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는 잠깐 이야기하다가 합류할게요."
연습을 끝내고 쉬는 시간이 지나도 들어오지 않았던 학생이 말했다. 시간은 없었고 잘 맞춰지지 않는 동작에 나도 지적하기 바빴고, 그런 지적들이 서로에게 예민하게 작용하기도 했다.
그렇게 이탈자가 생기니 담당 선생님은 시간은 없지만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을 갖자고 했다.
중요했다. 그런 시간들은.
처음 입을 연건 가장 맡 언니인 E였다. 피부병 때문에 관절을 잘 접을 수 없는 중1 E 때문에 짜증이 난 상태였다.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따박따박 맞는 말을 했다. 모두도 그렇게 느끼는 분위기였고.
E를 보는데 예전의 내 모습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자기주장 강해서 내 옳음만 맞다고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상대방의 마음을 들어보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수긍해라 했던 전투적인 내 모습.
그게 스스로에겐 굉장히 옳다고 여겨지지만, 결국 스스로를 외롭게 만드는 길이라는 것도 나는 알고있다.
하지만 이 시간은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자고 모인 시간이 아니었다. 누구의 잘못으로 인해서 전체가 잘못된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었다. 우리가 이 댄스를 어떤 이유에서 시작하게 되었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해하는 시간이었다.
H는 남학생들 중 가장 맏형이었다. 중간에서 선생님들의 눈치를 보며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댄스를 연습시키고 어른과 학생들 사이에서 적당한 중재자 역할을 해주었다. 언제나 장난 가득한 H만 생각했는데 의외로 책임감 있고,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깊다는 걸 이번에 알게 되었다.
H와 함께 악기 연주를 하는데 그럴 때마다 자기 티끌은 보지 못하고 남만 제대로 지적하는 모습들을 많이 발견하곤 했다. '어느 때가 되면 자기 모습을 보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그 모습도 지나쳐온 내 모습으로 생각이 되어서 댄스 연습을 하면서 그런 부분을 서로 이야기하게 되었다.
스스로의 옳음은 결국 스스로를 자만하게 만든다. 자기의 자만에서 벗어나려면 타인의 시선도 필요하다. 그래서 나와 H는 장난기가 서로 많아서 티키타카를 하는 사이지만, 그 날은 H에게 꼭 해주고 싶던 말을 해주었다.
아이들과 10년이 넘는 시간의 차이를 뛰어넘어서 소통한다는 게 무척이나 이상하고 재밌는 시간이었다.
내가 언제 또 이 아이들과 이렇게 종알종알거리면서 이야기할 수 있겠나.
그렇게 각자의 작은 소리들을 꺼내놓고, 선생님은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아이들에게 쉽사리 마음을 설명해 주었다. 아이들은 그 마음을 이해하면서 수긍했다.
그 시간이 끝나고 한편에서 여자아이들끼리 수군수군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게 얼핏 들렸다.
아이들을 불러서 아까 둘러앉았을 때 못한 이야기를 지금 해보라고 했다.
M뿐만이 아니라 S도 작은 S도 마찬가지로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자기들이 요구한 건 뒷전이고, 어른들의 요구사항은 먼저 수용되는 것에 대해 불만이 있었다. 그리고 이런저런 불만들도 튀어나왔다.
뾰로통하게 이야기하는 M이 귀여워서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던 내 얼굴이 생각난다.
M의 이야기를 듣고 웅성거렸던 여자애들 모두가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있잖아. 너희 분장 생각해봤어? 의상은? 소품은? 동선은? 분위기는? 너희는 고작 댄스만 하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뒤에서 뒷받침해주는 걸 생각해줬으면 좋겠어. 내 시야도 좁으니깐 더 큰 시야를 가진 사람의 말을 수용하면서 조금씩 우리의 댄스가 보완되고 있잖아. 그치?'
사실 고등학교, 중학교 때는 나도 전체를 볼 시야가 없었다.
쉽게 말해 집안일을 할 때도 나는 내 시야만을 가지고 살았기 때문에 청소며 빨래며 신경 쓰고 살지 않는 거다. 그러나 전체적인 책임감을 가지고 둘러보면 확실히 다르다. 조직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그 운영되는 곳에서의 사람들의 마음이 어떤지.
아이들에게 전체적인 시야를 가지고 이번에 함께 하자고 이야기를 하니깐 그 많은 불만들이 쏙 들어감을 느낀다.
아토피가 심한 작은 E는 내가 유심히 지켜보던 아이였다. 언제나 혼자여서 왜 혼자일까? 의문이 들었는데 이번에 댄스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작은 E가 댄스를 할 때 고통이 얼마가 되는지 아이들은 알지 못하니깐 아이들은 그 아픔이 핑계라고 여겼다.
나도 E의 시절에 아토피가 심하게 있어서 학교를 가고 싶지 않았던 시간이 있었다. 방학 내내 집에만 있어서 거울 속 내 얼굴에 두드러지게 난 아토피를 보며 스스로 자책하고 원망했다.
그래서 E가 내색은 많이 안 하지만 마음이 많이 힘들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대회 오르기 2일 전. 나는 작은 E를 크게 꾸짖었다. 솔직히 나나 다른 선생님들도 작은 E의 동작이 부족하다는 걸 알면서도 배려랍시고 말을 많이 아꼈는데 그로 인해 아이들 내에서 잦은 불만들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나는 소수로 인해 다수가 피해보는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소수의 의견도 중요하지만, 다수를 침해하는 소수의 의견은 적당하게 무시해줘야 한다고 생각이 든다.
작은 E는 충분히 배려받았다. 그러면 작은 E가 최선을 다해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지 아프다는 이유로 댄스 동작을 엉성하게 한다는 건 애초부터 댄스를 시작하지 말았어야 할 마인드였다.
눈에 튀는 작은 E의 동작이 전체적인 내용의 흐름을 깬다고 지적했고. 아이들도 숙연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쉬는 시간을 가진 뒤 작은 E에게 나도 어렸을 적에 아토피 때문에 히키코모리 비슷하게 지냈다.라고 내 이야기를 해줬다. 그랬더니 작은 E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처음으로 마주한 자리에 생각보다 깊고 진한 이야기를 했다.
이렇게 아이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른'이 된 나를 보게 된다.
그동안 철없는 '나'라고만 여겼는데 아이들과 같이 있으니 '꼰대는 되지 말자'라는 생각이 뒤따라 왔다.
그러나 사고의 유연함을 가지고 아이들과 대화를 하는 건 정말 어려운 거 같다.
경험치라는 건 정말 무시 못할 꼰대의 배경이 된다. 그럼에도 아이들의 시선에서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은 나 스스로에게 굉장히 큰 경험이 되었다.
언제나 딱딱하고 객관화되어있어서 '세상은 이래!' 하며 당연시되었던 일반적인 시각들이 아이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다른 시각으로 생각되기도 하고.
다른 시각을 가진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른'의 무게가 이렇게 커진다.
나도 어른의 무게를 양껏 느끼고, 아이들은 매일같이 댄스와 사투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아이들은 흥타령축제에서 동상을 수상했다. 힣 수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