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09분
아침에 카톡을 확인하고 시간도 확인했다. 정확하게 새벽 3시 09분이었다.
카톡을 읽지도 않은 채 미리 보기 내용만 확인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분주했고 그 날은 부산으로 떠나야 했다.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다시금 카톡을 확인했다. 여전히 읽지 않은 내용에 나는 별 내용이 없을 줄 알면서 들어가 확인했다.
나는 과연 답을 할까 말까 고민을 했을까?
놉. 한치의 고민도 없이 읽씹 했다.
그 한 단어로 상황을 정확하게 유추할 수 있었다. 늘 그렇듯 술을 마셨겠지. 수많은 카톡의 명단에서 눈에 띈 한 사람이었고 또는 여러 명에게 동시다발적으로 카톡을 보내 그중에서 그 시간에 깨어있는 누군가가 답을 했겠지. 어찌 됐건 그 시간에 그저 내용 없이 말 한마디 던진 거였으리라.
의미도 내용도 없는 그 부름에 나는 응답할 이유가 없었다. 낮에 말짱한 시간에 연락이 온다면 '왜?' 하며 즉각 반응하는 나였지만 감성에 젖은 새벽녘에 온 의미가 없는 연락에 나까지 감정적으로 동요할 필요가 없음을 생각하게 된다. 맨 정신이 아닌 그 술에 젖은 새벽녘의 감성에서 나는 그가 보낸 카톡을 시작으로 그가 만들고자 하는 상황에 출연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괜찮은 사람이니깐 여전히 함께 시간을 쌓아왔겠지만, 어쩐지 남녀관계에서 친구가 있다. 하는 나의 단호한 마음과는 다르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이성친구는 관계의 발전 가능성이 있다.라는 내용으로 나의 마음도 의견도 옮겨져 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저런 카톡에 쉽사리 답을 하고 싶지도 않다.
김칫국이기 전에 나는 누군가와 가벼운 시작을 하기엔 가볍지 않은 마음과 세월을 가지고 있다. (현재 내가 가장 젊은 때 이기도 하지만 가장 나이 많은 순간이기도 하니깐)
어떤 날이 생각났다.
수많은 날들 중, 어떤 날엔 새벽에 온 '보고 싶다'라는 목소리는 촉촉하게 술이 절어 있었다. 앞뒤 생각 안 하고 '뭔 개소리야?'라며 육성으로 답해줬다. 추 후에 이야기를 해본 결과, 그때 그 연락을 받은 여자는 나 말고 두 명이 더 있었는데 웃긴 건 우리 셋은 친구였다. 우리 셋 중 '보고 싶다'라는 말에 반응한 친구가 있었고, 그래서 둘은 연인이 되었었다.
원래 우린 동갑내기 여자 셋이었는데 어느 순간 넷이 되었다.
그저 인생을 즐겁게 사는 게 좋았던 나와,
결혼을 약속한 남자 친구가 있는 친구
그리고 남자 친구와의 관계가 위태했던 친구
거기다가 별생각 없이 우리를 만나면 즐겁게 놀기 좋아했던 오빠 하나까지.
별생각 없이 매일 만나서 놀고 시간이 날 때마다 불러내서 이런저런 이야기 하다가 집으로 들어가기 일쑤였는데 어느 순간 친구와 오빠가 따로 만나서 술을 마시고 몰래 약속을 잡는 날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나한테 걸리기도 했고.
그 둘로 인해 죽이 잘 맞았던 우리 넷의 만남은 끝이 났다.
내가 그 둘의 관계 발전에 뭐라고 할 입장은 아니지만, 솔직히 남자로서의 그 오빠나 여자로서의 내 친구나 서로 너무 부족하게 느껴졌다. 그 와중에 나에 대한 오해도 생기기도 했다. 놀기 좋아하는 나와 놀기 좋아했던 오빠가 죽이 잘 맞으니 친구는 나름대로 속앓이까지 했다고.
애초부터 우리의 목적은 신나게 노는 거였는데 어느 순간 자기감정에 휩쓸려 '저렇게 둘이 잘 맞으니 저러다 둘이 사귀게 되는 거 아냐?' 하는 혼자만의 오해로 괜스레 나까지 불편한 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나중에 친구는 그 오빠와 내가 개인적인 연락을 하는 것에 대해 은근하게 떠보기까지 했던걸 생각하면 내가 남사친이랑 단순한 친구관계 즉 이성끼리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지만,
어쩌면 그 친구 입장에선 본인이 좋아하는 남자와 친구가 엄청 친하게 지낸다면 좋아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의심도, 질투도, 확신도 갖고 싶은 마음에 자기의 감정에 앞서 모든걸 미루어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내가 정말 열받는건.
지난 일인데도 다시 생각해보니 서운한 일이네. 어찌됐건 우리가 함께했던 순간은 즐거움도 그 외에 다른 순간들도 많았는데 말야. 역시나 우정보단 사랑이 앞서는 건가보다. 이런 생각을 하면 씁쓸해진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감정 순위를 매긴다면 당연하게 사랑이 최고 이지만, 적당한 조율 없이 우정을 버리고 사랑에 눈이 멀어 가버리는 사람을 적어도 난 몇을 봐왔으니깐.
술, 새벽, 연락 이 모든 건 진심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숨겨진 의도가 다분한 내용들이 더 많다는 걸 알게 된다.
그 바탕을 알기에 느나 라는 그 카톡은 나에게 큰 의미가 되지 못한다. 귀엽지도 않고, 돌아봐 주고 싶지도 않다. 아무리 친한 동생이 더래도 설사 어떤 감정이 섞여있지 않은 내용의 메시지일 수 있겠지만, 나는 안다. 한끗 차이를. 나의 반응으로 인해 한 끗 차이가 될 수도 있다. 내가 이 답을 해주면 혹은 해주지 않으면.
우리 모두 자신의 감정에 휘둘리며 살 때가 많은데 그럴 때일수록 조심해야 한다. 순간적인 감정이, 한 번의 맞장구 혹은 두드림이 어떤 결과를 낳게 될지 모를 일이다.
그럴때마다 난 정신차려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세상엔 달콤한 말들이 너무 많다.
그런 말들에 현혹되기 전에 스스로가 누군가에게 제대로 된 이성이 되어야 하고, 그 이성을 마주할 구분해 낼 시야를 가져야 하는 것도 나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면 좋은점은 세상에 대해 고리타분 하다 여겼던 옛말이 피부로 와닿아진다는 점이다. 어렸을땐 꼰대같은게 꼴보기 싫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볼멘소리로 지나쳐서 비꼬는 끼리끼리에 대한 의미에 수긍이 가기도 하고. 그래서 나는 내 끼리는 어떤 사람인가 심히 걱정이 되기도 하다.
난 어떤 사람을 만날지 여전히 미스테리지만 적어도 이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새벽에 술이 필요치 않아도 '난 네가 좋아.'라고 담백하게 말할 수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