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서 자기반성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 나보다 4-5살 어린 사람이 내가 보낸 카톡에 이런 답을 해온다면 화를 내는 게 맞는 건가요? 혹여라도 화가 나지 않거나 '나도 그런 적 있는데 그러려니 하지 뭘 또'하는 분들이 있을까요?
개같이 무시받고 있는 나 자신이 보였다. 허탈하다고 해야 하나. 그렇지만 당장 열 받았다고 감정표출을 하지 않았다. 이성을 되찾으려고 노력했다.
나도 과거에 어른들에게 싹수없게 한 행동이나 말에 되짚어 보면서 '되려 받는구나'라는 자기반성의 시간도 가졌다. 그렇다고 머리 끝까지 폭발한 화가 가라앉는 건 아니었다.
나도 내 성격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목소리가 커서 의견이 남들보다 더 두각 되기도 하고, 그런 와중에 줏대가 없어서 이리저리 휩쓸리기도 하고, 어떤 자리에 도달해서 직책을 부여받는 것보다 비선 실세처럼 옆에서 지시하는 걸 좋아한다.
남들이 보는 내 성격은 단순하고 직설적이고 유쾌하다는 평이다.
나를 모를 때는 '별로'라는 평가가 있다면, 나를 알고 나서는 '의외의 부드러움. 다정함을 지님'이라는 평을 내놓기도 하다. 전자와 후자의 평가에도 나는 그러려니 싶다. 내가 모두에게 맞춰줄 수 없고 모두와도 친해지고 싶지도 않기 때문이다.
타인과 더불어 사는 세상이라지만 자존감 높이며 내 위주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나를 제일 사랑하는 사람은 나니깐.
난 겨울이 좋으면서 싫어진다. 왜냐면 일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특히나 11월이 지나고, 12월 셋째 주는 예수님이 탄생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 청년들이 공연 준비로 바쁘다. 마음이 잘 모여지지 않고 많이 친하지 않은 사람들끼리 무슨 일을 하려니 '내가 굽히고' '내가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까지 나는 일을 진행한다.
내가 안 해도 누구라도 하겠지가 아니라. 나부터 좀 하자.라는 마인드인 것이다.
이번에는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누가 부여하진 않았는데 어쩌다 보니 전체적으로 내용을 수립하고 만들어가는 진행 아닌 진행장이 되었다.
할 생각이 없었는데 '나부터 하지 뭐.'라는 그 마음에 전체를 책임지는 총괄이 되었다.
무엇을 하지 하다가 교회 안에서 일어난 10대 뉴스를 선정하며 콩트식으로 내용을 꾸리기로 했다. 대본을 쓰고 음악을 찾고 영상을 만들었다. 각자 맡은 파트를 수정해주기도 했고 상황을 체크하기도 했다.
[발단]
그러던 중 이리저리 의견을 내는데 (의견은 거의 내가 냈다) 은근하게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 한 아이가 있었다. 나도 그 애랑 별로 말 섞고 싶지 않아서 그 애가 내 말을 은근하게 무시하는 게 보여도 '내가 참지' 라며 넘겼다.
그 애는 내가 무슨 말만 하면 아니꼬운 표정과 말투로 빈정거리기 때문에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아 그냥 내버려 두었다.
그 애는 그 애대로 사회자 파트로 배정했고 나는 전체적인 내용을 수립했다.
나는 일과 크리스마스 행사를 진행을 위해 오전 오후에 회사에서 업무를 하며 병행했고, 그 날은 오전에 받은 사회자 파트의 분량이 생각보다 짜져있지 않아서 당혹스러운 상태였다.
사회자 파트의 대본을 받아보고 '어? 얘네 어제 두세 시간 동안 뭐한 거야?'라며 어이없음과 동시에 약간 언짢았다. 자기들이 부족하면 주변에 도움을 구해서 해도 모자랄 판에 부족한 시간을 날렸다는 생각이 다분했다.
그리고 그 날 회사에서 다른 부분도 확인하고 진행해야 할 사항들이 많았지만 꾸욱 화를 눌러 참고 사회자 파트에 대해서 전체적인 줄기를 잡아줬다.
우리는 매일 밤 9시마다 모였는데 모일 때마다 느끼는 건 시간 약속에 대한 개념이 없다는 거였다. 물론 나도 내가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면 약속을 지키지 않을 수도 있지만 우리가 크리스마스 공연을 준비해야 했고, 다들 평일의 일과들이 있어서 시간은 촉박했기에 시간이라도 지켜주길, 혹은 참석하지 않는다면 불참의 이유를 말해주는 배려를 기대하는 건 너무 큰 거였나.
9시까지의 약속에 모인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다. 10분이 넘어가면서 전화를 해댔는데 전화를 받지 않고 집에 갔다. 퇴근 후 잠들었다. 하는 변명들이 들려져서 목소리가 큰 나의 목소리가 더 커져서 사무실 안에서 연락하는 애들 들으라며 짜증을 냈다.
