고 누군가와 산다고 외로움이 달래 질까? 그것도 아니란 거지만, 적어도 하나보단 둘. 혼자보다 의지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더 낫다는 입장이다.




진짜 결론

그 날 일들을 엄마에게 이야기했다. 엄마는 모든 사람은 외로운 존재라고 했다. 그러나 그 외로움이 절대 나쁜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 외로움을 통해서 사람은 발전하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고.

마냥 안쓰럽고 애틋하게만 여겨졌던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모든 사람은 외롭다. 모든 사람은 혼자다. 그러나 사람은 그런 외로움과 혼자라는 감정과 사실에 빠져 살지 않는다. 그 외로움과 혼자라는 고독감을 헤쳐 나오려고 날갯짓을 한다.

그러니깐 누군가 외로워 보인다는 건 그 사람이 알을 깨고 나오려고 준비 중이라는 것을. 새삼스레 알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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