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패기 많은 젊은 시절을 보냈다. 남들 하는 것만큼 하면서 남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하는 나 자신에 대한 희열을 느끼며 살았다. 약간의 내면적 허세 감으로 살았던 거 같다. 그 시기에 내 자존감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단단했기 때문이다. 누가 뭐 래든 내 길 간다. 가 내 마음이었으니깐.
솔직히 지금도 패기가 없는 것이 아니지만, 나태하고 늘어져있기 바쁘다.
게다가 뭐든 해보고 싶지만 용기가 한없이 큰 것치곤 발목을 잡는 상황과 기분이 많다. 그러면서 조금 더 어렸더라면...이라는 필요 없는 아쉬운 목소리를 낸다.
20대 후반. 누군가에겐 젊은 나이이지만, 그들의 목소리를 공감할 수 없는 게 나는 내 인생 중 가장 나이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내가 보았을 때 내 나이는 굉장히 애매하다고 여긴다.
내 주변의 상황은 둘로 구분된다. 직장을 다니거나, 결혼을 하거나.
나도 예측할 수 없는 20대 후반의 내가 되었고, 나의 20대 시절은 그렇게 꿈 같이 흘러가버렸다.
흔히들 '넌 결혼 언제 하고 싶어?'라는 질문에 '난 28살쯤 하고 싶어'라고 답을 했는데 그 시기가 왔을 때 '결혼? 지금? 당장?' 하며 의아해했고, '하고는 싶지만... 아직은'이라며 얼버무렸다.
인생이 말처럼 턱턱 쉬웠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지만, 알 수 없는 인생을 살기에 이 맛에 살지. 하며 넓은 마음으로 여유를 갖고자 하는 마음도 든다.
같이 대학교 생활을 하다가 친해진 언니가 있었다. 신입생 시절을 함께 보내고, 우리는 아프리카로 해외봉사를 가게 되었다.
나는 나이지리아, 언니는 우간다로 향했다. 중간에 케냐에서 4개월 살게 되었을 때 동부 아프리카에 아는 사람이 누가 있으려나. 생각을 해보니 언니였다. 그러나 만나기란 쉽지 않았다.
신났던 아프리카 해외봉사가 끝나고 한국에 들어와 언니와 대학교 생활을 또 함께했는데, 언니는 편입을 준비했고 나는 여전히 학교를 다니며 서로 다른 지역에 지내면서 근황을 묻고 연락을 했다.
졸업 이후, 나는 자격증 공부를 한다고 카톡을 삭제하고, 1년 정도 잠수를 탔었다.
그 와중에 언니는 진로를 이리저리 고민하며 결국엔 우간다로 유학을 결정했다.
우리 각자의 과정은 많이 달랐다. 평범하게 살아갈 줄 알았던 우리였는데 나는 아프리카에서 가졌던 패기와 용기가 많이 작아졌던 시간이었다.
언니와 나는 비슷한 꿈을 가지고 아프리카에서 돌아왔는데, 어쩐지 언니는 그 과정이 험난할 지라도 묵묵히 꿈을 향해 방향 설정을 하고 있는 반면, 나는 현실과 타협해서 어찌어찌 지금의 삶에 수긍하며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는 우간다에서 대학원을 지냈고, 나는 뜻하지 않던 전혀 내 인생과 무관할 거 같던 자격증을 합격하고 취업을 했다. 웃기게도 나는 전공과는 관련 없지만 자격증과는 관련 있는 지금의 회사로 흘러들어왔고 어느 정도 적응하며 지내고 있다.
언니가 작년에 우간다에서 석사를 마무리하고 돌아왔다.
언니가 돌아왔던 그 시간쯤 나는 소리 소문 없이 우간다와 부룬디를 방문했었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기보다 8년 만에 재회한 아프리카에 감동스러운 눈물을 흘렸던 나였다.
그렇게 내가 우간다를 왔다 갔다는 소식을 듣고 언니가 먼저 연락이 왔다. 무척이나 반가웠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오랫동안 했던 거 같다. 그동안 만나지 못했고, 내가 우간다를 갔다 온 직후였으니깐 우간다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했다.
한국에서의 시간이 안정적인 나와는 달리 언니는 취업을 준비해야 했다. 언니는 NGO단체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자소서를 준비하는데 쉽지 않았다. 누군가를 돕는 일이 스스로의 수입엔 크게 득이 되지 않는다는 걸 익히 알고 있었지만, 적은 수입에 비해 수많은 날고 기고 뛰는 경쟁자들이 많았다.
그런 언니가 나이지리아로 일하러 간다는 건 나에게 반가운 소식이었다. 언니에게 너무나 축하한다고 이야기해주었지만, 한편으로 걱정도 되었다. 이 나이쯤 되면 일반적으로 결혼에 대한 걱정들이 앞서기 마련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6.25 전쟁통에서도 사랑은 싹트고, 아이는 태어나지만, 난 한국에서 누릴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 놓쳐버릴 거 같은 언니에게 이리저리 물었다.
하지만 언니는 간단하게 그냥 가기로 했다. 수많은 고민들이 있었겠지만 '간다'라는 결정을 통해 출발한다. 그런 언니가 멋져 보였다.
우간다로 대학원을 간다고 했을 때도 엄청 많은 갈등을 했었던 언니였고, 여전히 여러 가지 문제로 갈등했던 언니였지만 언니의 결정한 일에 대해서 주변의 왈가왈부에도 언제나 씩씩하고 단호했다. 그 속은 어떨지 내가 헤아릴 순 없지만.
라고스에서 상주했던 나와는 달리 언니는 수도인 아부자로 향한다고 했다. 기분이 이상하긴 당연했다.
아프리카에서 지냈던 1년 동안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 대학교 생활을 할 때에도 나는 아프리카 쪽으로 내 꿈을 펼치고 싶었다. 아프리카에서 보냈던 환경들 속에서 그 사람들을 돕고 싶고 계몽시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언니가 나이지리아로 간다고 했을 때 '난 뭘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이전의 다짐들과 꿈들과 목표들이 어느 순간 잊힌 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그런 언니를 응원한다. 내 꿈까지 이뤄준 거 같아서.
가슴에 뜨거운 무언가를 품으며 살라는 그 말에 대해선 이미 현실의 강을 건넜기에 무식한 용기를 내지 않는 이상 돌아가지 못한다.
그저 나는 시도하진 못하지만 여전히 가슴에 뜨거운 무언가를 품으며 한 발자국씩 내딛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지금 있는 이 위치와 자리에서 내 몫의 열심과 최선을 다해 보길 나는 바라본다.
물론 후회는 한다. '조금 더 내가 추진력 있게 삶을 살지 않고 있었나.'라는 후회.
하지만 그런 후회를 하기엔 현재 내가 가진 것들도 나에게 과분할 때가 많다. 인생의 수많은 선택을 해왔던 나였다. 무수히 많은 선택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앞으로 만들어 나간다.
그렇기에 그 선택들 앞에서 조금 명확하게 결정지을 수 있으려면 현재에 나태해지지 말고 끝없이 질문해야 한단 걸 생각하게 된다.
선행되어야 할 것 - 귀찮음을 무시하고, 나태함을 버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