그 자리에서 컴퓨터를 보던 4살짜리 어린 아기들이 그런 나의 목소리에 놀라서 나갔다는 후문이...
그리고 메시지의 당사자가 들어왔다. '야 몇 시야? 아홉 시라고 한 거 못 들었어?'라며 뭐라고 한마디 했는데 듣기 싫다는 이유로 기분 나쁘게 이야길 했다. 그러면서 '거 참 되게 쪼잘쪼잘되네' 하며 나가버렸다.
순간 벙졌다. 내가 어떻게 반응해줘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었으니깐.
아... 나 방금 무시당한 거 맞지? 나 화내야 할 타이밍 아냐?
근데 내가 참으면 돼. 그냥 참자. 소란 만들지 말자.
라는 생각에 넘어가 보기로 한다. 1차 은근한 무시. 2차 쪼잘쪼잘. 해결되지 않은 채로 덮어두고 일만 했다.
이 부분을 청년회를 담당하는 삼촌에게 이야기했다. 난 여전히 찝찝하고 여전히 무시당하는 더러운 기분에 사로잡혀있으니깐. 그랬더니 삼촌은 '걔는 자기가 찔리는 게 있으면 특히나 가시를 세우는 애야.'라고 이야길 했다.
자기가 미안한 부분이 드러나니깐 감정적으로 튀어나온 말이라는 거였다. 그렇다고 내가 걔를 이해해 주고 싶은 생각은 하나도 없었다. 언제까지나 애처럼 오냐오냐 해주며 클 수도 없는 상황이고.
자기감정 못 지켜서 휘둘리며 살 수도 없는 상황이고. 그러든가 말든가. 중요한 건 걔한테 느낀 내 감정이 사라진 게 아니라 밑바닥에 깔려있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카톡의 내용이다. 종합적으로 대본을 합치려고 연락했는데 저런 답변이 왔다.
근데 내가 화를 내는 게 맞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근데 잠시 이성의 끈을 붙잡았다. 왜냐
그간의 화내고 나서 스스로에 대한 자책을 많이 했던 편이었고,
나는 그러고 싶지 않은 사람인데 그런 모습만 보이는 사람인 거 같아서 그래서 지인에게 물어봤다.
지인은 감정 빼고 말해야 한다고 해서 카톡으로 보내려는 장문의 카톡을 지인에게 보냈다.
근데 내가 작성한 카톡 내용이 너무나 화난 감정이 섞여있다고 답했다.
엄청나게 감정이 섞여 있었지만 결국 메시지는 보내지 않았다.
일단 행사를 같이하는 게 우선이었다. 틀어질 시간이 없었다. 행사를 진행하는 내내 우리는 화기애애했던 반면 그 애는 고개를 숙이고 표정관리를 하지 못한 채 어두운 얼굴로 함께했다.
연습이 끝나서 우리끼리의 피드백을 할 때도 먼저 집에 가버리고, 그 애의 행동들이 하나같이 화가 나게 했지만 어쩐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식을 먹을 때도 고개만 숙이고 있고, 자기 마음에 조금이라도 언짢은 게 있으면 표정에서 드러나고 불만을 표시하고.
마음의 유연함이 없는 것이 보였다.
크리스마스 행사가 일찍이 끝났고 수고했다며 우리는 끝난 날 모였는데 청년회 담당 삼촌이 그랬다. '그 애 요즘 불면증으로 시달린다' 나는 좀 놀래서 '그 정도였어요? 뭐 때문에요?'라고 하니 이번에 일을 같이 하면서 마음에 부대낌이 심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전날도 한숨도 못 잤단 것.
반면에 나는 속상해서 엄마에게 이런 속상한 마음을 토로했고 엄마는 나에게 '그거 정말 아무것도 아니야.'라며 내 마음을 잘 다독여 주었다. 사실 우리는 위로와 위안을 건내지만 정작 상대방의 입장이 되진 못한다.
그런데 속상한 마음을 표할 때 내 동생은 '누나 마음이 약하구나'라는 쌉소리를 했다고 한다.
난 거기서 짜증이 났던 게 지금 내 동생의 인간관계는 가족뿐이다. 다양한 관계를 접해보지도 않고 부딪혀 본 적도 없는 와중에 나의 상태를 '약함'이라고 단정 짓는 꼴이 어이가 없었다.
그 애에게 연민을 느끼고 싶지 않지만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점점 밝아진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역시나 어렵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건.
이런 일들 이야기 함으로써 주변에서는 내가 더 넓은 시야가 생겼고,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생각이 미치는 능력이 생긴 거라고 말해줬다. 나도 자기반성의 시간을 가졌기도 했지만서도 앞으로 또 한 번 그런 상황들이 마주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답은 물음표로 남는다.