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나에게 나는 엄마에게 이야기를 자주 많이 하는 편이다.
엄마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왜 딸을 낳아야 하는지 알 거 같네'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딸은 엄마의 친구이자 동료이자 훗날의 동반자가 되기도 하는 걸 엄마와 이야기를 하면서 늘 느낀다.
엄마는 폐경을 맞이했다. 사실 그 이야기를 듣고 놀란 건 나였다.
"엄마 괜찮아?"
나의 첫마디였다. 간간이 들리는 '폐경을 맞이한 여성은 우울감이 깊어진다'라는 이야기에 엄마를 측은하게 걱정하게 되었다.
엄마는 그렇게 물어보는 나에게
"뭘?"
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얼핏 본 폐경 이후의 여성들의 심리에 대한 걱정으로
"여자로서의 뭐 그런 거 있잖아"
하며 말했는데
"아니! 너무 좋은데? 한 달에 한번 귀찮게 하는 생리를 안 하잖아!!"
하며 씩씩하게 대답하는 게 '역시나 우리 엄마 답네.'라는 생각을 했다. 엄마는 폐경 이후에도 신체의 바이오리듬에는 크게 문제 될 이유가 없었다. 가끔 일이 풀리지 않을 때, 집안에 있는 사람들(나와 아빠)이 말을 듣지 않을 때의 불같은 화를 내는 것을 제외하곤 엄마의 기분은 폐경 이전이나 이후나 같았다.
예전에 친구를 자주 만나는 나보다 엄마의 친구관계가 없다는 걸 생각한 적이 있었다.
"엄마는 왜 동창회 안나가?"라고 물었는데 엄마는 "그런 걸 왜 나가니?" 하며 쓸데없는 짓이라고 치부해 버렸다. 그런 엄마에게 "엄마가 그렇게 친구가 없으니깐 사람 관계에 대해서 잘 모르는 거 같어"라고 나는 답했을 때 엄마는 "너보다 인생의 경험이 더 크거든?" 하며 맞받아 쳤던 일이 있었다.
그때도 나는 엄마는 외로움을 덜 느끼는 타입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 이전부터 엄마는 외로움을 덜 느끼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엄마랑 자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 출근을 하기 전에 엄마랑 잠깐 마주 앉았다.
엄마는 염색약을 바르기 위해 약을 섞고 있었다가 나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삼촌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가, 조카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가, 이모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가,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그러다가 '나도 갱년기인가?'라며 아빠가 최근에 무슨 말만 하면 나서면서 아빠가 짜증을 내면서 고함치던 이야기를 하는데 엄마는 그런 아빠에 대해서 나에게 험담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상상하느라 미소가 지어졌는데, 엄마는 이유 모를 답답함을 느끼는 듯싶었다.
그 이야기를 하고 난 뒤, 엄마가 최근 마음의 바이오리듬이 이상하게 울적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자신이 최근에 들어지는 이 감정에 대해서 "아무래도 폐경 때문인가?"라고 이야기했다.
이제껏 그런 엄마의 마음을 처음 발견했다.
사실 나는 무심한 딸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아질꺼야'하며 출근을 했는데 이 날 점심에 엄마가 문득 생각나서 전활 걸었다. 엄마는 무심했던 딸이 아침에 그런 이야기를 듣고 점심에 전화까지 해주니 든든했던 건지, 의지가 되었던 건지 좋아했다.
퇴근이 늦어지고 퇴근 이후에 할 일들이 많아 집에 12시가 다 돼서 가는 최근이었는데
출근할 때 '오늘 나 늦어'하며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그 날 두 번이나 나에게 전활 걸어왔다.
보통은 '어 좀 늦게 갈 거 같아.' 하며 전활 끊고는 엄마는 잠자리에 들러 가곤 하는데, (전화를 걸지 않아도 우리 엄마는 자러 간다.) 이 날은 한번 전화가 온 뒤 또다시 내일 출근은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걱정 전화를 했다.
'조금만 더 하다가 갈 거야'라며 전활 끊었다.
엄마의 우울하다는 그 말이 한동안 잊히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시간이 조금 지나니 엄마는 괜찮아진 듯 보였다. 괜찮은 척이 아니라 정말로 마음이 다시 괜찮아졌다.
때때로 사람의 기분이나 감정은 종잡을 수 없을 때가 있다. 그 기분이나 감정에 나를 내어주다 보면 끝없이 수몰되는 기분을 느낀다. 스스로에게 잠식당하는 기분을 덜 어버리는 연습이 필요한 거 같다.
엄마도 우울한 감정이 올라왔지만, 금세 털어버릴 수 있었던 건 그 상태를 먼저 알렸다는 것.
그런 엄마의 행동은 나에게도 많은 생각과 살아가는데 지혜를 갖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