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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리바 Oct 29. 2019

사랑 관계

매번 어긋나는 그들과 나의 사이

사랑해도 모자를 시간이다 사랑만으로도 부족할 시간이다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늘 그 생각들은 다짐들은 지켜지지 않은 채 지나가 버린다. 지나가버린 시간에 대한 아쉬움을 느끼고 돌아오지 않을 시간에 대한 후회를 한다. 사랑 앞에서 우리는 늘 그러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사랑이란 뭘까. 사랑은 어떤 것들을 가지고 있을까. 나의 사랑은 어땠나.


버스에 앉아서 노래를 들으며 집으로 향하고 있을 때 횡단보도를 걷는 손자와 할머니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서로의 발을 맞춰가며 천천히 보조하고 배려하며 걷는 둘의 모습에 사랑이 보였다.


여행하던 중 이탈리아에서 온 노부부의 이야기를 들었다. 볼리비아가 고산지대라 숨이 가빴는데 할머니가 너무 힘들어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하는 와 중에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얼굴을 한번 쓰다듬었다.


긴 연애를 했고 결혼까지 했다. 사랑해서 한 결혼이었고, 행복만 가득할 줄 알았던 신혼이었는데 P는 남모르게 외롭고 속앓이를 했었다. 긴 연애를 통해서 전부를 알았다고 여겼는데 결혼을 하고 나니 또 다른 모습들을 발견하게 되니 힘들어했다. 여전하게 사랑하면서 그만큼 힘들어하는 P를 통해 많은걸 생각하게 되었다.


사랑은 여러 형태로 눈에 보인다. 전부를 다 안다고, 전부를 다 알고자 하지만 전부를 모를 수도 있단 걸 깨닫는 게 사랑을 하면서 깨닫는 사랑의 맹점 아닌가. 단순히 좋아한다는 말을 넘어서 사랑은 그 안에 복합적인 감정들이 존재한다. 그 가운데 사랑만큼의 미움도 섞여 있다. 사랑과 미움을 아우르는 말이 애증이라고 한다.


좋은 얘기만 나누고 싶은 내 맘을 몰라 그만할까 그만하자 하나부터 열까지 다 널 위한 소리 내 말 듣지 않는 너에게는 뻔한 잔소리 그만하자 그만하자 사랑하기만 해도 시간 없는데 머리 아닌 가슴으로 하는 이야기 네가 싫다 해도 안 할 수가 없는 이야기 그만하자 그만하자 나의 잔소리가 들려 <아이유, 임슬옹 잔소리 가사>


나는 사랑이라고 말하는데 상대방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아.

사랑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하는 건 당연한 마음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남에게 흠 있는 사람으로 비치지 않았으면 하는 건 나의 욕심이고 바람이다. 사랑으로 묶인 관계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으로 포장된 잔소리가 나가고, 지나치게 나의 기준, 상대방의 기준을 강요할 때가 다분하다.

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듯 관계에 그어진 선을 넘나들 때도 있다. 처음엔 사랑해서 '이해'하려 노력한다. 머리론 이해하는데 마음은 잘 모르겠다. 사실, 이건 남녀문제뿐만이 아니다.

가족관계도 마찬가지다.

수십 년을 같이 산 가족은 당연하게 서로에게 상처를 낼 때가 많다. 사랑이라는 기본 바탕을 두고 묶인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가족이라서', '가족인데 뭐', '가족이잖아?', '가족끼리~' 하는 그 당연한 말들이 가끔은 타인보다 더 숨이 막힐 때가 있다.


난 누군가를 진득하게 사랑해본 적은 없지만 나에게 사랑이 있다면 가족에 대한 마음이 아닐까? 이런 형태를 갖춘 게 사랑이 아닐까?라는 정의를 내렸다. 믿음으로 편안하게 엮인 이 관계가 나는 사랑임에 틀림없다고 여겼다. 내가 말한 모든 사랑에 대한 내용들이 이 관계 속에 묻어져 나오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우리 가족이 뉴질랜드와 호주로 긴 배낭여행을 다녀왔다.

배낭여행을 즐겼던 나를 기준으로 가족들이 함께 특별한 여행을 해보자는 취지였다. 늘 혼자였던 여행에 누군가와 함께 시작을 하는 것은 여행을 많이 다닌 나에게 새로웠다. 행복하고 좋은 기억들도 많았다. 전혀 뜻하지 않은 사람과 함께라는건 설렘과 두려움이 동반되기도 했다. 함께한 여행은 특별하고 감사함과 스스로를 더 많이 발견하고 반성하는 그래서 더 발전하고자 하는 다짐도 가졌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행복은 3, 그 안에 전쟁 같은 시간들은 7 됐으려나... 여행을 하면서 나는 생각했다.


