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쓸데는 없지만 유익한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휙 하고 들어온다. 찢어진 청바지에 진주악세사리를 단 이미지를 보고 있었다. 문득, 외면을 가꾸는 것도 내면을 가꾸는 것도 너무나 중요한 인생의 가꿈. 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가꾼다는건 좋은 말이지만 그 가꾸는 과정과 채워지는 과정이 얼마나 부지런해야하고 까탈스럽게 굴어야하고 다시금 확인해야하는 수고로움이 든다는걸 숨긴채
가꾸는 일 이라고 단조롭고 좋게 포장하여 이야길 하는것 같다. 보여지는 것이 전부라고 여겨진다.
여자인 나는 항상 이야기를 할때 빠지지 않는 주제가 있다. 다이어트다. 외모가 중요한 시대에 언제나 여자들에게 조금 가혹한 잣대를 대며 날씬이라는것이 기준이고 세련되다 라고 보여지는것이 당연하게 된 요즘이다.
운동을 하고 음식을 조절하는것이 습관이 되기 전 얼마나 어려운것인지 여자인 나는 경험하고 있고 그래서 언제나 다이어트의 주제의 결론은 결국 여자라는 삶은 너무나 피곤해. 라는 말로 내버리고 만다.
외모뿐 아니라 내면또한 그래야 했다.
나는 나의 내면이 그렇게 크다고 생각치 않는다. 하진만 어떤때는 무궁무진한 나의 내면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정답은 없지만 내 안에 또 다른 우주가 있다는건 사실이다.
사람을 만날수록 우리는 얼마나 다양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며 살고 다양한 주제를 놓고 토론을 하지 않는지를 알며 다양한 직업군에 대한 호기심을 짓누르며 내 주변만을 서성이며 흘러가는시간을 보내고 있다는걸 깨닫게 된다.
나는 내면을 가꾸는 일에 대해서 내면을 채워가는 일에 대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반면 새로운 것들에 대한 두려움과 익숙한 것에 머물고 싶다는 생각도 동시에 드는 사람이다.
그런 두가지의 생각들이 서로 자기 주장을 해대며 나를 선택의 기로에 놓여놨을때 나는 사람을 만나기 시작했다. 사람을 많이 만나는 시간들이었다. 행운인건 내가 겪을수 없는 직업군들, 성격들의 사람을 만나며 내 안에서만 결론짓고 이야기하던 수 많은 이야기들을 꺼내놓았다. 정확한 해결책은 아니지만 여러가지의 방향을 제시받고 그 과정속에서 수긍했다.
그렇게 만나가는 사람들은 외면과는 다른 저마다의 내면을 지니고 있었다. 생각보다 논리적인 사람. 생각외로 부드러운 사람. 생각보다 생각이 깊은 사람등.
그렇게 그 사람의 외적인 모습만 보고 '저 사람은...'하며 편견을 가지고 대했다면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서로 가지고 있던 생각들과 모습들의 경계가 없어진다.
그리고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라는 결론을 짓게 만든다.
타인에 대한 시각도 그렇지만, 타인이 가진 생각들이 내가 고집했던 생각을 뒤덮는다.
삶은 이토록 끝없이 방향을 만들어가고 다듬고 함께해야한다는걸 또 작게나마 느끼는 요즘이 되었다.
어떤 생산적인 물건을 만들어내진 않지만 생산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는 즐거움이 요즘 나를 설레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