너무 힘들다. 왜 이렇게 힘들지?


배낭여행을 하면서 낯선 사람들과 만나서 그 사람들과 함께 다녔던 적이 많았지만 이 정도로 내가 힘들진 않았다. 특히나 정신적으로.

특히나 여행에서 중추 역할을 하는 입장은 그 역할에 따라 더 많은 책임감과 부담감에 짓눌려서 하나에서 열까지의 걱정들을 여행 내내 가지고 다녔다. 하루 일정이라든지, 날씨라든지, 여행지의 갑작스러운 일정 조율이라든지, 그래서 담담하게 시작한 여행에서 잠시만 가족들을 버리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덕분에 공항에서 동생과 대판 싸웠다.)


사랑이 기본 베이스가 깔린 가족이라는 관계.

문제는 가족이라서, 서로에 대해서 모든 걸 안다는 그 착각 때문에 배려가 없이 서로에 대한 모든 것들이 당연하게 되어 버렸다. 여행은 달라져야 한다. 육체적으로든 마음가짐으로든 달라야 한다. 집에서처럼, 한국에서처럼 모든 걸 충족시킬 수 없는 환경 속으로 스스로가 뛰어든 셈이다. 그렇기에 한국에서처럼 아빠 역할, 엄마 역할, 동생 역할이 없다. 누구든 할 수 있든 할 수 없든 해결을 위해 자동적으로 투입이 되어서 서로의 의지력을 상승시켜줘야 한다. 우리는 그런 것들이 조금 부족했다. 각자의 역할에서 벗어나질 않았다. 쉽게 말해 똥을 싼 사람은 많은데 치우는 사람이 따로 있는 여행이었다. 그래서 나는 혼자만의 시간이 절실했다.

지금에 와서 여행의 기억은 너무나 행복하게 남아있지만, 당시에 나는 그 어떤 여행보다 정신적으로 너무나 힘겨웠다. 몇 번이나 언성을 높였고 그럴 때마다 나는 이해받지 못하고 예민한 사람으로 받아들여져 버렸다.


그때 알았다. 분명하게 사랑이 우리 사이에 존재하지만, 그만큼의 선은 없는 우리.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부족해서 스스로의 잣대로 서로에게 들이미는 우리가 보였다. '그런 배려가 없었기 때문에 한국에 있을 때도 서로 부딪히기 바빴던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기준, 아빠의 기준이 여전히 나의 기준과 합의점을 찾지 못한다.

아빠는 내가 날씬하고, 하얗고, 여성스러운 청순한 딸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엄마도 이하동문이었다. 누구보다 예쁘고 빛나는 딸이 되어주길 바랬다. 성격마저도 그렇다. 부모님은 내가 얌전하고 조신한 딸이 되길 바랬다. 하지만 태어나고 자란 딸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발랄하고 쾌활하며 상당히 대범하고 부모님이 생각하는 여성성을 가진 딸이 아니었다.

그래서 아빠는 늘 말했다. '남자로 태어났어야 했어'라고. 남자의 성격 여자의 성격이 어디 있으랴. 이렇게 근 30년간 경험한 바뀌지 않을 딸을 통해 부모님은 세상에 부모님이 생각하는 여성스러운 딸이 아닌 장군감 같은 딸도 있으리라 하는 단념은 찾아볼 수가 없다.

엄마 아빠의 상상에 있는 딸의 모습으로 살지 못해서 죄송스럽지 않다.


20대가 지나서 아빠는 누그러졌지만, 엄마의 기준이 나의 기준과 많이 충돌했다. 어렸을 때는 복종도 하고 순종도 했지만 어른이 된 입장에서는 복종이 되지 않았다. 원래부터 나는 엄마 아빠의 기준대로 살 생각 조차 없었다. 어렸을 때는 금전적인 관계로 엄마에게 설득을 하며 서로의 합의점을 찾아 나갔지만, 시간이 지나 정신적으로 성숙해진 나는 논리가 통하지 않는 엄마에게 일방적으로 공격당하고 있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엄마는 나를 많이 사랑하고, 엄마의 사랑스러운 딸은 본인에게도 남들에게도 손가락 받지 않을 만큼 예쁘고 참하고 조신하고 얌전하게 청순하게 아름답게 그래서 좋은 신랑감이 붙을 수 있게.

그게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 방식이었다.

난 엄마의 딸이지 엄마의 꼭두각시가 아니다. 이상하게 나는 한 번도 부모님의 만족에 맞춰서 살아준 적이 없다. 그럼에도 엄마는 무엇 때문인지 나에게 안될걸 아는 의견을 제시한다. 나는 나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추구하는 방식을 따라 살면 되는데 나는 더 이상 어린 시절의 엄마의 말에 수긍하는 딸이 아닌데 엄마는 여전히 나를 어린 딸로 생각한다.


다른 시각으로 생각해보면 엄마가 나에 대한 사랑이 크니 더 많이 애증을 표현한다고 생각이 된다. 엄마는 그런 나를 향해 '투자의 결과'라고 말을 하지만 그렇게 모질게 말하는 엄마의 사랑을 나는 어렸을 적 몇 번 확인한 적이 있었다.


'엄마는 언제나 상처를 주면서 뒤돌아서 나의 상태를 확인해주는 사람이다'

나 또한 엄마의 모진 말들을 '사랑'이라고 확신하는 경우가 많다. 웬만한 모진 말들에 끄떡도 하지 않는 '나'이다. 가끔은 그런 모진 말들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나 자신이 엄마를 더 사랑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다.(아빠에 비하면 나는 새발의 피긴 하지만...)


최근에 와서 엄마와 나의 관계는 많이 부드러워졌다. 아무래도 사춘기(12세-24세까지)와 갱년기의 맞물림이 지난 시점이었고, 공격하는 엄마에게 맞불작전으로 공격 해던 나였는데 그러면 더 관계가 악영향을 끼친다는 생각에 조금 우회하여 엄마를 대했다. 뉴질랜드와 호주에서 느낀 가족관계에서도 선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내가 먼저 실천했다. '우리 엄마'니깐 당연하게 대했다. 이를테면 빨래를 개는 거나 설거지를 하는 거나 청소를 하는 부분은 엄마의 역할이다.라고 여겨서 '이것 좀 해'라고 이야길 했을 때 귓등으로 튕겨냈다.

난 그냥 내가 집에서 편하게 티브이를 보고, 누비고, 누리고, 생활하는 것이 당연했다. 엄마의 역할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지 못한 채 당연하게 누리는 사람이었는데 한번 겪고 나니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당연함의 당연함이 어딨나.

가족환경이 좋은 나는 내 기준에 100프로 부합하는 부모님은 아니지만 언제나 감사하고 있다. 그리고 화목한 가정에서 자랄 수 있고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가족들이 좋다. 그 과정에서 가족을 애증 했던 시간들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나의 이런 가정환경의 장점과 단점을 이후 나의 자녀들에게는 조금 보완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여전히 엄마는 엄마만의 기준과 고집에 사랑하는 딸이 좋은 방향으로 이끌림 받기를 원한다. 오랜 시간 동안 한결같이 끊임없이 반복하는 엄마의 지구력에 나는 기립박수를 보내고 싶다.

반면 나는? 엄마의 기준을 맞추며 살고 싶지 않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있기야 있지만 부합하지 않은 게 더 많은듯하다.)

기준에 부합한들 만족을 할까? 전혀. 저언혀! 네버! 끝이 없다.

다이어트를 해보겠다며 헬스를 끊으면, 근육이 생긴다고 다른 운동을 하라고 말한다. 헬스를 그만두고 엄마와 수영을 다녔다. 순전히 엄마의 추천으로 다니다가 내가 입덕 하게 되었다. 부지런하게 수영을 다녔다. 그런 엄마는 나에게 수영을 그만두라고 그만두라고 부추겼다. 결국 과도한 수영 중독에 스쿼시를 시작했다. 한동안 말이 없더니 엄마는 나에게 다시 헬스를 권하기 시작했다. 미치고 팔짝 뛸 일이었다. 내가 엄마의 말에 이끌려 운동을 바꾼 건 아니지만 엄마는 그냥 내가 어떤 운동을 하든 몸매 변화가 없는 이유에서 종목 변화를 부추긴 것뿐이다. 난 그런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나 엄마 자궁으로 다시 들어갈래.' 그럼 엄마는 '니 씨 종자 박 씨한테 가'라고.




딸들은 부모님의 사랑을 먹고 자랐지만 부모님의 사랑을 부합할 수 없다.

나의 결론이다. 최근에 엄마에게 화가 났다. 갱년기인 건지 아니면 뭐인 건지 집에만 오면 나에게 공격을 해댔다. 집에서 가만히 티브이를 보며 쉬고 있는 내가 꼴 보기 싫었던 건지, 남의 딸이 잘되는 꼴을 보고 온 건지 괜히 집에 있던 나는 공격 받이가 되었다. 그런 소리를 듣는 나는 대단하게 잘난 딸이 못돼서 미안해.라는 생각보다 '내 편'인 엄마가 '내 편'이 아닌 거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내가 잘난 사람이 되었더래도, 그렇지 않더래도 언제나 나를 지지해줄 버팀목들이 있는 것이 중요한데 공격을 받으니 갑자기 자존감에 스크래치가 나기 시작하면서 '살아 무얼 하나.' 뭐 하나 이룬 게 없는 거 같은 나 스스로인 거 같았다.

사랑만 해도 모자랄 우리의 시간이다. 사랑으로 가득 차서 서로를 바라보며 하루를 보내도 끝에는 부족하다 미안하다 죄송하다 할 시간이다. 엄마가 비교를 할 때면 솔직하게 그 애들이 우리 엄마 딸이었으면 좋겠기도 하다. 그 엄마들이랑 이야기해보면 나름대로 딸 키우는 고충이 있다. 또 딸들이랑 이야기하면 딸들의 입장도 있고.

나는 엄마를 만족시키는 딸이 될 수 없다. 엄마뿐만이 아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원해도 나는 그 사랑을 부합하는 사람이 될 수 없다. 나는 상대방을 향한 사랑보다 나를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다. 다만 서로의 합의점을 맞춰가며 사랑의 시간들을 채워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합의의 관계에서 나는 나를 생각했던 내 인생의 큰 부분을 상대방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 둘 수 있는 거 같다.


세상의 모든 관계는 전쟁이다. 사랑하는 만큼 전쟁이다. 그런데 이 전쟁을 누구 하나 죽이겠다고 끝내진 않는다. 그 이유는 사랑하니깐. 질리는 매력을 가진 사랑을 우린 너무나 많이 겪고 있다.


난 엄마의 상품이 아니다. 난 엄마의 딸이긴 해도 자아를 가진 나다. 게다가 30을 목전에 앞둔 다 큰 딸이다.

엄마의 세상이 있듯 나의 세상이 분명하게 존재한다. 내가 마주한 나의 세상에선 엄마의 세상과 비슷한 모습도 갖추고 있고, 엄마 세대의 시간들의 멋진 모습들을 가지고 오기도 한다. 그러나 완전하게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마주할 때가 더 많다.

어른들의 세대와는 다른 시각으로, 마주한 세상으로 어른들과 또는 우리의 부모님과의 합의점을 찾아 서로에 대한 이해를 늘려야 한다. 어린 사람이 우리를 이해해라. 어른인 사람이 우리를 받아줘라. 이런 고리타분한 생각이 아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세상은 사랑만 해도 부족하다. 사랑으로 꽉 채워져 있는데 가끔은 비틀린 사랑 때문에 난처해진다. 다행인 건 비틀린 사랑은 다시 풀면 된다. 나를 아예 손절해버린 게 아니라 내가 무시당할 존재가 아니라는 것.


엄마에게 가장 큰 선물, 딸에게 가장 큰 보물은 서로이다. 으르렁대며 사랑하는 시간을 갉아먹기보다 서로에 대해서 더 많이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시간을 갖고 싶다. 근 삼십 년을 살아온 우리는 왜 매일매일 서로를 향해 이렇게 다를까. 같은 이유로 으르렁대는데 결론은 나지 않고 방향만 다르게 뻗어나간다.

난 화가 날 때도 있지만 마음 아플 때가 있다. 사랑은 표현이라고 하는데 가끔 그 표현이 감당 안될 정도로 너무 커서 힘들 때가 있다. 엄마에게 이런 말을 하는 내가 싹수가 없다고 여겨지겠지만, 나에게 하는 말들이 스스로에게 하는 말들이라는 생각을 해줬으면 좋겠다.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는 나의 기준으로 맞춰달라고 요구하지 않고 싶다. 횡단보도를 걷는 손자와 할머니,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는 눈빛으로 바라본 이탈리아 노부부처럼 다정하게 대하고 싶다.


이런 일로 사랑의 시간들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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